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ai가 기대되는구낭.
스토리도 맛깔나게 쓰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1화. 환영받지 못하는 용사 (The Rusty Hero)
쿵.
기체가 요란하게 흔들리며 지면에 닿았다. 엉덩이로 전해지는 충격이 꽤 묵직하다. 완충 장치가 나간 게 분명하다.
'도착이다. 추락이 아니라 착륙이라고 불러줄 수 있다면 말이지.'
타는 냄새가 났다. 오일이 새고 있다. 정비반 녀석들에게 잔소리를 좀 해야겠군. 알메인은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뚜껑을 연다.
탁.
"예정보다 3분 늦었군."
'이 고물 비행선으로 3분 지각이면 선방했다.'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갔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회색 콘크리트와 녹슨 파이프라인의 숲. 공기 중에는 쇳가루 맛이 났다. 폐에 좋지 않은 맛이다.
카일노아.
변경의 폐광 도시다.
50년 전까지만 해도 제국의 '신령석 광산'으로 번영했지만, 광맥이 고갈되자 사람들은 떠났다.
지금 남은 건 녹슨 기계와 빈 갱도, 그리고 버려진 사람들뿐이다.
'중앙에서 쫓겨난 자들의 무덤. 내 새 일터군.'
발밑을 보니 어젯밤 비가 왔는지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그 중 하나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기름때 묻은 정비복 차림의 사내. 영웅의 행색은 아니었다.
환영 인파는 없었다. 꽃가루도, 군악대도 없다. 그저 창문 틈으로 겁에 질린 눈동자 몇 개가 이쪽을 훔쳐보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다행이군. 환대가 요란할수록 뒤처리가 귀찮아지니까.'
영웅 대접은 수도에 두고 왔다. 여기 온 건 곰팡이 핀 빵이나 씹으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서다.
뒤따라 내린 쌍둥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장, 여기 분위기 왜 이래? 완전 묘지인데?"
리사나가 껌을 씹으며 투덜거렸다. 카이나는 묵묵히 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짊어진 배낭의 무게는 일반 병사 둘 몫은 되어 보였다.
"조용히 해. 우린 불청객이야."
알메인이 장갑을 고쳐 꼈다.
그때였다.
끼이익―!
금속이 비틀리는 소음. 도시 외곽을 둘러싼 강철 방벽의 틈새가 벌어졌다.
'저런. 유지 보수 예산을 어디다 팔아먹은 거지?'
틈새로 검은 그림자가 튀어 들어왔다. 네 발 달린 짐승. 등에는 붉은 연기를 뿜는 배기구가 달려 있다.
'스모그 울프'.
에나 과잉 노출로 변이한 짐승.
살아있지만 생물이 아니다. 반쯤 기계, 반쯤 괴물.
보통 밤에 떼를 지어 방벽을 긁어댄다.
하지만 낮에 단독으로 침입하는 건 드문 일이다.
'방벽에 구멍이 났다는 소리군.'
"꺄아악!"
주민 하나가 물동이를 떨어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울프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놈의 핏빛 안광이 먹잇감을 포착했다.
철컥.
리사나가 등 뒤의 장총을 꺼내려 했다. 카이나도 방패를 잡았다.
"멈춰."
알메인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탄약 아껴. 보급도 끊긴 마당에 낭비할 셈이야?"
'저런 잡졸 하나 잡자고 마탄을 쓰는 건 적자다.'
"그럼 어쩌게? 주민이 죽잖아!"
"내가 한다."
알메인은 손에 들고 있던 몽키 스패너를 단단히 잡았다.
놈의 뒷다리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도약 전의 자세. 놈의 붉은 눈이 주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표적 인식. 도약 준비. 거리 약 15미터. 단순한 알고리즘이군.'
알메인은 달리지 않았다. 대신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가로등. 낡은 철제 기둥에 전선이 노출되어 있다. 피복이 벗겨진 채 간신히 매달려 있는 꼴이었다.
'유지보수 따위 없는 도시다운 풍경이야.'
그리고 그 아래, 아까 보았던 고인 물. 울프가 주민에게 가려면 반드시 밟고 지나가야 할 위치다.
'조건 충족.'
알메인은 주머니에서 볼트 하나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조준. 가로등의 전구, 정확히는 그 연결부.
손목이 튕겼다.
챙!
볼트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전구를 때렸다. 유리가 깨지며 녹슨 연결부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왔다. 불꽃이 튀었다. 그것이 뱀처럼 바닥을 향해 늘어졌다.
울프가 도약했다. 놈의 발이 웅덩이를 밟았다.
'지금.'
알메인이 스패너를 휘둘렀다. 끝이 늘어진 전선을 낚아채 웅덩이 쪽으로 튕겨냈다.
치지직!
"깨갱!"
전선이 물에 닿는 순간, 웅덩이를 밟고 도약하려던 울프의 몸이 푸른 전류에 휩싸였다. 근육이 수축하며 공중에서 경직된다. 놈의 붉은 눈이 초점을 잃었다.
'경직 시간, 길어야 2초.'
