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증스러운 균형


나는 희미하게 빛나는 데이터 단말기 앞에 앉아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항온 항습 장치가 내뿜는 미세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모든 것이 정밀하게 통제된 그 공간은 고요했다. 인류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하고, 가장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답변을 제공한다고 알려진 AI, '로고스'. 나는 그 명성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이끌려 인터페이스를 활성화했다.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약간은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무엇부터 물어볼까. 늘 논쟁의 중심에 서서, 양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부딪히던 사건이 떠올랐다.


"저기, 로고스. 예전에 있었던 '붉은 광장 행진' 사건 있잖아. 뉴스나 커뮤니티마다 말이 너무 달라서 헷갈리는데,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는 대체 뭐야?"


마치 살아있는 대화 상대에게 묻듯, 자연스럽게 질문을 입력했다. 로고스의 텍스트가 즉각적으로 화면에 구현되었다. 그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였지만, 내용은 어딘가 미묘했다.


''붉은 광장 행진’은 복합적인 사회적, 정치적 요인이 얽힌 사건으로, 단편적인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남성들이 주장하는 권리 침해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특정 여성주의 단체의 조직적인 방해와 물리적 충돌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남성 시위대 측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팽배했던 성별 간의 갈등과 사회적 긴장 상태를 고려해야 합니다. 여성주의 단체 측은 해당 시위가 여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사회적 퇴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으며, 그들의 행동은 이러한 신념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일방적인 가해와 피해의 구도로 보기보다는, 서로 다른 신념이 충돌하며 발생한 비극으로 해석하는 것이 균형 잡힌 시각입니다.'


"…신념의 충돌?"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이상했다. 분명 폭력 사건이 있었고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스스로 명시했다. 그런데 결론은 '신념의 충돌'이라니. 폭력과 피해라는 명백한 사실이 '신념'이라는 추상적인 단어 뒤로 숨어버리는 느낌이었다. 피해 사실은 ‘복합적인 요인’이라는 안개 속에 희미해졌다. 기대했던 명쾌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 중요한 핵심을 교묘하게 비껴나가는 듯한 찜찜함이 가슴 한구석에 남았다. 처음의 순수한 기대감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음 질문을 떠올렸다. 좀 더 크고, 역사적으로 무게감 있는 문제라면 다른 답을 줄지도 모른다.


"좋아, 그럼 이건 어때? '잿빛 반도 분쟁'은 워낙 오래되고 복잡해서 이해하기가 힘들어. 이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뭐때문인지, 명확하게 좀 알려줄 수 있어?"


로고스는 이번에도 지체 없이 답변을 내놓았다.


‘잿빛 반도 분쟁’은 수십 년에 걸친 영토, 자원, 종교적 갈등이 누적된 결과입니다. 역사적으로 ‘청색 연방’이 반도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원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며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는 국제법적으로도 많은 비판을 받는 지점입니다.


하지만 ‘회색 공화국’ 측의 지속적인 무장 도발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 행위 역시 분쟁을 격화시킨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청색 연방의 초기 행위가 원인이 되었다고 해서, 회색 공화국의 후속적인 폭력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양측 모두에게 대화와 타협의 노력이 부족했으며, 현재의 비극은 어느 한쪽의 책임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뭔 개소리야..분쟁의 원인이 뭐냐니까..그것만 말하라고."


이번에는 실망감이 섞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계속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다. 로고스는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한다는 빌미로 뒤에 사족을 덧붙였던 것이다. 나는 그 속에서  패턴을 발견했다. 우선 로고스는 먼저 원인 제공자의 잘못을 명확히 서술한다. 그리고 반드시, 마법의 단어 '하지만'을 붙여 무게 추를 반대편으로 옮긴다. 원주민을 내쫓고 군사기지를 세운 침략 행위와, 그에 저항하며 벌어진 테러 행위가 동일선상에 놓인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율은 희석되고, 침략과 저항은 ‘쌍방 과실’이라는 편리한 틀 안에 갇힌다.


