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 안쪽의 세계는 숲속과는 또 다른 의미로 강렬한 후각적 충격을 선사했다.
숲의 냄새가 축축한 부엽토와 비린내였다면, 벨로스 마을의 공기는 삶에 찌든 땀내와 가축의 분뇨, 그리고 어딘가에서 끓고 있는 정체불명의 스튜 향이 뒤섞인 복합적인 악취였다.
“으음…….”
최진웅은 코를 감싸 쥐었다.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리얼한 후각 정보 처리에 뇌가 과부하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마을의 풍경은 그가 모니터 너머로 보아오던 ‘이세계 판타지’와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으로 달랐다. AI가 그려낸 그림 속 마을이 낭만과 보정을 듬뿍 끼얹은 화사한 파스텔 톤이라면, 눈앞의 현실은 채도를 잔뜩 낮춘 칙칙한 무채색에 가까웠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기보다는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옷감은 거칠고,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선명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현대인 특유의 반짝이는 욕망 대신, 하루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는 묵직한 생존 본능만이 감돌았다.
“신기한가 보지? 하긴, 촌동네라 시끄럽고 냄새나긴 해도 사람 사는 맛은 있는 곳이야.”
아델이 진웅의 시선을 느끼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들이 시장통을 지날 때였다. 한 노점상이 꼬치구이를 굽고 있는 모습이 진웅의 눈에 들어왔다. 화덕의 불이 약해지자, 덥수룩한 수염의 상인이 손가락을 딱 튕기며 짧게 중얼거렸다.
“이그니.”
그러자 손끝에서 성냥개비 머리만 한 작은 불티가 톡 하고 튀어나와 숯에 옮겨붙었다. 마치 일회용 라이터를 켠 듯한 간편함. 옆 가게의 생선 장수 역시 파리가 꼬이자, 손을 휘저으며 무언가 웅얼거렸고, 그러자 선풍기 미풍(微風) 정도의 바람이 불어 파리들을 쫓아냈다.
“저런 것도…… 마법인가요?”
진웅이 신기하다는 듯 묻자, 아멜리아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저건 생활 마법, 혹은 0서클이라 불리는 기초 중의 기초예요. 마나 감응력이 쥐꼬리만큼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며칠 연습해서 쓸 수 있는 도구 같은 거죠.”
“그럼 아까 아멜리아 님이 쓰신 [파이어 볼] 같은 건 누구나 못 쓰는 거고요?”
“당연하죠! 2서클 이상의 마법부터는 ‘구조’를 이해해야 해요. 체계적인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들이 어설프게 흉내 냈다가는 마나 역류로 폭사하거나, 엉뚱한 걸 소환해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거든요.”
그녀는 지팡이를 고쳐 잡으며 덧붙였다.
“그래서 왕국법으로도 2서클 이상의 마법 사용은 자격증이 있는 마법사나 귀족에게만 허가돼요. 무면허자가 공격 마법을 쓰다 걸리면, 글쎄…… 손목을 자르거나 광산 노예로 팔아버리던가?”
아멜리아의 으름장에 진웅은 목을 움츠렸다.
지식의 독점. 그리고 그 독점을 통한 계급의 유지.
이곳은 마법이 곧 권력이자 자본인 세상이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쓰는 현대와 달리, 여기서는 ‘어플리케이션’을 구동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 셈이었다.
‘꿈 한 번 참 살벌하게 꾸네. 디스토피아 판타지물인가.’
진웅이 속으로 투덜거리는 사이, 일행은 마을 중앙의 광장에 도착했다.
넓은 공터 중앙에는 낡은 석조 분수가 있었지만, 물은 한 방울도 나오고 있지 않았다. 대신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양동이와 물통을 든 채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경건하기까지 했다.
“무슨 축제라도 하나요?”
“아니, 생존 신고지.”
아델이 인파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설명했다.