알메인이 땅을 찼다. 품으로 파고든다. 놈의 가슴팍, 붉게 빛나는 핵(Core)이 보인다.
스패너를 역수로 쥐었다. 체중을 실어 내리찍는다.
퍼억!
둔탁한 파열음. 핵이 부서지며 놈의 몸에서 검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울프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상황 종료. 소요 시간 3초.
'깔끔하군. 가로등 수리비는 청구해야겠지만.'
알메인은 스패너에 묻은 기름때를 장갑으로 닦아냈다.
주민들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알메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도, 화려한 검술도 아니었다. 그저 공사판 인부 같은 움직임이었다.
"저기… 감사합니다…."
목숨을 건진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메인은 대답 대신 방벽의 구멍을 가리켰다.
"감사는 됐고. 방벽 수리공은 어디 있습니까?"
'구멍이 뚫려 있는데 넋 놓고 서 있다니. 안전불감증이 심각하군.'
그때, 도시 중앙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우우우웅―.
오후 6시.
카일노아의 밤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거대한 강철 방벽이 굉음을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땅이 울렸다.
이 도시에는 밤의 규칙이 있다.
첫째, 방벽이 닫히면 아침까지 열리지 않는다.
둘째, 창문에 불빛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한다.
셋째, 아이들은 울음을 참는다.
규칙을 어기면 죽는다.
붉은 안개 속의 것들이 소리를 따라오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서둘러 창문에 판자를 덧대고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는 텅 비었다.
알메인은 닫히는 문틈으로 밖을 내다봤다.
붉은 안개. 그 속에서 수천 개의 붉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끼이익, 끼릭.
놈들이 강철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유배지가 아니었어.'
알메인은 닫힌 방벽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사형장이었군. 젠장.'
2화. 백색의 위선자 (The White Hypocrisy)
질척.
발을 디딜 때마다 불쾌한 소리가 났다. 대리석 바닥 위에 검은 진흙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성당 안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먼지 한 톨 없다. 창문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게 빛나고, 바닥에는 최고급 융단이 깔려 있다.
얼마나 더러워 보이면 저렇게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릴까?
예산 낭비다. 저 융단 하나 팔면 방벽 수리 자재를 마차 열 대로 살 수 있을 텐데.
정면의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사제복. 금실로 수 놓인 지팡이. 마레 성교회 제3교구 파견관, 세로다.
변경 도시의 방어 예산은 제국군이 아닌 교회가 관리한다.
명목상 '신성한 도시 보호'를 위한 헌금이지만, 실상은 돈줄을 쥔 자가 지휘권을 쥐는 구조다.
세로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마치 오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알메인의 군화를 내려다봤다.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군요."
세로가 손수건으로 코를 막으며 말했다.
"중앙에서 쫓겨난 개가 짖는 소리는 듣기 싫지만, 보고는 받아야겠기에 불렀습니다."
침묵.
알메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느릿느릿, 한없이 천천히 젖은 장갑을 벗기 시작했다. 첫 번째 손가락. 두 번째. 세 번째. 가죽이 피부에서 벗겨지는 소리만이 고요한 성당 안에 울렸다.
세로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불편한 듯 자리에서 몸을 뒤로 젖혔다. 헛기침 한 번.
'개라니. 틀린 말은 아니군. 목줄 끊고 도망쳐 온 개니까.'
알메인은 장갑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그제야 입을 열었다.
"방벽 상태는 어떻습니까?"
사실만 전달했다. 감상은 필요 없다.
"최악입니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요."
세로는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요. 신성한 마레 님의 가호가 깃든 방벽입니다. 당신의 무능함을 벽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말이 안 통하는 부류군. 전형적인 탁상공론자다.'
이런 부류는 수치보다 자신의 신앙심을 더 믿는다. 대화할 가치가 없다. 알메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믿기 싫으면 직접 가서 보시죠. 스패너 들고."
"하! 건방지군요. 수도 방위전 때 명령 불복종으로 쫓겨난 주제에."
세로가 비꼬듯 웃었다.
"영웅 놀이에 심취해서 빈민가 쓰레기들을 구하느라 전력을 낭비했다죠? 여기서도 그럴 셈입니까?"
'쓰레기가 아니라 납세자다. 그리고 노동력이고.'
알메인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영광은 중앙에 두고 왔습니다. 저는 여기 곰팡이 핀 빵이나 먹으러 온 겁니다."
"그 입 다무세요."
세로가 탁자 위로 무언가를 던지듯 올려놓았다.
짤랑.
황금색 열쇠. 끝부분에 푸른 보석이 박혀 있다. 미세한 마력 파동이 느껴진다. 도시 방벽의 시스템을 제어하는 '메인 제어 키'. 성유물이다.
"본론을 말하죠."
세로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방벽의 노후화가 사실이라 칩시다.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겠죠."
그는 서랍에서 낡은 양피지 지도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바스락. 오래된 종이 특유의 마른 소리가 났다.
