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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게마가 '모든 책을 불에 태워라'는 지시를 내리자 적도 기니의 모든 도서관이 폐쇄되고 기록보관소는 파괴되었으며, 서양에서 출판된 모든 책들과 식민지 시절 교과서는 공개적으로 불살라졌다. 타자기 사용과[30] 출판 활동 또한 금지되었고 안경을 쓴 사람과 책을 가진 사람은 지식인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이는 응게마는 문서 최상단의 인용문에서 말한 것처럼 외국 문화와 교육이 '아프리카의 순수한 정기'를 오염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31] 이런 반지성주의 정책은 그 유명한 킬링필드보다도 몇 년 앞선 행각이었다.

당시 적도 기니에는 대학교는커녕 중고등학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과학과 문화를 가르치는 것과 문학 작품 제작도 금지되었고, 스페인으로 유학 간 학생들은 국적을 박탈 당한 후 살해되었다. 그리고 1969년에서 1976년 사이에 적도 기니에서는 장관 3명을 포함하여 교사 또는 교육공무원 75명이 처형되었고 교사 수백 명이 쫓겨났으며 학교 수백여 곳이 폐교되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정책 탓에 식민지 시절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였던 적도 기니가 응게마가 몰락한 후에는 일부 특권층을 제외하면 대학 졸업자가 거의 없어졌고, 기술 학교 졸업생이 4명, 의사는 단 2명[32]밖에 없었다고 한다.[33] 거기에 군인들과 행정을 맡는 관료들마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 위주로 등용되었고[34], 당연히 나라 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제국주의의 상징'인 지적 유산의 잔재를 없애는 것을 넘어 '제국주의의 잔재' 자체를 모조리 없애버리는 정책도 실시되었는데,응게마는 병원 주방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식민지 관습을 끝내기 위해' 환자 가족이 직접 병원까지 가서 음식을 가져오게 했고, 후에는 서구식 의료 체제도 '아프리카 전통 의약품 사용을 장려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금지되어 응게마의 말기에 적도 기니에는 주술사가 의사를 대신해야 했고 (서양식) 약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또 신발 역시 '아프리카적이지 않다'며 중지되었다.

1973년 가을부터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흔적을 모두 지워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몇 달 동안 홍위병의 제복을 모방한 옷을 입은 '마시아스와 함께 행진하는 청년' 대원들이 집집마다 수색해가며 스페인이 적도 기니에 남긴 문헌들과 예술 작품들, 심지어 식민지 시대에 촬영된 사진,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옷과 물건들까지 '제국주의의 잔재'로 간주하고는 이들을 무더기로 파괴하게 했다.

그리고 수도는 밤이면 완전한 어둠에 빠져들게 된 데다가[66] 열대에 사는 곤충과 파충류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문자 그대로의 '유령 도시'가 되었으며[67], 나라는 '적도 기니에는 법이 없으며 중요한 것은 정글의 법칙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치안이 사라진 무법천지가 되었다.

당시 적도 기니의 경제 파탄이 어느 정도였냐면 응게마의 경호원들조차 수렵채집으로 살아가야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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