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이 들먹이기 좋아하는 창세기 이야기가 있는데

신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듣고 절대적으로 순종하죠

군말없이 제물로 바치러 갔단 얘깁니다

물론 창세기 내러티브는 마지막 순간에 바뀝니다

신이 번제를 멈추죠

애초에 신이 아브라함 혈통의 번성을 보장하는 발언도 했고요

그런식으로 이 두 가치의 모순이 해소되는데

그러나 현실에서

신의 이름과 혈통의 절대적 모순의 순간에

기독교는 신의 이름을 따르길 명합니다

애초에 아브라함의 행동이 그런 순종을 보여주죠

아브라함은 신이 개입했으나

현실의 개인들에게 매번 신이 개입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의 이야기 속에서

현실 가문의 혈통의 문제는 부차적인게 되고 맙니다

이건 유교하고 상당히 차이를 보이는 지점인데

유교는 가족의 문제면 대의보다 앞서도 봐줍니다

죄지은 부모이면 자식이 숨겨줘도 죄가 되지 않고요

조선에선 부모 제사지내러 전선에서 나와 집에 가기도 했죠

가문의 응집력을 위해서 대의를 부분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유교는 긍정해줍니다

사실 이런 한국의 가문 중심의 사고방식을

나서서 깨부순데는

자유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는 물론

기독교도들도 상당한 지분이 있죠

페미니스트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