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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교황직
THE “DISASSEMBLED” 

PAPACY

EMERITUS, MUNUS, MINISTERIUM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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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이태리어)>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에 관한 끝없는 가설들은 지난 10년간 교회가 겪어온 수난과 혼란을 설명하고자 하는 대담하고 초현실적인 서사를 지속적으로 부추기고 있습니다. 근거 없고 일관되지도 않은 여러 소문은 많은 신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부 사제에게도 영향을 미쳐 혼란을 증대시켰습니다.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밝혀지면 초래될 사태가 두려워 함구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묵인, 침묵, 공모로 점칠된 과거를 직면하기보다 거짓과 기만의 성벽을 수성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서신의 교환
The Exchange of Letters


지난 2024년 11월 22일, 나폴리의 르네상스 메디테라네오 호텔에서 열린 지역 Cœtus Fidelium 회의에서 니콜라 북스[Bux] 신부는 2014년 여름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서신을 교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오고간 서신 일체는 베네딕토의 사임 무효설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최종적으로 부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서신 일체는 두 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북스가 2014년 7월 19일 작성한 세 쪽짜리 서신이고, 두 번째는 베네딕토 16세가 2014년 8월 21일 작성한 두 쪽짜리 서신입니다. 서신의 존재는 10년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제서야 그 존재가 겨우 언급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 서신 교환 사실과 그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의문점이 남습니다: 왜 북스는 베네딕토 16세 선종 이전, 명예 교황이 직접 이 서신의 존재와 내용을 긍정 또는 부정할 수 있을 때 이 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고, 선종으로부터 무려 2년이 지난 후에서야 서신의 내용은 제외하고 그 존재만을 공개했겠습니까? 왜 북스는 교회와 세상으로부터 이 중대하고 중요한 선언을 은폐했겠습니까?

영구 혁명
The Permanent Revolution


상기한 합당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매체가 제시해온 허구를 배제해야 합니다. 먼저, “자명한 성인"[santo subito, immediate saint]이라는 라칭거[베네딕토 16세]와 “추악하고 나쁜"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간의 단순한 대조가 많은 이들에게 편리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단순하고 인위적인 접근은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게 됩니다. 즉, 이러한 접근은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황들 -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부터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를 포함한 자칭 프란치스코까지의 "공의회적 교황들” -  재위의 일관성을 다루지 않고 외면합니다. 이 공의회적 교황들의 방법과 언어의 양상은 서로 다를지언정, 목표는 일관적으로 동일했습니다.

트리엔트 전례를 합법화한 베네딕토는 로마식 제의와 붉은 신발을 착용한 고상하고 세련된 고령의 신학자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베네딕토는 이단자 베르고글리오와 대조됩니다. 베르고글리오는 가톨릭 전례를 거부하고 Summorum Pontificum[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전례를 허용한 베네딕토 16세의 자의 교서]을 무효화했으며, 마야의 여사제들과 향을 피우고 그들의 이단 의식을 공개적으로 거행하며 폭주하는 글로벌리스트이자 신종 이단의 교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조로운 대조는 시민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인위적인 양극화 공작과 다를 바 없습니다. 시민 사회에서 이러한 공작과 같은 반체제적 음모는 한쪽에서 극단적인 진보 세력을 옹립하고, 다른 한쪽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수행됐습니다.

소위 보수파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라칭거[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는 혁명적 과정 속 서로 대립하는 힘의 축을 각각 구성한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명백히 대립하는 듯하지만, 사실 이는 헤겔의 변증법에 따른 정, 반, 합의 일부입니다. 이 과정은 라칭거와 베르고글리오로 시작되거나 끝나지 않으며, 론칼리[요한 23세] 재위부터 활개친 딥처치[deep  church]가 가톨릭 위계와 조직을 대체하며 권위를 침탈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라칭거에 따르면, Vetus Ordo[트레덴틴 전례]라는 테제와 Novus Ordo[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라는 반테제는 Summorum Pontificum의 진테제로 지양[止揚, 결합]됩니다. 이는 “유일한 전례의 두 가지 형태"라는 속임수에 기반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평화로운 공존"은 독일 관념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교회에 대한 두 시각 간 모순을 부정하기 때문에 거짓입니다. 하나는 2천 년의 가톨릭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강요된 것입니다. 이 공의회는 전임 로마 교황들에 의해 정죄됐던 이단자들의 공작으로 성사됐습니다.

