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 그가 지식인이란 사실은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사진과 독서 그리고 책 선택을 넘어서 음악선택들 까지.
숨은 구 시대의 지식인임을 강박적으로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흐르는 강물 처럼 살아가는것은 소박한 만족감으로 보이지만.
변수들은 극이 진행이 되면서 계속 튀어서 나온다.
이것은 외면에 가깝다.
극중 주인공은 '지금은 지금이고 나중은 나중이라고' 하면서 위로를 전하지만.
지금이 쌓여서 나중이 됨을 그는 알고있다.
최후에는 서글픈 표정을 지으면서 끝난다.
그는 이미 지금이 누적이 되어서 나중이 된 존재들을 극에서 계속 만나왔다.
누적된 나중이 다가옴을 느끼면서 공포에 질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최근 상황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응은 영화로 계속 나오고 있다.
80년대 이후 지속된 세계가 변하고 있음을.
사실 한 00년대 말기부터 예술가들은 눈치채고 저마다의 반응을 내놓고 있다.
어쩌면 퍼펙트데이즈의 주인공은 파리 텍사스의 연속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파리 텍사스는 변화의 80년대의 고통을 다뤘기 때문이다.
고통의 전조에 대한 공포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이 든다.
빔 벤더스 오랜만의 평가좋은 극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