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전쟁(1992~1995) 당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무슬림들을 유럽 문명과 이질적인 “터키인(turci)”이라 매도하며 제노사이드를 정당화한 라도반 카라지치(Radovan Karadžić)는 항상 스스로를 세르비아 정교회의 수호자라 자처했다. 그러니 그의 성씨 “카라지치” 자체에 오스만 튀르크어에서 유래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실로 깊은 역사적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카라지치가 주도한 1995년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은 무슬림 보스니아인을 겨냥한 인종청소로, 국제사회로부터 광범위한 규탄을 받았다. 이 학살을 정당화한 이데올로기는 오스만 제국에 대한 역사적 반감에 기초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이 500년 동안 세르비아를 지배하고 기독교와 세르비아 고유 문화를 억압했다는 역사적 기억이, 오스만 시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보스니아 무슬림들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그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오스만에 대한 복수의 논리를 앞세워 절멸작전을 기획한 카라지치 본인의 성씨(Karadžić)가, 오스만 튀르크어의 Karaca(’검은 소’)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슬라브-정교회 vs. 터키’라는 이분법 자체가 근대 민족주의에 의해 조작된 허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보스니아라는 공간은 ‘문화의 모자이크’라고 불릴 정도로 수세기 동안 서로 얽히고설킨 정체성과 문화, 언어, 전통이 뒤엉켜 형성된 복합유산의 장이었다. 이 안에서 태어나고 살아간 카라지치의 정체성 역시, 그가 혐오했던 오스만의 역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튀르크적 어원을 가진 성씨’을 갖고 있으면서도 ‘튀르크의 잔재’라며 무슬림 보스니아인을 학살한 카라지치야말로, 발칸 민족주의의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 아니겠는가?
이는 비단 발칸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유사한 자기부정의 배외주의가 반복된다. 반중 정서에 기대어 중국을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타자로 규정하는 반중 배외주의자들은, 정작 자신들이 사용하는 성명체계가 신라 경덕왕의 한화정책에 따라 중국식 한자 이름을 받아들인 결과라는 사실을 쉽게 잊고는 한다. 이 체제는 조선시대 유학과 명과의 사대 관계를 통해 더욱 견고해졌고, 오늘날까지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다시 말해, 반중 배외주의자들이 부정하고자 하는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이미 자신들의 정체성에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문화, 정치, 언어, 제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과의 밀접한 교류 속에서 형성되었다. 삼국시대 이후 유학과 불교, 율령 체제, 문물과 법제, 그리고 한자어를 중심으로 한 고급 어휘 체계까지, 한국 전통은 중국적 요소를 단순히 ‘이식’한 것이 아니라, 이를 조선화·고유화하며 재구성해 온 오랜 내면화의 산물이다. 필자가 언급한 신라 경덕왕 시기의 한화정책뿐만 아니라 고려의 과거제도 수용, 조선의 성리학 통치 이데올로기 채택 등은 모두 그러한 수용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국민의힘 비대위 갤러리에서는 김종필이 중공(중화인민공화국)의 간첩이라는 황당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근거랍시고 들먹인 것은 김종필이 과거 자신의 정당 전당대회 현수막에 ‘중국어’를 사용했다는 사진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오늘날과 달리 한글전용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고, 공공 문서나 행사에 한자가 자주 사용되던 시기였다. 당연히 문제의 현수막에 쓰인 문구는 ‘중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한국인이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구사하는 수많은 어휘는 뿌리를 따지고 보면 고대 중국어에서 유래한 한자어이다. 중국의 문화적 유산을 ‘외세의 찌꺼기’라 규정하고 무작정 도려내려는 시도가, 그동안 중국 문화를 수용하며 발전한 한국의 정체성과 전통을 스스로 부정하는 길로 이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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