교황직의 재정의
The “redefinition” of the Papacy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 그리고 베네딕토 16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공동체적[collegial]이고 에큐메니컬한[ecumenical] 교회로 “재정의"하려는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공통된 수법을 구사했습니다. 이들은 교황직을 공의회적 정신을 추구하며[ad mentem Concilii], 신성한 기관인 교회를 비롯한 교황직(테제)과, 네오 모더니즘 추종자들과 비가톨릭 종파의 이단적 요구(반테제)의 결합을 통해 교회 일치 운동[ecumenism]에 기반한 교황직이라는 진테제로 재정의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요한 바오로 2세가 1995년 반포한 회칙Ut Unum Sint와 교황청의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가 2024년 6월 13일에 발표한 연구문헌 로마의 주교. 교회 일치 운동 속 수위권과 시노드, 그리고 Ut Unum Sint에 대한 답변[Bishop of Rome. Primacy and Synodality in Ecumenical Dialogues and in the Responses to the Encyclical ‘Ut Unum Sint’]에서 제시된 대로입니다. 2020년 1월 발터 브랜뮐러[Walter Brandmüller] 추기경은 내게 보낸 답신에서 1970년대 요셉 라칭거 교수[베네딕토 16세]가 동료 칼 라너[Karl Rahner]와 함께 “명예 교황 [Pope Emeritus]“과 공동체적 [공유된] 교황직[collegial [shared] Papacy]에 대한 이론을 연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이들은 모두 젊은 신학자들이었습니다.

2020년 나는 베네딕토 16세가 매우 신뢰하던 한 보좌관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그녀는 베네딕토가 수차례 반복적으로 자신의 즉위명이나 교황 제의를 버리고 바바리아 소재 자택으로 은퇴하고자 하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베네딕토를 지지하던 보수파에게 불리했으며, 특히 베네딕토 16세를 구심점으로  삼고 그를 신화화했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불리했습니다.

우리는 젊은 라칭거가 라너와 함께 이론화했던 방책을 고령의 교황이 고려했는지, 혹은 이 방책이 명예 교황 베네딕토를 바티칸에 남기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부활"됐는지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 시기 교황청은 SWIFT 결제망[국제 결제망]에서 배제되며 외부 세력의 압력을 받았는데,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발표 직후에 결제망이 복구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베네딕토의 사임은 실로 교회 내 엄청난 혼란을 일으켰고, 베드로의 사도좌를 교회를 파괴하고자 하는 찬탈자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요셉 라칭거는 분명한 책임을 집니다.

베네딕토는 교회법적 관행을 위반하며 “명예 교황"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추종자들이 구축한 “뛰어난 신학자”이자 전통의 수호자[defensor Traditionis]라는 평판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또한 그의 교황직 말미에 대한 해석은 매우 복잡합니다. 이는 라칭거의 평범하지 않은 지성과 성정, 그의 조력자와 교황청의 행적을 둘러싼 불투명성,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인[ἅπαξ] 그의 사임의 완전히 새로운 형식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모제타와 카마우로[mozettas and camauros, 베네딕토 16세 시절의 의복]로 기억되는 베네딕토의 재위는 이미 장크트갈렌 마피아[교회 내 배교 세력]에 의해 내정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베르고글리오]에게 넘겨줘야 했습니다. 장크트갈렌 마피아는 2005년 콘클라베 직후 베네딕토의 교황직을 찬탈하기 위해 베르고글리오를 지명했습니다. 명예 교황으로서 베네딕토 16세의 역할은 보수적인 교황직(munus)을 이어나가며 베르고글리오의 진보적인 교황직(ministerium)을 감시하여 라칭거의 중도 보수적인 요소와 베르골리오의 극단적으로 진보적인 요소를 함께 유지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명예 교황"과 "재위 교황" 간의 연속성을 대중이 인식하도록 하는 목적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베네딕토는 바티칸에 계속 기거하게 됐습니다. 바티칸 시국 내 베네딕토의 존재는 베르고글리오와 그의 “교황직”, 그리고 그의 비정상적인 행태에 대한 암묵적 승인을 뜻하게 됩니다. 반면, 이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은 교회법적 괴수[monstrum] - 명예 교황이라는 직위는 실로 괴수입니다 - 를 통한 공의회적, 시노드적, 그리고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운동]한 방법으로 교황직을 해체해 왔습니다. 이러한 해체는 베네딕토 16세의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명예 교황이라는 교회법적 “괴수”
The Canonical “monstrum” of the Pope Emeritus


