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신학의 현실적인 논리에서 동성애를 반대를 하는 기능적인 부분은 대충 이러하다.
기독교의 십계명이란 핵심가치를 두고.
동성애가 자식을 낳고 양육을 하는 부부의 성립이 안되며.
이러한 성질 때문에 무분별한 간음의 체계만 생산을 해서.
시스템의 혼란이 온다는것이다.
즉 동성애를 금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바로 ‘간음‘이다.
하지만 오늘날 동성애 반대론자들은 동성애 반대를 외친후에.
뭐 이제는 셀수가 없는 간음을 저지른 머스크를 빨면서.
비밀스러운 유흥클럽에 가서 쾌락을 즐기는것이 꿈이다.
즉 과거 기독교 신학자들의 관점에선 동성애 반대론자들도 동성애적 기능을 한다는것이다.
전통적이고 성격적 관점으로 간다면 아담과 이브 서사와 기록으로 인해서 일부일처제와 간음을 하지말라는 텍스트 때문에 더더욱 빠져나갈 골목이 없다.
즉 오늘날 루터와 칼뱅을 외치거나 복고주의 카톨릭을 외치는 사람들의 쾌락 추구는
루터나 칼뱅의 개혁대상.
혹은 복고의 대상에 가까운것이다.
나는 맨날 이 블랙 코미디를 보고 샤워를 하면서 칼뱅이 이들을 두들겨 패는 상상을 하면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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