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참 신기한 게
극한 상황이 닥치면 없던 능력도 생기더라고요
제가 제대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는데
군대에서 그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사람 기억력이라는 게 위기 상황에선 기적처럼 발휘된다는 걸요
제가 포병대대 근무하던 시절 일병 때 일입니다
하루는 포대장님이 A4 용지를 한 장씩 나눠주시는데
대적관 같은 정신교육 내용이 아주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딱 1시간 줄 테니까 이걸 다 외우라는 겁니다
못 외우면 일주일 내내 경계 근무 추가 투입에
작업까지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으셨죠
시험도 한 명씩 불러서 구술로 본다는데
틀리면 가만 안 둔다고 하시니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아시겠지만 그땐 군대에 구타가 만연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점호 끝나고 선임한테 안 맞으면
내가 뭐 큰 실수라도 했나? 싶어서 오히려 불안해하던 때였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뭔지 아세요?
사람이 궁지에 몰리니까 외워지더라는 겁니다
당시 내무반에 70명 정도가 있었는데
고등학교도 못나왔던 놈 한 명 빼고 69명 전원 통과했습니다
그 못 외운 친구는
나중에 어떻게 됐냐고요?
대대장님이 특별 지시를 내리셨죠
부대에 서울대 다니다 온 엘리트 병사가 있었는데
걔한테 '니가 얘 검정고시 합격시켜라' 하고 과외 선생으로 붙여준 겁니다
매일 밤 1시간씩 연등하고 주말엔 6시간씩 과외하라고요
대신 합격하면 4박 5일 포상 휴가 준다고 하니까
그 과외 선생 병사의 열의가 장난이 아니었죠
아무튼 사람은 극한 상황이 주어지면 어떻게든 해내게 되나 봅니다
학교 다닐 땐 죽어라 안 외워지던 게 군대에선 살기 위해서 외워지더라고요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요?
절대 못 하죠
지금은 백만 원을 준다 해도 못 외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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