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2세대 이후 영국에서는 이성우월주의의 디이즘(Deism 이신론), 대륙에서는 계몽주의 사상이 일어남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타난 사상이 독일의 “경건주의”(Pietism)였다. 그런데 경건주의는 결과적으로 “자유주의”(liberalism)을 태동시킴으로 종교개혁의 신앙을 혼합주의와 다원주의로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경건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야콥 슈페너, 헤르만 프랑케, 진젠도르프,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등을 들 수 있다. 경건주의의 선구자로서는 뵈메와 아른트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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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젠도르프는 슈페너가 가진 경건주의 이상을 유지하여 “헤른후트”(주님의 피난처)에서 교회들을 통합시키고 부흥시키기를 원했다. 그는 “교회 내 작은 교회”를 추구하고 있던 중 우연히 손에 넣은 “형제 연합체”의 법에 따라서 모라비안 교회를 이루게 되었다. 이제 경건주의자들은 교리보다 믿음과 사랑의 체험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고 혼합적으로 변해갔으며 진젠도르프는 “초교파주의”란 단어를 사용하는 최초의 교회인이 되었다.
그는 십자가에 대한 묵상을 통하여 성취하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강조했으며, 하나님에 관한 지식도 십자가로만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신앙을 강조했다. 결국 이는 “도덕폐기론”적인 태도로 흐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교리를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리를 무시하고 삶을 강조하는 경건주의 쪽으로 치중하다 보면 신앙의 객관적 진리에서 멀어지게 되며 곧 윤리적 다원주의를 낳게 된다.
이처럼 경건주의자들은 개인적인 신비주의적 경향 때문에 객관적 진리를 무시하고, 초창기에는 성경을 강조했지만 갈수록 성경보다는 삶을 더 강조하게 됨으로 신학의 “복수주의”(pluralism)를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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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와 함께 시작된 지성시대인 “계몽주의”는 런던과 파리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영국의 자연신론, 프랑스의 이성주의, 독일의 관념주의가 그것이다.
영국의 허버트는 최초의 자연신론자이며 실천적 도덕성과 예배를 포함하는 5대 항목을 제시했다. 토머스 홉스는 “레비아탄(절대권력)”을 제안했으며, 존 로크는 이성을 사용하여 진리를 찾기를 주장했다. 로크가 기독교의 합리성과 성경적 교리를 회복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존 롤런드는 계시는 진리의 기초가 아니고 단지 사람이 지식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정보의 통로라고 주장했다. 매튜 틴달은 복음이 본래 도덕적이라고 선포하면서 기독교가 계시종교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라는 과소평가를 내린다. 데이비드 흄은 이성으로 신성에 대한 지식을 결코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경험의 그릇된 해석에서 비롯되었다고하는 회의주의의 견해를 가진다.
프랑스의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서 모든 것을 의심하며, 지식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다. 볼테르는 자연종교를 신봉하고 두려움과 무지가 종교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백과사전 편집자들은 경험적 이성을 변호하고 자연법칙을 주장하면서 종교를 미신으로 신학을 주술로 말한다. 루소의 사상은 자연을 찬양하면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를 가장 순수한 도덕성으로 본다.
독일의 라이브니츠는 “자유”라는 의미는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의문으로 시작한다. 볼프는 교리들은 이성의 원리들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하며,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나타내 보인다고 한다. 젬러는 최로로 성경해석에 역사적 방법을 적용시켰다. 그리고 신해석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 사상은 자유주의 아버지 쉴라이어마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레싱은 루터란주의와 신해석을 반대한 이성주의를 주창했으며, 다른 종교들에 관해 관용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칸트 또한 이성주의자로서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면 물질적 영역 또는 감각적 영역 밖에 계신다고 한다. 그도 종교의 본질을 도덕성에 두고 있다. 이로써 이성주의는 도덕종교, 즉 초자연주의로 흘러갔는데 그 이유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초자연주의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는 쉴라이어마허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쉴라이어마허는 “현대신학의 아버지”, “자유주의”를 태동시킨 자, “성경해석학의 아버지” 등으로 불리며 정통주의를 포기하고 감정적 기독교를 옹호함으로 당연히 윤리적 기독교를 강조하게 되었다. 그는 철저하게 주관주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이해하였으며 성경적 계시와 신학적 전통을 무시하면서 기독교를 변증하려고 했다. 이런 그의 신앙은 낭만주의적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계몽주의의 특징은 경험적이고 이성적이며 인간중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객관보다 주관을 더 중시하는 계몽주의의 자세는 오늘 한국교회에서도 만연하며, 기독교를 인간을 위한 도덕종교와 실용종교로 타락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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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제자이며 쉴라이어마허와 동시대 인물인 헤겔은 1797년 정통신앙을 비판하면서 종교에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쉴라이어마허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하나님의 존재란 확고한 근거가 없다고 하며 단지 종교적 체험만을 강조한다. 또한 기독교신앙은 인류와 관련을 맺고 있는 절대적 존재를 경험하는 신비로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도의 진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헤겔은 삼위일체론을 가지고 기독교는 종교발전의 최종적 단계라고 주장하면서 양태론적 사상을 펼친다. 그는 인간의 사고 틀 안에서 존재하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구원에는 관심도 없다. 이는 인격적이지도 않은 어떤 존재를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무신론자의 모습이다.
쉴라이어마허로 시작된 중재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기독론이다. 즉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련된 교리의 역사성에 수정을 가하려고 한다. 이는 아리안주의의 재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삭 도르너”는 그리스도가 신인양성을 가진 분이며 가시적인 형태를 지니신 하나님에 불과하다는 영지주의적 가현설을 이야기한다. 결국 단성론 이단이 다시 부활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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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주의는 모더니즘 시대에 맞추어 나름대로 철학적으로 사색하여 여러 사상들을 내어놓았지만 결코 성경적이고 역사적이지 못했으며, 과거 이단성 있는 사상들로서 윤리를 강조하거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간고하고 인성을 강조하는 반복일 뿐이었다. 이런 흐름에서 교회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도덕으로 유혹하려고 했으며 이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간과하거나 무신론으로 흐르게 되었다.
우상숭배, 행위구원 지지하는 가톨릭이 할말은 아닌듯 - dc App
아멘 아멘!!!! 믿쑵니다!!!!!! 목사님 저는 구원받았으니 천국갑니다~~~ 저는 천국행 확정이에요!!!!!! 아멘 아멘!!!!!! 불신지옥!!!!!
개추
객관적 진리란 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