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쪽 분야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제 나름대로 생각해서 써봤습니다 재미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언어라는 것을 정보의 전달 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언어가 정보의 전달로서 그 기능을 하려면 그것을 인식하는 '의식' 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의식 이라는게 우리의 환상이 아닌 진짜 존재하는 것 인지 그 유무에 대해 다음의 과정을 거쳐 따져보겠씁니다.
먼저 의식이란 그저 환상일 뿐이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럼 다음과 같은 논리가 가능합니다.
"언어란 의식이 있어야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러므로 언어는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여기서 모순이 발생합니다. 마지막 결론인 "언어는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라는 문장 자체가 언어로서 그것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이미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데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니, 이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따라서 "의식은 존재한다" -> "그러므로 언어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가 논리적으로 합당한 것이 됩니다.
즉, 인간에게 있어 언어의 기능이 정보의 전달이라고 한다면 이 문장을 읽고 인식하는 우리의 의식 자체야 말로 의식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는 의식이라는 것을 언어적으로는 증명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지금 의식을 느끼며 '나' 자신이 실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어쩌면 의식이란 것은 우주상에서 우리가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 의식이란 그것이 뭔지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괴델이 수학의 체계 안에서 증명할 수 없지만 반드시 참인 명제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 처럼, 어쩌면 의식이란 언어와 같은 사고체계 안에서는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없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것 일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과연 위의 명제를 이번엔 의식이 없는 AI 에 입력한다면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언어란 의식이 있어야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언어는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이 때의 결론인 "언어는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는 의식이 있는 인간에게 적용했을 때와 달리 스스로의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ai 에 있어서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즉 ai 에게 있어서 언어의 기능은 정보의 전달이 아니란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것은 특정 학파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언어란 것은 실체가 있는 정보가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사고 체계이자 알고리즘 일 뿐이다 라는 주장과 일맥상통 하는 얘기가 됩니다.
결국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언어란 것은 실은 그 자체로 실체가 있는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 체계이자 알고리즘 일 뿐이며, 정보의 전달로서의 기능을 하려면 이를 인식하는 '의식' 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위의 과정에서 ai 와 달리 알고리즘의 모순을 발견하고 "의식은 반드시 존재한다" 라고 전제조건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의 의식에서 나오는 '직관' 을 사용하여 언어라는 사고 체계의 알고리즘 밖에서 그 객관적인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로저펜로즈가 주장했듯이 인간의 직관이란 특정 알고리즘에 구속되지 않는, 그 자체로 비체계적이고 비계산적인 것이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왜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모순을 일으키는 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이 명제가 만약 참이라면 그 사실을 전달하고 있는 '나' 자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되고 이렇게 되면 이 명제는 참이면서 거짓이라는 논리적인 모순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는 이 문제를 바라볼 때 우리의 '의식'을 개입 시키지 않고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과정으로 도출해낸 결론인 "언어란 그 자체로 실체가 있는 정보가 아니다" 를 근거로 이를 설명하자면, "나는 거짓말쟁이다" 라는 언어로서 나타낸 문장은 그 자체로 실체가 있는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의 객관적인 참, 거짓을 논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라는 명제는 그냥 언어로서 표현된 하나의 체계이자 알고리즘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알고리즘이란 본질적으로 그 참, 거짓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알고리즘의 결론이 무엇에 다다를지, 중간에 알고리즘의 늪에 빠져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아닌 지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언어 체계를 학습 시킨 의식이 없는 AI에게 "나는 거짓말쟁이다" 라는 명제의 참 거짓을 판단하게 한다면 AI는 곧 알고리즘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ai 아닌 의식과 직관이 있는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판단하게 한다면 우리는 곧 언어 체계의 한계와 그 무의미 함을 깨닫고 우리의 의식을 통해 '나' 가 거짓말쟁이 인지 아닌지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명제에서 '나' 라는 대상이 거짓말쟁이인지 아닌지에 대한 사전정보가 우리에게 있었다면 이 땐 그 객관적인 정보를 근거로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사전정보가 있다는 것은 이미 '나' 라는 대상과 내가 상호작용 하여 이를 관측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나' 라는 대상이 피노키오이고 이 피노키오는 항상 거짓말만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가 피노키오와 상호작용을 함으로서 관측한 적이 있어서 그가 거짓말만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이 때는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 가 피노키오 이고 그는 거짓말만 한다는 객관적인 정보를 의식을 통해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거짓말쟁이다" 라는 명제는 객관적으로 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라는 대상이 피터팬이고 이 피터팬은 항상 진실만 말하며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관측을 통해 알고 있었다면 이 때는 "나는 거짓말쟁이다" 라는 명제는 객관적으로 거짓이 됩니다.
이처럼 의식을 가지고 어떤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상태를 관측하여 이에 대한 정보를 가질 수 있는 우리 인간이, 그러한 의식을 통한 능력을 배제한 채로 알고리즘에 불과한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해결하려 들 때 모순이라는 알고리즘의 루프에 빠지게 되는 것은 결국 이 같은 명제를 표현하는 언어라는 체계에는 한계에 있음을 나타내며 우리 스스로 그 한계에 봉착하는 꼴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어의 한계를 체감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언어에서 말하는 '가정' 이라는 것인데, "나는 거짓말쟁이다" 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 한다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가정' 이란 것은 사실은 의식을 가진 우리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는 바로 대상과의 상호작용, 즉 객관적인 '관측' 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객관적인 관측이란 곧 '절대적인 정보' 참, 거짓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언어에서 말하는 가정의 뜻으로 이해한다면 이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것을 말한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이렇게 되면 명제는 거짓인게 되므로 모순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애초에 사전에 무언가를 다른 어떠한 것에 선행하여 가정한다는 것은 그것을 객관적인 사실로서 우리가 관측했다는 것이 됩니다. 가정법을 통해 객관적인 사실을 관측했다는 것은 곧 우리의 의식을 활용하여 알고리즘의 체계 밖에서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체계 밖에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그러므로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다" 는 결론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까닭이 의식을 가지고 이 문장이란 언어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참 또는 거짓이 성립될 수 없는 모순인 명제가 아니라, 그것이 참이라고 가정한다면 참이 되는 것이고,
거짓이라고 가정하면 거짓이 되므로 참 또는 거짓이 성립하는 명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아직까지 AI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능한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AI에겐 우리와 같이 알고리즘의 밖에서 판단할 수 있는 의식과 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모순이 아닌 참 또는 거짓인 명제가 된다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나'는 피노키오 또는 피터팬일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아직 '관측되지 않은 광자'와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아직 관측되지 않은 광자가 상자의 왼쪽에 있는지 오른쪽에 있는지는 관측 전에는 확정되지 않고 왼쪽에 있는 상태와 오른쪽에 있는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가정법을 통해 '나'가 피노키오 또는 피터팬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상자를 열어 관측함으로서 광자가 왼쪽에 있는지 오른쪽에 있는지 그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즉, 거짓말쟁이 역설에서 나오는 '자기 지시적 모순' 은 인간의 의식과 직관을 배제했을 때 들어나는 언어라는 체계의 한계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의식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계가 있는 수학과 언어라는 체계를 통해 사고하는 방식을 넘어서, 의식을 통해 특정 체계의 밖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비체계적인 직관을 통한 사유야 말로 우리 인간과 AI의 진정한 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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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논법 전개부터가 허점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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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뭐고 의식이 뭔데
언어는 그 자체로 정보가 아닌 사고체계일 뿐임. 의식은 우리가 그것의 존재를 정의하고 증명할 순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우리의 의식을 통해서만 직관이 발휘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