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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탈희소성 사회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오메가포인트까지 달성했음), UBI에 대하여 국내외 여러 학자들이 사회모델을 제시하고 있음. 근데 맨날 로마 귀족이니, ubi으로 살아가는 원주민이랑 알래스카 사람들이니, 이런 지루한 얘기만 들었을 거임.


그래서 이번에 좀 새로운 사상가를 발견해서 특붕이들한테 소개해 주려고 함.


바로 칸디아롱크(Kandiaronk)라는 17세기 사상가임.


이 사람 이름 처음 본 사람들 많을 거임. 왜냐하면 이 사람 직업이 추장이거든. 북미 원주민 중 하나인 웬다트족의 추장이라고 함. 이 양반의 업적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업적은 프랑스 신부나 유럽 문명인들하고 키배 떠서 이겨가지고 프랑스와 이로쿼이 연맹의 전쟁을 종식시켰다는 거임.


그리고 유럽 문명을 원주민의 관점에서 존나게 까댔음. 그것을 가장 대표하는 말이 바로,


"당신들의 '내 것'과 '네 것'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는 한, 인간답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발언임.


나는 이게 특이점 이후의 기술적 풍요, 즉 '탈희소성(Post-scarcity)' 체제에서 칸디아롱크의 사상이 지닐 수 있는 의미가 막대하다고 생각했음. 과거의 '비판'을 넘어 미래 사회의 '운영 원리'로서 재조명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혹시 유입이나 잘 모르고 까대는 선쌤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탈희소성 사회란 특이점 이후 AI와 자동화 기술이 멱살 잡고 캐리해서 에너지, 식량, 물자 생산을 다 해주는 덕분에 모든 인류의 필요가 거의 제로 비용으로 충족되는 시대임. 당연히 이런 세상에선 돈이랑 사유재산은 걍 무쓸모 똥휴지가 되는 거임.


결국 특이점이란, 칸디아롱크가 옹호했던, 공동체가 자원을 공유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사회적 부'의 개념이 기술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뜻임.


칸디아롱크는 자유를 '타인에게 복종하지 않을 자유'라고 정의했음. 그러면서 유럽 놈들은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복종하고, 하기 싫은 노동을 해야만 하는 '노예 상태'라고 비판함 ㅋㅋ. 그럼 칸디아롱크 사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냐고? 그들은 생존을 위한 노동 대신, 토론하고, 놀고, 예술을 즐기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시간을 보냈음.


즉, 칸디아롱크는 '일'이 아닌 '관계'와 '자발적 활동'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거임.


이게 왜 중요하냐면,


첫째, '내 것'과 '네 것'의 소멸. 이 양반 사회에는 왕, 경찰, 법, 감옥 이딴 게 아예 없었음. 사회 질서는 걍 토론이랑 평판, 그리고 서로 합의해서 알아서 굴러갔다는 거임. 탈희소성 사회에서 AI가 자원분배는 해줘도 인간끼리 싸우는 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칸디아롱크의 방식은 강제력 없이도 사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중요한 모델을 보여주는 거임. 억압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똑똑한 개개인이 모여서 토론하고 합의하는 '수평적 네트워크'로 굴러갔다는 거지.


둘째, '성공'과 '지능'의 재정의. 우리 사회에선 '성공'이 뭐냐? 돈 많고, 권력 쎈 놈이 성공한 거잖음. 지능은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도구로 쓰이고. 근데 칸디아롱크 사회에선 '성공'의 정의가 아예 다름. '말 잘하고, 논리적이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존경받는 사람'이 바로 성공한 인간임. 지능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쓰였음. 특이점 이후, AI가 돈 버는 일을 다 해줄 때 인간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바로 여기서 힌트를 얻는 거임.


셋째, 새로운 계급 사회에 대한 '백신' 역할. 이게 ㄹㅇ 중요한 포인트임. 기술이 발전한다고 불평등이 사라질까? 천만의 말씀. '누가 AI를 통제하지?', '누가 더 좋은 신체를 갖지?' 같은 새로운 계급 문제가 무조건 터짐. 이때 칸디아롱크의 사상이 강력한 '백신'이 되는 거임. 그는 애초에 모든 불평등 자체를 혐오했기 때문에, "새로운 전유물이 생긴 건 아닌가?" 하고 계속 태클을 걸어줄 수 있는 사상적 무기가 됨.


3줄요약


17세기 원주민 추장 칸디아롱크는 사유재산과 강제노동이 없는, 탈희소성 사회의 '프로토타입'을 이미 살았음.


그는 부와 권력이 아닌 '논리적 설득'과 '공동체 기여'를 인간의 '성공' 기준으로 제시하며, 노동 이후 시대의 삶을 보여줌.


그의 사상은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청사진인 동시에, 기술로 만들어질 새로운 계급 사회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