“벨로스는 지대가 높아서 우물을 아주 깊게 파야 하거든. 지하수 맥이 불안정해서 건기에는 툭하면 말라버려. 그래서 영주님 소속의 마법사께서 하루에 두 번, 광장 분수에 물을 채워주시지. 영지민들이 뼈 빠지게 세금을 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야.”
마법이 수도 시설을 대체하고 있었다.
물을 만드는 마법사가 곧 수도공사이자, 세금 징수의 명분인 셈이다. 진웅은 이 비효율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시스템에 기묘한 감탄을 느꼈다.
잠시 후, 웅성거림과 함께 화려한 비단 로브를 입은 중년 남성이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다. 영주 소속의 마법사인 모양이었다. 그는 줄지어 선 서민들을 벌레 보듯 훑어보더니, 분수대 앞의 단상에 올라섰다.
“조용히! 위대하신 영주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물을 받도록 하라.”
마법사가 엄숙하게 선언하고는 양팔을 벌렸다. 광장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진웅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관찰했다. 아멜리아가 말한 ‘고등 교육을 받은 엘리트 마법사’의 실력이 궁금했다.
“흐읍…….”
마법사의 입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서 정확한 발음은 들리지 않았지만, 마치 불경을 외우듯 낮고 리드미컬한 웅얼거림이 이어졌다.
10초, 20초, 30초…….
생각보다 영창은 길었다. 아멜리아가 썼던 [파이어 볼]보다 훨씬 긴 시간. 마법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쯤,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타나라! [크리에이트 워터(Create Water),매시브 파운테인(Massive fountain)]!”
콰아아아—!
마법사의 지팡이 끝, 허공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말라붙어 있던 분수대 바닥으로 물이 채워지자,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에 안도와 환희가 서렸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는 최진웅의 표정은 미묘하게 구겨져 있었다.
‘저게…… 물이라고?’
마법으로 만든 물은 기괴했다.
분명 젖는 성질을 가졌고 투명하긴 했지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의 질감이 엉망이었다. 물방울이 튀는 물리 효과(Physics)가 전혀 적용되지 않은 듯, 젤리처럼 뭉텅이로 떨어져 내렸다. 빛이 투과될 때 생기는 굴절이나 반짝임도 없었다. 마치 그래픽 옵션을 ‘매우 낮음’으로 설정해놓은 90년대 게임 속의 액체 표현 같았다.
심지어 분수대에 고인 물의 수면은 찰랑거리는 파동 없이, 파란색 장판을 깔아놓은 듯 평평했다.
“우오오오!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영주님 만세!”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저해상도 텍스처 덩어리에 환호하며 앞다투어 양동이에 물을 담았다. 그들에게는 질감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목을 축일 수 있다는 기능만이 중요할 뿐.
“어때? [크리에이트 워터]계의 4서클 마법이야. 저 정도 수량을 단숨에 만들어내려면 정신력 소모가 엄청날 텐데, 역시 영주님 직속은 다르네.”
아멜리아가 동경 어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에반에 진웅은 점점 저 '마법'이라는게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이 꿈속 세계의 ‘서버’는 렌더링 상태가 불량한 걸까? 아니면 이 세계의 마법이란건 플레이스테이션 2 시절 게임 속 개체를 불러오는 주문이라도 되는건가?
‘아까 그 영창…… 뭐라고 중얼거린 거지? 저렇게 긴 시간 동안 주문을 외웠는데 결과물이 고작 저거라니.’
“진웅? 넋을 놓고 있네. 목말라? 우리도 좀 얻어 마실까?”
아델이 진웅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좀 비현실적이라서요.”
“하하, 촌놈 티 내기는. 마법은 언제 봐도 신비롭지.”
신비롭기는 개뿔. 그래픽 카드가 타기 직전인 것처럼 보이는데.
진웅은 속으로 툴툴거리며, 여전히 ‘젤리 같은 물’을 퍼담고 있는 군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이 불편하고 낮은 해상도의 꿈이 언제 끝날지 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탭
그냥 일반 탭에 쓸거야
왜 표지에는 여자가 두명이 아니라 남자 한명이 껴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