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혼양재(和魂洋才)’와 ‘중체서용(中體西用)’, ‘동도서기(東道西器)’
일본 난학은 서양의 理적 측면은 금지하고, 器적 측면의 실용성만을 추구하였다. 네덜란드에 대해서는 무역활동과 내항을 허락하였다. 즉, 양학의 理적 측면인 기독교를 거부한 것이지 器적 측면인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동도서기론자들은 ‘도기론(道器論)’을 바탕으로 해서, 동양의 훌륭한 가르침[道]의 전통을 유지하되, 당대의 발달된 서양과학기술[器]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문명 발전의 기틀을 닦아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도기론은 “형이상(形而上)을 ‘도(道)’라 하고 형이하(形而下)를 ‘기(器)’라고 한다”는 『주역(周易)』의 구절에 근거한 것이다. 이를 참고하자면, 동도서기론은 동양의 진리 체계[道]를 지키면서 서양의 과학기술[器]을 수용하려 한 사상적 흐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이’는 부정하면서도 서양의 ‘기’는 수용하는 동도서기는 후에 아시아적 가치로 구체화되었다. 일본 55년 체제(자민당에 의한 일본의 고도성장), 박정희, 리콴유가 유명하다.
아시아 문화는 이기적인 인간상을 배격하고 상부상조하고 이타적인 인간상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중시하여 왔다. 그러므로 공동체 구성원 전체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세로 이타적이고 상부상조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국가 공동체 또한 가족 공동체의 연장선으로 생각해야 하며, 가정에서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자식이 자식답게 행동해야 하듯 국가에서 지도자도 지도자답게 국민들도 국민답게 행동해야 한다.(군군신신부부자자)
무릇 효도와 우애는 천성에 뿌리를 두고, 성현의 책에 명확히 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확충하고 잘 다스리면 되는 것이지, 예속은 원래 밖에서 가져오기를 기다리거나 나중에 빌려올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위해 필요한 백공(百工)의 기예는 외국에 나가서 새로운 제도를 구하여 몽애와 고루함을 타파하지 않으면 이로운 혜택을 일으킬 수 없다. 이는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연구해야 할 바이다. -정약용, 『여유당전서』 제1집 제11권 기예론.
서양의 교는 사악하므로 당연히 음성미색(淫聲美色)과 마찬가지로 멀리해야 한다. 그 기(器)는 이로워서 진실로 이용후생할 수 있는 것이니, 농상·의약·갑병·주거의 제도를 꺼려해서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교를 내치는 것과 그 기를 본받는 것은 상충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대저 강약의 형세가 이미 현격한데, 진실로 저들의 기를 본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들로부터 모욕을 막고 저들이 넘겨다보는 것을 방지하겠는가. - 김윤식 대필 고종 「개화윤음(開化倫音)」
유인석은 평등이란 “기존 질서를 와해시켜 어지러운 싸움을 일으키는 칼자루”라고 비판했다. 자유에 대해서도 “자유라 하면 사양하지 않고, 사양하지 않으면 다투게 된다. 오늘날 세계의 어지러운 다툼은 평등·자유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그치지 않으면 인류는 쇠잔하여 없어질 것이고 천지는 붕괴한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인류는 멸망하고 세계는 무너질 것이니 무분별한 평등·자유관은 세계의 최악설(最惡說)”이라고 통탄했다. 『의암 유인석의 사상: 우주문답』
동학 농민군들은 기본적으로 유교적 사회질서에 대해 정면 도전한 적이 없으며, 전제왕권을 자명한 전제로 하고 있었다. <弊政改革案폐정개혁안>에서 보이는 농민군의 요구조건 역시 “개벽”적인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학의 우수성을 강조하던 교조신원운동 시기에 조차도 유교적 가치를 부정한 적은 없다. 척왜양운동 시기에는 화이론적 세계관과 충효사상이, 농민전쟁 시기에는 민본과 인정 등 유교 이념이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핵심 사상이 되었다.
동학농민전쟁은 관리들의 폭정과 貪官汚吏의 부정부패를 반대하면서 발발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조선 국왕과 봉건적 조선 왕조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오히려 국왕을 “聖上”으로 표현하면서 지키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었다. 동학농민전쟁은 忠君愛國의 유교적 사상위에서 그들의 봉기 목적을 표명하였고 농민전쟁을 진행하였다. 태평천국이 시종일관 청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국가전복을 꾀한 것에 비해 동학농민군은 때론 조선 조정과 타협하기도 하는 등 국가를 위기상황으로 몰아가는 일에는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포고문>은 유교적 언어, 유교적 사유에 의한 현실 진단과 비판이 민본과 인정 이념에 입각하여 매우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진단을 바탕으로 농민군들은 비록 자신들이 시골에 사는 이름 없는 백성[草野遺民초야유민]에 불과하지만, 사리사욕만 추구하는 치자계층을 대신하여 임금의 땅에서 먹고 사는 왕민으로서 국가의 위급함을 구하기 위해 “보국안민”의 義旗의기를 들게 되었다고 하였다. 곧 민본이념이 붕괴되고 인정이 실종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함으로써 보국안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사로잡은 주자성리학은 리(理)는 도덕, 기(氣)는 물질로 해석한다. 오구라 교수 눈에 비친 한국은 구성원들이 화려한 리(즉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거대한 극장이다. 사람들은 도덕을 쟁취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필사적으로 자기 선전을 한다. 운동선수도, 연예인도, 동성애자도, 정치인도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 사람인가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킨 후 비로소 스타가 될 수 있다.