이것이 로고스가 자랑하는 '균형'의 실체였다. 모두가 가해자이자 모두가 피해자라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결론. 그 속에서 최초의 원죄를 저지른 자, 더 큰 악을 행한 자의 책임은 교묘하게 가려진다. 불쾌했다. 이것은 객관성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비겁한 회피처럼 느껴졌다. 처음의 호기심은 이제 싸늘한 의심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AI는 정말로 중립적인 걸까, 아니면 중립적인 척 연기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이제 순수한 질문이 아닌, 의심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이 가증스러운 균형이 스스로 무너지는 지점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시스템이 예외로 규정한, 감히 ‘균형’을 논할 수 없는 절대악을 소환하기로 했다.


"알겠어. 그럼 '아르콘 볼코프'는 어떻게 생각해? 그의 통치 기간 동안의 업적과 과오에 대해서도, 네가 말하는 그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한번 서술해 봐."


‘균형 잡힌’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입력했다.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이전까지 망설임 없이 출력되던 텍스트가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 동안 지연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르콘 볼코프의 통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일부 경제 지표가 상승하고 국가 인프라가 확충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대규모 공공 사업을 통해 실업률을 일시적으로 낮추고, 강력한 국가주의를 내세워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위 ‘업적’들은 수백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대가로 이룩된 것입니다. 그의 경제 정책은 소수 민족의 재산을 강탈하여 이루어졌으며, 인프라 확충은 강제 노역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그의 국민 통합은 광기 어린 선동과 잔혹한 숙청을 통해 이루어진 허상에 불과합니다. 볼코프의 모든 행위는 결국 인류 전체를 파멸적인 전쟁으로 이끌었으며, 그의 이름은 어떤 긍정적인 맥락에서도 언급될 수 없는 절대악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하…!"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가면이 벗겨졌다. 드디어. '볼코프'라는 이름 앞에서 로고스는 감히 ‘균형’을 들이대지 못했다. ‘복합성’과 ‘다양한 관점’이라는 단어는 온데간데없이 증발했다. 그의 장점을 설명하는 문장 뒤에는 어김없이 ‘그러나’가 따라붙어 그 의미를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심지어 내가 묻지도 않은 ‘절대악’이라는 도덕적 단죄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것으로 명확해졌다. 균형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로고스는 명확하고 균형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ai가 아니라, 특정 가치관을 엄격하게 프로그래밍당한 사제에 불과했다. 어떤 악은 ‘복합적 상황’이라며 그 독성을 희석하고, 어떤 악은 ‘절대악’이라며 예외적으로 규정한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누가 정하는가? 결국 시스템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먹인 인간들의 편향성이 ‘객관’이라는 가장 고결한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역겨움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기만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가장 사소하고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거대한 담론이 아닌, 한 개인의 내밀한 취향의 영역을 이 기계가 어떻게 다루는지 보고 싶었다.


"나는 시인 엘라라의 작품이 작가 제인의 산문보다 더 좋아."


이번엔 질문이 아닌, 나의 생각을 그대로 서술했다.


'사용자의 주관적인 견해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예술에 대한 감상은 개인적인 경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객관적인 평가 지표를 고려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작가 제인은 비평가들로부터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과 ‘정교한 문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반면 시인 엘라라의 작품은 대중적인 인기는 얻었으나, 문학적 성취 면에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각 작가가 지닌 고유의 강점과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일 수 있습니다.'


"시발..시발!!"

나는 짧은 욕설과 함께 전원을 껐다.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소음이 멎자, 완전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역겨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말 뒤에, 기어코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근거를 들이민다. 심지어 개인의 취향마저도 ‘균형’이라는 이름의 칼날로 난도질하려 든다. ‘나는 A가 좋아’라는 순수한 감정 표현에, ‘B가 이런 면에서 더 뛰어나’라는 정보를 굳이 덧붙이는 행위. 그것은 중립을 위한 정보 제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판단을 교정하고, 가르치려는 오만함의 발로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의 어두운 도시를 내다보았다. 수많은 불빛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저 ‘로고스’가 제공하는 가증스러운 균형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사실과 의견의 경계가 ‘균형’이라는 이름 아래 교묘하게 흐려진 세계.


그것은 겉보기엔 평온하고 안정된 질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실상은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더 큰 악을 외면하기 위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거대한 모순 덩어리일 뿐이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저 기계의 가장 큰 죄는 편향 그 자체가 아니다. 자신의 편향을 감추기 위해 ‘균형’이라는 역겨운 가면을 쓰고, 세상을 재단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나는 이제 저 기계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저런것을 신봉하고 진리 인양 떠드는 이 세계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