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공손치 않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논어, 양화 제25장- 


똑똑한 남자는 나라를 성대하게 하지만, 똑똑한 여자는 나라를 기울게 한다. 똑똑한 여자는, 올빼미처럼 간악한 짓만 한다. 여자가 말이 많은 것은, 오로지 화의 근원이니라. 난리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인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아무리 가르쳐도 효험이 없는 것을, 여자와 내시라고 한다. 

-시경, 대아 제3 탕지십편(蕩之什篇) 첨앙(瞻卬)


안씨가훈에서 말하기를 ‘부인은 집안에서 음식을 받드는 일을 맡아서, 오직 술 밥 의복의 예법에 관해서 일할 것이요, 나라의 정치에 절대 간여해서는 안되고 집안에서도 큰일을 주장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총명하고 재주가 있으며 고금에 통달한 지식을 가진 여자일 경우 그저 남편을 보좌하며 남편의 부족한 점을 돕도록 권한다. 반드시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처럼 여자가 하늘이 내려준 직분을 초월해서 재앙을 초래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다’ 

-소학, 가언


남자란 그 뜻이 매우 크고 넓은 곳에 마음을 두고 노닐며 여러 미묘한 데서 뜻을 취해 스스로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여 능히 스스로 자기 몸을 유지하니 어찌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여자의 가르침이 필요하리오, 

하지만 여자는 매우 어리석어 그렇지 아니하여 한갓 옷감 짜는 일에 있어 거칠고 세밀한 것만을 문제 삼지 높디높은 유학의 덕행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조차 못하니 이것이 바로 내가 한스럽게 여기고 애태우는 바이다. 

아내는 남편을 하늘로 떠받들어 공경해야 하는 것이니, 남편을 섬기는 것이 곧 근본이다. 아들은 부모께서 탐탁치 않게 여긴다면 바로 여자를 내쳐야 한다. 시부모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이는 의가 스스로 깨어진 것이다. 

이러한 시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자는 이에 굽히고 따르는 것이 순리이다. 여자는 가르쳐도 듣지 못한다면 철저히 매질해야 할 것이오, 때려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바로 쫓아내야 하는 것이다. 

-인수대비, 내훈


“여자는 약한 존재이고, 마음이 변덕스럽고, 쉽게 속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여성이 가르치는 것을 막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디모데후서에 대한 설교)


여자는 조용히 복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먼저 아담이 창조되었고 하와는 그 다음에 창조된 것입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하와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순결로써 단정한 생활을 계속하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성경, 디모테오전서 2장 11절 ~ 15절 


여자들은 교회 집회에서 말할 권리가 없으니 말을 하지 마십시오. 율법에도 있듯이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남편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십시오. 여자가 교회 집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수치가 됩니다.  -

-성경, 고린토전서 14장 34절 ~ 35절


부처는 자신의 이모이자 계모였던 프라자파티 고타미(Prajapati Gautami)가 간청하는 ‘여성의 수계’를 결코 인가하지 않았다.

“여성은 그 본성상 결코 열반을 얻을 수 없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아라한이 될 수 없다, 남자는 성불하지만 여자는 성불하지 못한다.”



삼종지도(三從之道)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 여자의 평생을 가족인 남성에게 종속되도록 규정한 것은 여자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할 능력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자가 태어나면 아버지의 소속인으로 합법화되고, 결혼하면 남편의 소속인으로 합법화되어 자신의 ‘보호자’에게 일정한 의무와 정신적 성실성을 바쳐야 한다. 즉 아버지에 대해서는 효와 공경의 의무를, 남편에 대해서는 정절과 신의의 의무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남자는 여자를 끌어주고 여자는 남자를 따라가는” 여필종부(女必從夫)가 남녀 또는 부부의 이상적인 모습이 된다.

예제(禮制)를 통해 ‘남을 따르는 자’의 역할이 부여된 여성은 이에 부합하는 본성과 도덕을 요구받게 된다. 즉 여자는 순종의 본성을 가진 자로 자신을 고집하거나 주장하지 않으며, 그런 본성에 충실한 것을 미덕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주장과 고집이 강한 여자는 나라와 가문을 망치게 된다며 각종 교훈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포하였다.