명예 주교[Epispocate Emeritus]라는 제도 역시 교회법적 괴수입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는 주교의 관할권을 연령(75세에 도달할 때)에 따라 "동결"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는 과거 수 세기 동안 지켜온 교회 관행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에메리투스[emeritus, 명예직]제도는 주교들로서 하여금 사도들의 후계자라는 지위를 망각하도록 했고, 보다 즉각적으로 완전한 책임의 해제를 초래하여 이들을 단순한 공무원과 관료로 격하했습니다. 주교 회의의 제도화는 주교 회의를 일개 정부 기관으로 격하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개인 주교의 권한[potestas] 행사를 방해했습니다. 이는 가톨릭 교회의 신성한 지체와 사도 전승에 대한 분명한 공세였습니다.

1966년 공의회 직후 자의 교서 Ecclesiæ Sanctæ로 도입된 명예 주교 제도는 1983년 교회법전(제402조 1항)에 의해 채택되었습니다. 이 제도는 75세 이상의 추기경들은 교황청 직무에 종사할 수 없도록 하고 80세 이상의 추기경들의 교황 선거권을 박탈한 1970년 자의 교서 Ingravescentem Ætatem와 맥을 함께합니다. 이러한 자의 교서의 교회법적 형식을 넘어 그 목적[mens]은 오직 교회의 생리에서 연로한 주교와 추기경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세대 교체”를 위한 것이며, 사실상 가톨릭 교계를 실질적으로 리셋하는 것입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요구에 더 이념적으로 가까운 고위 성직자들로 교회의 지도층을 "세대 교체”하고자 한 것입니다. 주교단과 추기경단에서 상대적으로 혁신과 변화에 보수적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연로한 성직자들의 숙청은 교회 위계의 내부 균형을 왜곡시켰습니다. 이러한 숙청 방식은 세속 국가의 전례를 따른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였던 1980년대에 “몬티니[바오로 6세]의 과부들[Montini’s widows]”로 불리던 연령 제한에 도달한 추기경들이 Ingravescentem ætatem의 철회를 요청했을 때, 1970년대에 진보파였던 바로 자신들이 주장했던 규정으로 인해 결국 자신들이 희생자가 될 것임이 명백해졌습니다: Et incidit in foveam quam fecit(시편 7:16) [함정을 깊숙이 파 놓고서는
제가 만든 구렁에 빠진다.].

로마 주교를 동등자 중의 첫째 [primus inter pares]로 한정하고 시노드적 관점으로 교황직을 "재정의"하려는 시도의 맥락 속에서 명예 주교 제도와 특정 연령에 도달 시 주교직과 추기경직의 권한 행사를 제한하는 정년 규정은 명예 교황 제도의 제도화와 수용의 전주곡이 됩니다.

무누스[munus]와 미니스테리움[ministerium]의 거짓된 분리
The False Problem of munus and ministerium


[역주: 무누스와 미니스테리움은 베네딕토 16세가 신학자로 활동하던 시절 교황권을 역할에 따라 분리한 분류입니다. 영문으로 무누스는 office를 뜻하며, 미니스테리움은 ministry를 뜻합니다. 무누스는 교황직의 직위와 이에 당연히 수반되는 의무를 말합니다. 일례로 교황이 교회와 양떼를 위해 기도를 할 의무는 무누스에 해당합니다. 반면 미니스테리움은 교황직의 구체적 행사와 관련된 직무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회칙이나 자의 교서를 작성하여 선포하는 것이나 주교 임명 등의 임무가 포함됩니다. 베네딕토 교황은 사임 선언에서 무누스를 언급하지 않고 교황직의 미니스테리움으로부터 사임한다는 말만 했습니다. 이는 교황의 사임 선언이 심각한 결격이 있을 시 무효라는 교회법 규정(332조 2항)에 따라 베네딕토 사임 무효설의 근거가 됩니다. 신학자 시절 무누스와 미니스테리움을 구별하며 이와 관련된 저술 활동을 했던 교황 베네딕토가 사임 선언에서 미니스테리움만 언급한 것은 의도됐다고 볼 수 밖에 없으며, 특히나 베네딕토가 학식이 높고 신학과 교회법에 조예가 깊기로 명성이 높았기에 사임 선언에 결격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회법에 대해 무지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베네딕토 사임 무효설의 골자입니다.

