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카정권 시기에도 틀리앙 같은 중장년층 커뮤와
에타 펨코 같은 20-40(일부) 혐오에 대한 인식이 달랐습니다.
표면적인 욕설의 수위로는 전자가 더 높았지만.
그 혐오는 진영적인 입장에서 나오는것에 가까웠습니다.
실제로도 성형괴물이나 남편 바꾸는 여자 이런식 음해 입니다.
그에 비해서 젊은세대의 혐오는 계급적 입니다.
물론 언론에서 찌라시로 퍼트린 직업 그 자체에 대한 혐오는
전자에도 분명하게 존재를 했습니다.
그러나 어휘나 문장의 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는 그 직업으로 고위직에 갔다는 연성적인 혐오였다면
후자는 그야말로 본능적에 가깝습니다.
마치 생물로 안보던게 생물이 된것의 혐오에 가깝습니다.
물론 이데올로기적과 사회적인 분위기는 20대가 더 유화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오히려 정치고관심층의 이념과 근대의 이론에
대한 이해도에서 나오는것에 가깝고 대중적인 요소들은 계급적인 혐오입니다.
이재명도 김건희 혐오와 쌍둥이 처럼 같은구조 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안쓰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분명하게 진보적인 순간 입니다.
계급이동이 있었던 40대 이상들은 동질감 그리고 이해도에서 나오는 권모술수 그리고 안타까움 그 감정적인 정치적인 행동이 점차 줄어드는것 입니다.
이는 곧 지금은 분위기와 20대란 분위기에 혐오에 탑승한 함께 하는것이 불가능한 두 계급이 시간적으로 분해가 된다는것 입니다.
우익의 아들들이
아버지들 보다 오만하고 멍청해졌습니다.
이는 찬가를 부를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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