지도는 낡았지만 정교했다. 도시의 상층부는 푸른 잉크로, 하층부는 붉은 잉크로 구획이 나뉘어 있었다. 세로의 하얀 손이 지도 아래쪽, 붉게 표시된 구역 위로 천천히 내려갔다.
"이 구역."
손가락 끝이 '루이너(Ruiner)' 거주지를 가리켰다. 그곳엔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거주 인구: 약 823명'
알메인의 시선이 그 숫자 위에 멈췄다. 823. 그는 지도를 노려봤다. 빛바랜 양피지 위의 붉은 표시. 그 밑에 깨알같이 적힌 건물 번호들. 1번 막사. 2번 막사. 12번까지.
세로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톡톡. 지도를 두드리는 음.
"이 구역의 전력을 차단하세요. 그 에너지를 성당 쪽 방벽으로 돌리십시오."
알메인은 여전히 지도를 보고 있었다. 823명. 12개 막사.
전력 차단. 밤에 사이렌이 울리고 방벽이 닫힐 때, 전력이 끊기면 그 구역의 방어 시스템은 멈춘다. 붉은 안개와 스모그 울프들이 무혈입성하게 된다는 뜻이다.
정적이 흘렀다.
세로가 기다리다 못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에나 감응력도 없는 쥐새끼들 아닙니까? 그들을 희생해서 성당과 상층부를 지키는 겁니다. 합리적인 판단이죠."
그제야 알메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건 방어가 아니라 학살입니다."
"정화라고 부르세요."
"루이너들이 죽으면 하수도가 막히고, 폐광에서 자재를 나를 인력이 사라집니다. 도시는 일주일 안에 마비됩니다. 당신의 '합리적 판단'은 자,살입니다."
세로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감히 사제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알메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저는 지휘관입니다. 작전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제 판단에, 그건 하책(下策) 중의 하책입니다."
'내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건, 이제 사양이다.'
세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감히 사제의 명령을 거부해? 그런 표정이다.
그때였다.
째깍.
알메인의 등 뒤에서 총구가 권총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리사나였다. 그녀는 말없이 허리춤의 리볼버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고 세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만으로도 충분한 위협이었다.
우드득.
카이나는 주먹을 쥐었다. 뼈마디 부딪치는 둔탁한 음이 성당 안에 울렸다.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명령만 내려, 대장."
낮고 차분한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살기는 진짜였다.
세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뒤로 물러서며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턱.
알메인이 손을 뻗어 카이나의 어깨를 잡았다.
"멈춰."
'때리면 손해다. 보급관을 폭행하면 밥줄이 끊긴다. 참아라.'
카이나가 씩씩거렸지만, 알메인의 악력에 밀려 뒤로 물러났다. 리사나도 손을 내렸다.
세로는 헐떡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엔 수치심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탁자 위의 키를 낚아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떨림이 가시지 않았다.
"좋습니다. 아주... 아주 훌륭한 군인 정신이군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어디 당신의 그 잘난 '전술'로 막아보시죠. 단."
세로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아직 떨리고 있었다.
"교회 창고의 신령석은 단 하나도 내줄 수 없습니다. 그건 신성한 의식에만 쓰여야 하니까요."
보급 차단.
예상했던 수순이다.
'보급로를 끊겠다 이거지. 전형적인 횡포야.'
방벽을 가동하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신령석 없이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신령석.
방벽과 아츠를 가동하는 에너지 결정체다.
한 알에 금화 100닢.
카일노아 전체 창고에 고작 20알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전부가 교회 손안에 있다.
알메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양피지를 한 번 더 내려다봤다. 823명이라는 숫자. 12개의 막사. 그리고 그가 짚었던 자국.
그는 고개를 들어 세로를 똑바로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군말이 없었다. 세로는 그 담담한 수락에 오히려 당황한 기색이었다. 비명을 지르거나 매달릴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알메인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가자."
"대장! 그냥 갈 거야? 저 자식..."
리사나가 항의하려 했지만, 알메인은 그녀의 뒷덜미를 잡아 질질 끌고 나갔다. 카이나도 마지못해 뒤따랐다.
성당 문을 나서자 다시 매캐한 쇳가루 냄새가 훅 끼쳐왔다.
하늘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대장, 진짜 어쩔 거야? 돌 없으면 아츠도 못 쓰잖아."
카이나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알메인은 주머니에서 다 찌그러진 담배갑을 꺼냈다. 빈 곽이었다.
'보급 제로. 아군 없음. 적은 끊임없이 몰려온다. 난이도가 지옥이군.'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
알메인은 폐광 쪽을 바라봤다. 석양이 그의 등 뒤로 기울고 있었다. 저 멀리 폐광 입구에서 바람이 불어와 녹슨 철재 구조물을 흔들었다. 끼익, 끼이익. 금속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 버려진 것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걱정 마."
그는 빈 담배갑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쩡그랑.
쓰레기통 바닥에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쓰레기라고 다 못 쓰는 건 아니니까."
알메인은 폐광 쪽으로 걸어갔다. 카이나와 리사나가 뒤를 따랐다.
석양이 세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밤이 오기까지 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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