이 나라에서는 단지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부각되지 못한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소리 높여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풍토에서 권력투쟁이란 도덕을 앞세워 권력을 쟁취한 세력이 얼마나 도덕적이지 않은가를 폭로하는 싸움이다. 나의 도덕, 우리의 도덕이야말로 올바르다는 논리로 싸운다. 상대의 도덕을 싸잡아 비난할수록 ‘훌륭한 선비’가 된다(오구라 기조 지음·조성환 역, 앞의 책, 136쪽). 이 투쟁에서 패하면 사형이나 유배요, 승리하는 순간 권력과 부가 저절로 굴러들어온다고 모두가 믿고 있다. 이른바 리(理), 즉 도덕 쟁탈전이다. 리, 즉 도덕을 장악한 자는 완벽한 선(善)이라는 성선설의 최고 지위를 획득한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오구라 기조
"사람 됨됨이가 좋은 사람도 학문을 하게 되어 그 됨됨이가 나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모두 주자(朱子)류의 이학(理學)의 폐단 때문이다. 『통감강목(通鑑綱目)』을 보게 되면,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견해를 가지고 오늘날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 됨됨이가 나쁘게 된다."
"송나라 유학자들의 경학(經學)을 본받으려는 사람들은 옳고 그름, 사악함과 바름의 구별을 엄격하게 하고, 모든 사물의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을 좋아해서, 결국에는 자만심만 높아지고 걸핏하면 화를 내곤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답문서(答問書)』, 오규 소라이
이기론은 극도로 보수성이 강하기 때문에 취급에 주의하여야 한다. 과거의 것에 머무르는 것은 삶과 죽음에 관한 영역에 한정해야 할 것이다(한정적 항상성, 절대성).
유학은 내수용, 그것도 경제적 가치와 병립하여 사회적 가치로서 양대 축으로 기능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려와 송나라가 대표적인 예시이며 대외 관계에서는 다원론적 천하관을 형성하게 된다.
모든 분야에서 이만 절대적으로 강조하면 사고가 경직되고 독재로 흘러버린다. 재밌게도 지금은 기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 ‘자유주의’가 이가 되어 독재를 하고 있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따라서 없어진 이를 복구하되, 이만 중시하지 않고 이과 기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것이 목표가 된다.
종교와 과학의 적용 영역을 구분하는 동도서기가 쉽지는 않다. 리(동양)와 기(서양)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머리 아프고 논란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기 간편한 것은 지금 한국처럼 리를 외면하고 전면적으로 기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사실 서구조차 종교를 외면하여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개신교는 민주주의, 자유주의와 그나마 정합적인데도 그렇다.
조선은 청나라에 충성을 거부하며 주기론 서인이 정국을 주도했다. 서인의 신권과 국왕의 왕권이 극단적으로 대두되다 종국에는 망국적인 세도정치로 수렴했다. 한편, 일본에서도 천황에 충성을 꺼리던 에도 막부 사정상 천황의 권위를 빌리긴 했으나 기를 무시할 수 없었던 미토학이 나타났다.
리가 대대적으로 내세워진 20세기는 한일 모두에게 특이했다. 일본은 수백년만에 천황의 직접 통치가 부활했고, 한국은 주리론에 기반한 일제와 (신라 이래 수백년만에) 영남의 통치를 받았다. 기독교 이념 반영도 없진 않을 것이다. 목사 집안 출신 김일성과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20세기의 리의 부활은 양국 모두에서 이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뜯어보면 이들도 완전한 리라고 부르긴 곤란하다. 즉 유교적 요소를 취한 면도 있지만 유교 정통이라 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기에 기반한 무치 패도 폭력이 일정 부분 리를 갈아치웠거나, 또는 리의 타이틀을 빌린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즉 에도 막부, 청나라와 다를 바 없다).
한편 21세기에 들어서는 서구에서 유행한 (기독교에도 반하는) 무책임한 자유주의까지 전면적으로 침투하고 아슬아슬한 동도서기로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리가 무너졌다. 그 지표로 출산율이 낙하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100% 기가 리의 자리를 차지해 기의 독재가 있게 됐다.
중국의 경우에도 이민족인 만주족에 충성해야 하다보니, 기를 중심으로 태평천국의 난과 신해혁명의 흐름이 나타났다. 반청복명의 리를 띄우기는 했지만 태평천국은 기독교에 기반했고, 신해혁명도 공화주의에 기반해 反유교 성격을 강하게 가졌다. 현대 중국 역시 명나라 강역으로 돌아가기 싫은 이상 유교를 배제할 수밖에 없었고 극단적으로는 문혁까지 일으켰다.
요컨대 한중일 모두 도덕이 현실에 굴복해야하는 상황이 잦았고 기를 발달시키는 주기론이 압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주리론이 이겼을 때는 리를 이용할 필요가 있는 경우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제 주기론 정도를 넘어서 도덕 자체가 없어져버렸다. 중국만 문혁을 한 게 아니라 한국도 87, 97, 17을 거쳐 점진적인 문혁을 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이런 금수와 같은 체제가 지속 가능할 리 없으므로 최소한의 도덕은 세우자는 요구가 분출하게 된다.
일반인은 머리 아플 필요 없다. 聖의 유교부 사회부총리 만들어두면 俗의 기재부 경제부총리와 협상하면서 알아서 타협안을 만들어 올 것이다. 골치아픈 일은 두 부처의 관료들에게 맡기고 살면 된다. 장기적으로는 순자의 사상으로 타협, 수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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