반면 비가노 대주교는 베네딕토의 사임 선언이 헤겔의 변증법에 따른 교황직 파괴를 위해 베네딕토가 오래전부터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며 계획했던 일이라고 해석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합니다. 베네딕토가 독일 관념론을 도입하여 교황직의 분리와 해체를 꾀하고, 사임을 통해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의 지위를 격하했음을 지적합니다.]

교황직(나는 교황이다)이라는 테제와 사임(나는 더 이상 교황이 아니다)의 안티테제 간 대립은 끈임없는 변화의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헤겔에게 생성[becoming]이란 절대적인 것처럼, 이는 명예 교황(교황의 지위는 변함 없으나 교황의 직무는 더 이상 수행하지 않는다)라는 진테제로 지양되어 도출됩니다. 요셉 라칭거[베네딕토 16세]의 사상에서 헤겔의 변증법은 핵심이며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또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진테제 그 자체는 과정입니다. 진테제는 또 다시 변증법을 통해 테제가 되고, 이는 반테제를 낳게 되며 다시 새로운 진테제로 지양됩니다. 헤겔의 변증법에 따른 이 끊임없는 생성은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에서 일으킨 영구 혁명, 그리고 글로벌 좌파 세력이 전세계적으로 각국에서 일으킨 영구 혁명의 이념적, 철학적, 교리적 근간입니다.

우리는 교황직의 인위적인 분리를 목격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교황이 교황직을 사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요셉 라칭거라는 인물이 교황직의 일부를 유지하여 자신의 안위와 지위를 보장하려 했습니다. 라칭거가 로마를 떠난다면 이는 베르고글리오의 딥처치가 교회에 강제하는 압제에 대한 성토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교황의 개인 비서와 국무원장은 라칭거에게 "비상근"으로 남아 있으라고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이러한 압박은 무누스와 미니스테리움 간의 허구적인 분리를 근거로 삼았으나, 명예 교황은 북스 신부에게 보낸 답신에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엔리코 마리아 라다엘리[Enrico Maria Radaelli] 교수는 저술에서 무누스와 미니스테리움 간의 임의적인 분리는 교황직 사임을 무효화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수위권은 무누스와 미니스테리움으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수위권은 왕이시자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로마 주교이자 베드로의 후계자로 선출된 자에게 부여하시는 권한[potestas]이기 때문입니다. 북스에게 보낸 답신에서 라칭거는 자신이 무누스와 미니스테리움을 분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명예 주교라는 제도를 본보기로 명예 교황을 구상했다는 베네딕토의 자백과 모순됩니다. 명예 주교의 지위[being]와 직무[doing]가 분리되듯 이를 본따 교황직에도 인위적이고 불가능한 지위와 직무의 분리를 꾀한 것입니다. 이 분리의 부조리함은 명백합니다: 만약 무누스를 지니며 미니스테리움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면, 반대로 무누스를 지니지 않고도 미니스테리움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해야 합니다. 즉, 교황이 아닌데도 교황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는 교황직 즉위 자체의 효력을 근본적으로 무효화하는 오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명예 교황이 교황이었음에도 교황직을 수행하지 않고, 베르고글리오는 교황이 아닌데도 교황직의 권위를 행사하는 비현실적인 교황직의 분리를 목격했습니다.

