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스는 중반기를 지나면서.
기독교 그룹에 대해서 회의감을 가진다.
틈만나면 기회를 엿봐서 민족주의를 간판으로 세운
자유주의 경제로 이탈을 하고 물리적인 부분은 융커의 군대로 대체를 노렸기 때문이다.
이때쯤 부터 나치스 이념그룹들은 아리안 종교들을 탐색을 하고
국방군과 대치가 되는 친위대란 군조직을 노골적으로 만든다.
흥미로운것은 인도-아리안 개념은 영미학자들이 만들었지만.
당시 아직 제국주의적 기조 아래에서 정치인 그룹들은 인정을 안하는 경향성이 좀 있었다.
그러나 나치스 이념그룹은 당시기준으론 진보적이게
인도북부나 아프가니스탄 이딴데를 탐사를 하면서 아리안 종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때부터 히틀러의 채식습관이 완성이 되었다는건데.
당시 인도 북부의 채식전통을 생각을 해본다면 흥미롭게 볼수밖에 없다.
또한 불교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인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런데 왜 나치스 이념그룹은 이러한 기독교의 대항적인 개념을 찾았던걸까?
아브라함계와 유대계 기반 종교라서 생긴일이란 관점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의아하다.나치스의 유대인 정의는 혈통적으로 정립이 되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보수혁명과 기독교가 대립을 했던 역사 때문이다.
후기 독일 보수혁명론자나 나치스가 소비에트의 전위당 개념을 가져오면서까지 친위대나 각종 색깔 돌격대를 만들어내던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 좌파들과 대립들 하던 시절 독일 초중반 보수혁명론자들이 단순 좌익 억압체로 잠시 이용을 당하고 바이마르 자유주의 경제세력이 실질적인 주권을 차지를 했기 때문이다.
이때는 독일 보수혁명론자들이 기독교를 보수혁명에서 크게 신경을 안쓰는 입장 이였는데.이러한 지점이 약점이 되어서 좌익 억압 이후에 모두 인력들이 유출을 당했던 경우가 생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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