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간에서는 "극우"라는 표현으로 상대를 멸시하는 흐름이 유행인 것 같다. 물론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 중에 진정 "극우"가 무엇인가 깊이 있게 고민해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한국적인 도덕쟁탈전에서, 당파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하나의 부적이나 주문처럼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들이 "극우"라고 낙인찍는 대상은 실로 너무나 다양하고 방대해서, 보수적 자유주의자와 기독교도, 이준석 지지자와 파시스트 모두를 아우르는 것 같다. 어쩌면 이들의 이분법적, 흑백논리적 세계관에서는 "내가 아닌 사람은 모두 극우"라는 식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조갑제가 정규재같은, "이재명에 비교적 우호적인 보수"는 "극우"의 낙인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극우"로 낙인 찍는 이들 중에 실제로 자기가 "극우"라고 선언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스스로를 "합리적 보수"나 "중도 우파"로 포지셔닝하는 것 같고, 바로 그런 태도 자체가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극우"가 아님을 시사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우선 극우가 어떠한 의미인지부터 생각해보자. 극우라는 표현에서 "극(極)"이란 정치적, 사상적 스펙트럼에서 한쪽의 극단에 있음을 의미한다. 우(右)라는 것은, 물론 오른쪽의 입장에서 극단에 서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것은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는데, 하나는 행위의 차원에서 극단적인 행동을 분출하는 "우익"이며, 또 하나는 이념적, 원리적 차원에서 극단적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우익"을 의미한다. 요컨대, 서부지검 점거사태를 일으킨 이들을 "우익"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극단적 행위로 자기 신념을 표출했으므로, 이 의미에서 "극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이 이론적, 원리적 차원에서 "우익"인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적어도 이러한 입장에서라면, 본인은 스스로 "극우"라고 당당히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우익이 적대하는 것은 좌익이다. 그러나 극우가 적대하는 것은 좌익을 둘러싼 세계 바로 그 자체이다. 우익이 좌익과 당파싸움을 한다면, 극우는 좌익과의 투쟁을 넘어 좌익을 허용하는 그 세계 전체, 현대 사회 전체에 적대하고 투쟁한다. 원리적 극우의 본의는 극단적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급진적 사유에 있다. 즉, 단순히 폭력사태로 사태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문명사적 구조를 바라보는 것이다. 소위 폭력적 "우파"는 좌익의 득세에 절망한다. 그러므로 이재명을 지지하는 놈들을 때려잡고 "체제를 정상화"하려고 한다. 우리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이재명이라는 괴물이 어디서 나타났는지를 직시한다. 이재명이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해 집권했는가? 그렇지 않다. 설령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재명이라는 존재가 등장하고 세를 얻을 수 있는 바탕에는 현대 한국의 자유주의적 - 민주주의적 - 자본주의적 사회구조가 심층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체제를 정상화"한다는 것은, 바로 이재명을 탄생시킨 정확히 그 원점으로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 이재명에 반대하지 않고 민주당에 반대하지 않고 서구적 자유주의와 의회주의 자체에 반대한다.
그것이 바로 87체제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87체제의 극복을 운위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87체제의 해체는, 제5공화국으로의 회귀나, "더나은" 민주주의라는 환상의 실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더 깊고 어두운 지층에서 이 체제의 심연을 응시한다. 그것은 바로 서구세계가 우리에게 강요한 근대성, 계몽주의 이래의 일체 정치사조에 대한 비판과 회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선조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물론 극우 반동인 우리에게는 조선왕조조차 타락의 전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다면 어디까지 들어가려고 하는가? 고려? 고구려? 신라?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근본에서 거부한다. 우리는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한다. 고구려의 자주정신과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가 회귀하고자 하는 것은 보다 원초적인 지점에 있다. 그것은 역사를 관통하며 한국인의 민족심리의 원형이 추구하는 태고적 황금시대로의 회귀인 것이다.
물론 그 황금시대는 실제로 존재한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할 일이 없을 것이다. 태고의 황금시대를 추구하는 우리의 노력은, 마치 저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며 달려가 그것을 잡으려 하는 것과 같이 허무한 노력일는지 모른다. 우리가 지평선을 잡으려 달려가는 그만큼, 지평선은 저 멀리 떨어진다. 그러나 적어도 그만큼 우리가 달려왔다는 것에 한민족 오천년 역사의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황금 시대가 실제로 구현된 일이 있느냐, 또 구현할 수 있느냐 하는 합리적, 인식론적 추론과 분석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황금시대에 대한 의욕과 열망이 민족의 응집된 에네르기를 얼마만큼 동원할 수 있고 또 이들을 조직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다. 실로 우리 조상들 그 누구도 신시에 도달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시의 이상은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때마다 구전으로 혹은 글로 전해지며 우리의 투쟁을 고무하고 추동하였다. 바로 여기에서 역사의 창조적 전개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부르좌 민주주의 체제를 개선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좌익과 우익의 일체 시도를 비웃는다.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 처세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5년 임기의 협소한 정치적 공간에서 편협한 의제를 가지고 다투면 다툴 수록 민족의 에너지는 소모되고 민족의 이상은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우리 민족의 웅비와 이상"에 대해서 더이상 어떤 정치인이 웨쳐대고 있는가? "비수술 트렌스젠더라는 게 존재하는가" 따위의 논쟁이 일상화되면 일상화될 수록 민족은 타락하고 조국은 몰락한다. 이런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이 소위 좌와 우의 현실이다.
어떤 자들은 윤석열을 수호하는 집단이 극우집단이라고 일갈한다. 진정한 극우라면, 윤석열 따위를 수호하는데 자기 정력을 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우주와 문명의 새로운 혁신과 창조를 운위하는 입장에서, 일개 임기 오년짜리 대통령, 그나마도 자기 임기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내려온 대통령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윤석열도, 이재명도, 노무현도 다 죽고 사라지고 그 중에서는 후대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할 자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 극우파는 이런 피라미들에 집중하는데 시간을 쏟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이들의 준동에도 불구하고 존재할 민족의 원초적인 힘, 민족적 근본의 영적 에너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체제를 개척하려는 것이고 우주적 생명의 약동을 가능케 하려는 것이다. "극우"의 세계에는 민주당도 없고, 국민의 힘도 없고, 국회를 아우르는 시시한 말장난과 소비사회의 사사로운 유행도 없고, 계엄과 내란에 대한 시시껄렁한 논쟁도 없다. 우리 극우파는 실로 그 모든 것을 초월한다.
모두가 속세의 정치적 논쟁과 생활 문제에 집중하고 있을때, 우리는 그 밑에서 약동하는 민족적 생명, 현대의 부르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퇴폐로 얼룩진 범속한 세상 밑바닥에 흐르고 있을 괴물적인, 폭력적인, 야만적이고 반문명적인 민족의 본질을 직시한다. 실로 "두개의 한국"은 남조선과 북조선에 있지 않고 한반도의 심층에 자리하고 있다. 문명화된 한국, 세계화되고 물질문명에 잠식되고 딴따라놀음에 눈이 돌아간 오늘날의 부패한 한국 사회의 이면에서 우리는 조상들이 가졌던 민족웅비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것이다. 그 폭발적 에너지가 분출해 오늘날 썩고 부패한 종말론적 "대한민국"을 완전히 쓸어버릴 그 날을 위해 우리는 싸우려는 것이다.
이 분 김갑식 님인가요? 뭔가 마음에 드는 글인데 김갑식 님하고 비슷한 느낌
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