교황직의 세속화
The Desacralization of the Papacy


한편 바오로 6세가 초래했던 교황직의 세속화(교황 권위의 상징인 삼층관 거부)는 베네딕토 16세 시절에도 지속됐습니다(교황 문장에서 삼층관 배제). 이는 주로 2차 공의회가 도입한 새로운 이단적 교회학에 기인합니다. 이 공의회는 세속화되고 "민주적"인 사회의 요구를 교회가 수용하여 주교단주의[collegiality]와 공동합의주의[synodality, 시노달리타스]와 같은 개념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를 통해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신성하신 창시자께서 명하신 교회의 존재론적 차원의 전제적[monarchical, 專制的] 본성을 왜곡했습니다. 공의회적이고 시노드적인 위계가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치밀하게 추진해온 반역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지난 60년간의 일련의 개혁, 규범, 그리고 사목 규정은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불가침하고 변함없다고 여겨졌던 성전(聖傳)을 체계적으로 해체했습니다.

또한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이후 개최된 콘클라베는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선거권을 행사하는 추기경단이 평온히 투표에 임하지 못했고, 수십 년 동안 교회에 침투하여 파괴 공작을 수행해온 장크트갈렌 마피아[교회 내부 배교 세력]가 정상적인 선거 과정을 조작하고 추기경단에 협박과 압력을 가해 사실상의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한 고위 성직자가 사석에서 자신이 콘클라베에서 목격했던 추태는 베르고글리오를 선출한 콘클라베의 유효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고위 성직자 역시 아마도 협박과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의 이익과 영혼의 구원을 뒤로 한 채 교황과 관련된 비밀 준수를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베네딕토가 자신에게 설정한 목표(교황직의 포기)와 그가 선택한 수단(명예 교황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도입) 간에는 명백한 모순이 있습니다. 베네딕토는 주관적으로 사임했지만 객관적으로는 여전히 교황인 교회법적 괴수[monstrum]을 낳았으며 이러한 모순적인 전복 시도는 그의 사임을 무효화합니다. 이 모순은 언젠가는 장엄한 선언으로 해결되어야 하겠으나 베르고글리오가 딥처치와 딥스테이트와 공모하여 교황좌를 찬탈하며 저지른 범죄는 여전히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교황직 사임 선언을 베네딕토 16세를 퇴위시키고 글로벌리스트 엘리트의 대리인으로 교체하고자 한 반역적 음모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거짓의 성에 평신도, 사제, 그리고 주교가 부역합니다. 모든 이들이 악의를 지니고 부역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는 선의에서 부역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거짓의 성은 부역자들을 옭아매고 가두는 하나의 우리가 됐습니다. 매체가 그리는 극적인 서사 속 라칭거와 베르고글리오는 배우로서 서로 대립하는 테제와 안티테제를 각각 대변했으나, 사실 이들은 반역의 연속적인 과정을 각각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여지는 연극이나 대중 매체가 기반한 시뮬라크럼[simulacrum]은 교회가 부여된 신성한 사역을 통해 맺어진 진리의 본체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결론

분심을 겪는 수많은 신자들, 혼란을 겪으며 분개하는 수많은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소수일지언정 성교회(聖敎會)에 대한 반역을 규탄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에게, 나는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님에 대한 충심을 지키며 인내하기를 촉구합니다. 믿음으로 강하게 저항하십시오. 제자들 중 으뜸이셨던 성 사도 베드로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신 대로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벧전 5:9). 베드로의 배가 휘몰아치는 맞바람에 시달렸을 때 예수님께서 홀로 계셨던 것처럼, 그분의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손길을 보다 간절히 청하도록 하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인간적 치례, 일관성 없는 이론, 정치적 고려를 버리고 오직 그분만 바라볼 때, 그분께서는 바람을 잠재우시고 바다가 평온해지도록 명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굳건히 대항하는 일은 주님께서 가르치시고 명하신 바에 변함없이 순종하는 것으로, 교회의 상층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한 이 순간 우리는 더욱 주님의 가르침과 명령에 충실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굳건히 대항하는 일이란 시험의 순간에 넋이 나가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신앙의 힘으로 시험을 극복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굳건히 대항하는 일이란 궁극적으로 적그리스도 세력이 내세우는 속임수를 숨기지 않고, 교회의 수난[passio Ecclesiæ]과 죄악의 신비[mysterium iniquitatis]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세주께서 분부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

+ Carlo Maria Viganò, Archbishop

2024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파티마 형제단>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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