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하고싶어서 돌리는데 먼가 많이 빠져있음.. 원래 소설이 좀 쓰기 빡센가?
쿠웅-! 거대한 진동과 함께 공간이 뒤틀렸다. 찢어진 대기의 틈새로 비릿한 혈향이 훅 끼쳐 나왔다. 이시현은 그 틈을 비집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온몸이 땀과 피로 젖어 천근만근 무거웠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에 고인 웅덩이가 찰박거렸다. A급 게이트. 그것도 변종이 득실거리는 최악의 던전이었다. 보통이라면 공격대 단위로 움직였어야 할 곳을 홀로 정리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쇳가루 냄새가 났다. 시야가 핑 돌았지만, 그는 억지로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텼다. 여기서 쓰러지면 누가 시체를 수습해 줄지도 모르는 세상이었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안색이 영 파리한데요?”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시현의 어깨 위로 둥둥 떠다니는 정체불명의 마스코트가 걱정스러운 듯 물어왔다.
솜뭉치처럼 생긴 녀석은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시현의 얼굴 주위를 맴돌았다. 시현은 대답할 기운도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해야만 했다. 그게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생존 본능이었다. 그는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검붉은 피를 거칠게 닦아냈다. 장갑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다.
“괜찮아. 그냥 좀…… 지쳤을 뿐이야.”
목소리가 쩍 갈라져 나왔다. 마스코트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시현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폐허가 된 도시로 향했다. 부산. 한때는 제2의 수도라 불리며 화려함을 자랑했던 도시는 이제 앙상한 뼈대만 남은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고, 도로는 곳곳이 갈라져 흉물스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유일한 안식처인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보수되지 않은 도로 위에는 부서진 차량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가로등은 목이 꺾인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인적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적막강산. 시현은 익숙하게 골목을 누비며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아갔다. 다 쓰러져 가는 2층 양옥집. 벽면의 페인트는 벗겨져 흉한 얼룩을 남겼고, 대문은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곳만이 그가 안심하고 몸을 뉘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어서 들어가서 쉬어요. 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어.”
마스코트의 재촉에 시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피비린내보다는 백배 나았다. 그는 신발을 벗을 새도 없이 침대 위로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낡은 매트리스가 비명을 지르며 그의 무게를 받아냈다. 천장에 핀 얼룩이 기묘한 지도처럼 보였다. 멍하니 그것을 응시하던 시현은 습관처럼 손을 뻗어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적막이 싫었다. 차라리 소음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치직. 낡은 브라운관 TV가 켜지며 화려한 영상이 쏟아져 나왔다. 화면 속에는 형형색색의 프릴이 달린 드레스를 입은 소녀들이 등장했다. 마법소녀 아이돌. 요즘 세상을 지키는 영웅이라 칭송받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있는 곳은 던전이 아니라 방송국 스튜디오였다.
[꺄아악! 너무 징그러워요! 오빠들, 이거 좀 치워줘요!]
센터에 선 핑크색 머리의 소녀가 과장된 몸짓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철장에 갇힌 D급 부형체 하나가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고작 D급이었다. 일반인 장정 두어 명이면 제압할 수 있는 하급 몬스터. 시현이 방금 처리하고 온 A급 몬스터들의 발톱 때만도 못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화면 속의 마법소녀들은 마치 마왕이라도 만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카메라는 공포에 질린 척하는 소녀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완벽하게 세팅된 메이크업,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는 머리카락. 그 어디에도 치열한 전투의 흔적은 없었다. 그저 예쁘게 보이기 위한 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하.”
시현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신경질적으로 채널을 돌렸다. 다음 채널에서도, 그다음 채널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마법소녀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몬스터의 시체 위가 아닌,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위에서.
[우리는 사랑을 지키는~ 매지컬 엔젤~!]
가사는 유치하기 짝이 없었고, 안무는 적을 죽이기 위한 동작이 아니라 팬들의 환호를 끌어내기 위한 애교에 가까웠다. 시현은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플라스틱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화면 속의 세상은 평화로워 보였다. 마법소녀들은 웃고, 떠들고, 노래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창창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게이트는 터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소위 ‘세상을 구한다’는 마법소녀들은 TV에 나와 히히덕거리며 예능이나 찍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냐고.”
시현은 중얼거렸다. 본업을 망각한 채 인기에만 영합하는 그들의 모습이 역겨웠다. 마법소녀란 무엇인가. 인류를 위협하는 부형체와 맞서 싸우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었던가. 언제부터 그들이 연예인이 되어버린 걸까.
“주인님? 표정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마스코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시현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A급 게이트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자신의 모습과, TV 속에서 웃고 떠드는 마법소녀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피와 땀, 그리고 화려한 조명과 가짜 비명. 이 괴리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그냥…… 좀 웃겨서.”
시현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과거의 마법소녀들은 이러지 않았다. 그들은 누구보다 처절하게 싸웠고,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하지만 지금은? 부형체를 잡는 건 뒷전이고, 굿즈 판매와 팬미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심지어 D급 몬스터 하나를 두고 벌벌 떠는 척 연기하는 꼬라지라니. 그건 기만이요, 모독이었다.
그는 다시 눈을 떴다. TV 속에서는 여전히 마법소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저들이 잡아야 할 몬스터들은 누가 잡고 있는가. 바로 시현 같은, 이름 없는 사냥꾼들이었다. 마법소녀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그런데도 세상은 마법소녀들에게 환호했다. 이 기형적인 구조가 역겨울 정도로 싫었다.
“잘못됐어. 이건 근본부터 잘못된 거야.”
시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마법소녀들이 의무감을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부형체 사냥이 본분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었다.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영웅.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즐기는 가짜 전쟁.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방치된 게이트들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었고,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주인님?”
마스코트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녀석의 눈동자에 시현의 지친 얼굴이 비쳤다.
“괜찮냐고 물었지?”
시현이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피로와 무력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서늘한 분노와 결의가 들어차 있었다.
“아니. 전혀 안 괜찮아.”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삐걱거리는 스프링 소리가 비명처럼 울렸다. TV 속의 마법소녀들은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저 가증스러운 미소를 찢어발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단순히 폭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바꿔야겠어.”
“네? 뭘요? TV 채널을요?”
마스코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채널을 돌리는 것처럼 쉬운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이 썩어빠진 사회를 말이야.”
그의 선언에 마스코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은 입이 떡 벌어졌다.
“사, 사회를요? 어떻게 바꿀 건데요? 주인님 혼자서?”
마스코트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고작 개인 헌터 한 명이 세상을 바꾸겠다니, 미친 소리로 들릴 법도 했다. 하지만 시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는 창밖을 내다봤다. 무너진 도시의 실루엣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이 폐허가 바로 지금의 현실이었다. 마법소녀들이 외면하고, 대중들이 잊으려 애쓰는 진실. 시현은 그 진실을 세상의 턱 밑에 들이밀 생각이었다. 진짜 공포가 무엇인지, 진짜 영웅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작정이었다.
“어떻게요? 네? 말 좀 해봐요!”
마스코트가 답답하다는 듯 시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재촉했다. 시현은 시선을 돌려 다시 TV를 바라봤다. 화면 속의 마법소녀가 윙크를 날리고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렸다. 흐릿하지만 명확한, 기묘한 미소였다.
“글쎄.”
“…… 네?”
“잘.”
시현은 짧게 대답하며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구체적인 계획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일부터는 더 이상 조용히 몬스터만 잡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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