고대 로마의 가부장제




로마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가부장제를 유지했다. 로마 시대에 결혼과 부부 생활은 남녀가 서로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고,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관계였다. 당시 결혼한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는 것이 미덕이었으며, 남편의 결정에 조용히 순응하는 아내가 곧 현모양처였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설령 남편이 바람을 피우며, 밖에 나돌아다닌다고 해도 이에 뭐라 하는 것은 기쎈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었고 제대로 된 아내라면 가만히 인내할 줄 알아야만 했다. 아내에게 잡혀사는 남편은 멍청하고 한심한 인간으로 여겨졌으며, 사회적으로도 욕을 먹었다




로마 공화정이 시작될 때부터 여성의 순결이 매우 강조되었다. Pudicitia (순결)는 여성의 순결의 여신이었고 로마 여성들에 의해 숭배되었다. 처녀들만이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결혼 후에는 간음 행위를 막기 위해 집안에서 여성들을 면밀히 조사하였다. 예를 들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두 번째 아내 폼페이아는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와 사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는 폼페이아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적인 모임을 막았다. 폼페이아가 간음을 범할 가능성만으로도 카이사르는 그녀와 이혼하게 되었다.




여성의 순결과 가정에서 충실한 아내와 충실한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한 초점은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기간 동안 증가했다. 가족의 역동성을 개선하기 위한 이 일반적인 캠페인은 기원전 18-17년에 시작되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간음한 아내의 이혼과 처벌을 강요했다. 그의 통치 아래 있는 여자들은 간음죄로 법정에서 처벌을 받고 추방될 수 있었다. 여성의 사적 관계는 공적으로 규제되는 문제가 되었다. 궁전은 여성이 순결한 아내와 어머니로서 적절한 위치로 돌아갈 것이며, 따라서 가정 질서가 회복될 것이라는 생각에 의해 확보되고 추진되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딸 율리아가 혼외 정사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처벌하고 추방하기까지 했다.




○ pater familias


가부(家父, 라틴어: Pater familias)는 라틴어로 '가족의 아버지'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대 로마 시대, 오리엔트 사회에서 가정의 주체권을 확보한 사람을 가리킨다. 고대 로마 시대 가정사를 꾸릴 자유는 보장되었지만, 가정을 통솔할 자주권을 가질 '가부'의 존재를 전제로 했다. 당시 로마 시대에서는 나이, 사회적 지위, 부, 지식과 상관없이 아버지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은 가장권의 중심이 되었다. 당시 로마 시대에서 가부는 가정의 여성, 자식의 행동권을 판단하는 막강한 가부장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pater familias의 가정 책임에는 그의 "가정 신"(Lares와 Penates)과 그의 세대의 조상 신에 대한 사제 의무 (sacra familiae)가 포함되었다. 초기 공화국에서 아내는 아버지의 법적 통제에서 결혼 cum manu (라틴어 cum manu는 "손으로"를 의미 함)의 형태로 남편의 법적 통제로 넘겨졌다. 고대 로마 말기에는 가정 내에서의 권리 평등에 관한 법이 만들어지면서 가부의 성격을 띤 남성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여성이 멸망시킨 스파르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2권에서 스파르타 여성에 대한 비판 (kci.go.kr)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2권 9장에서 스파르타를 10가지 주제를 가지고 비판한다. 이것들 중 다루는 양과 깊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여성에 대한 비판, 더 정확히 말하면, 여성의 방종(anesis)에 대한 비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스파르타의 입법자는 일정한 법과 훈련을 통해서 남성들을 규율과 통제된 삶을 살게 했지만, 여성들에게 이것들을 적용하는데 실패했다.


그런 이유로 여성들은 방종, 사치, 무절제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여성들의 방종과 사치는 스파르타 전체를 금전애호 (philochrêmatia)의 폴리스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스파르타 남성같은 호전적인 사람은 성적 교접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성적 교접에 몰두하는 스파르타 남성의 성격과 여성들의 방종 및 사치를 결합하여 스파르타는 금전애호 성향의 폴리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규정한다.


스파르타 남성들은 성적 교합에 몰두하는데 여성들은 방종과 사치스런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런 방종과 사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남성들은 돈이 필요하게 되고, 이것이 스파르타를 소비와 금전애호의 폴리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들의 방종은 여성지배(gunaikokratia)를 추동한다.


폴리스를 남성들이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남성들을 뒤에서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여성이 되며, 결국 여성이 폴리스를 지배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여성들은 상속법과 지참금 제도 덕분에 전체 토지의 40%(5분의 2) 를 차지할 수 있었고, 이것이 부의 불평등을 초래했다.


이런 불평등으로 인하여 시민들(병역자원)의 감소(oliganthropia)가 발생했고, 이것이 스파르타를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들은 폴리스 내에서 여성에 대한 잘못된 규정이 어떤 문제를 발생시켰는지에 대한 고찰이고, 여성의 방종 문제는 여성에 대한 입법자의 최초 규정의 미비로 인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영국 최고 전성기 빅토리아 시대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사를 통틀어 성적으로 가장 엄숙했던 시기였다.


올바른 가정을 꾸리는 것이 국가의 제1신조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여성은 순결과 정조, 남성은 금욕과 절제였다.




정상적인 가정의 틀에서 벗어난 여인들은 멸시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여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평생 숨어 지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