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첫번째 버전이 나온게 일년 전인데 지금은 달리를 넘어 스테이블 디퓨전이라는 것도 나왔다.


스테이블 디퓨전은 모든 사물을 완벽에 가깝게 그린다.


물론 아직 자세히보면 뭉개지는 곳이 몇곳 보이지만 AI 발전 속도를 볼때


저 미흡한 점 때문에 AI가 그림을 대체하지 못할거라 주장하는건 허공에 대고 외롭게 짖는거다.


달리2 가 그림을 그릴 때 부터 화가의 종말을 경고한 사람이 있었는데


스테이블 디퓨전이 나오자 이젠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AI는 곧 스테이블 디퓨전도 '따위'로 만들거다. 디퓨전이 달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미술계에 대한 과학의 침공은 구 세기에도 한번 벌어진적이 있었다.


사진기다. 사진기는 고전주의 예술을 끝냈다.


인체의 해부로 그림을 그린 다빈치. 발전시킨 미켈란젤로. 정점을 찍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도 사진기에 퇴물이 되었다.


사진기가 등장한 이상 근대에는 근대적인 미술이 필요했다. 모더니즘 회화의 시작이다.



모더니즘은 사진이 담지 못하는걸 담으려 했다. 처음엔 사실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탈인상주의 시점이 오면 객관화된 사실을 넘어 화가 주관이 깊게 개입하면서 그림의 형식도 무너졌다.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 풍경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그림에 묘사했다.


작가마다 특이한 화풍을 지니는게 사조가 되었고. 그림 감상에 있어 그림 뿐만 아니라 작가의 심리도 분석 대상이 되었다.


모더니즘이 말기에 나아가면 잭슨 폴록이 붓가지고 뿌린게 그림이 되고


캔버스 직선 몇개 그린게 미니멀리즘이라고 모더니즘의 끝자락을 장식했다


다만 모더니즘도 사진기에 대한 극복만을 제시했을 뿐 스스로를 고급화하고 대중과는 거리를 벌려 비판점을 제공했다.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가 되면 그림이란 것을 해체하고 탈사실적 흐름이 어어져 뭐든 예술이 된다.


예술에 우열은 없고 예술은 정해진게 아니다 그림 음악 표현 규정할 수 없으며 뭐든 자유롭다.


변기에 싸인하고 전시해도 그게 예술이 될 수 있다.


뒤샹의 변기는 예술이란게 예술가가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것 자체가 예술일수도 있고 혹은 예술이 아닐수도 있다. 그런건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중요한게 아니다.



다시 달리 등 그림 AI로 돌아와보면 달리가 그림 그리는 법을 학습해서 그림을 뽑아낸다고


화가라는 직종이 종말하진 않을걸 알게 된다. 화가를 포함한 예술가 말이다.


달리는 사진기가 만들 수 없는 그림도 그려낼 수 있지만. 그래봐야 달리는 현재의 미술사조에서 굉장히 뒤떨어진 존재다.


달리의 목적은 예술가가 편하게 쓸 수 있는 도구가 되는 점에 있지 새로운 사조를 창시하거나 길을 열어줄 순 없다.


그러한 길은 달리라는 편한 도구를 가진 예술가가 달리를 통해 제시해야한다.


달리가 대체하는건 그닥 창조적이지도 예술적이지도 않은 그림쟁이들이지 진정한 예술가를 대체할 순 없다.


달리는 뒤샹처럼 변기를 예술로 만들수도 반 고흐처럼 새로운 화풍을 내놓는 존재가 아니다.


달리는 제작자지 감독이 아니다. 인간은 감독이 되어야한다.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AI는 아직 가늠도 없으니 먼 미래일거다.


달리의 가장 창조적인 점은 진정한 예술도 못하는 모방자 AI에게 달리라는 천재적인 화가의 이름을 붙인 제작자들이다.


포스트 모던 시대에선 그것도 하나의 예술로도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