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verty was not just a fact of human condition...”


이 말은 뭡니까?


그 시절 애들은 가난을 ‘그냥 인간이 원래 그런 거’라고 박제해놓고 합리화했습니다.


“너도 가난하고, 나도 언젠간 가난해지고, 그러니까 그냥 감내해.”

이게 뭔지 아십니까? 도그마와 체념의 하모니, 그럴듯한 문장으로 써놓고 실상은 기득권 면죄부였습니다.


노동자가 뼈 빠지게 일하고도 굶는데, 지식인들이 그걸 보고 “응, 인간 조건이래요”


이딴 소리 하면서 옆에선 마차 타고 가던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걸 종교적 언어로 포장합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그런데 밥은 안 줍니다.


그냥 성경 구절로 허기를 달래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자비요. 이게 무슨 정의요. 이건 그냥 수사학이요.

그리고 이걸 가장 찰지게 구분한 게 누구냐?


19세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입니다.

“계약은 계약이고, 시혜는 시혜다. 섞지 마라.”


이 말을 고상하게 해석하면 뭐다?

의무는 계약서 안에만 있고, 나머지는 인간성으로 커버하라는 소리입니다.

그럼 인간성 없는 새끼 만나면요?

답 없습니다. 그냥 굶어죽는 겁니다.

그게 바로 19세기 도덕경제의 본질입니다.


한 손에는 미니멀한 정의, 다른 손에는 자발적 자비, 그리고 그 사이에 껴서 압사 당하는 노동자. 


그러니까 교황청이 딥빡을 먹은 겁니다.


“이딴 식으로 가다가는 신의 정의는커녕 인간의 존엄조차 남아나지 않겠다.”

그래서 나온 게 『Rerum Novarum』이고, 그래서 정의와 자비를 ‘구조화된 공동체적 책임’으로 만들려 한 겁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가난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다, 니들이 만들어놓고 방치한 시스템의 산물이다.” 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첫 교회 문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