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민족주의한다는 부류에는 신기한 점이 있다
일단 4050 남성 민족주의자들, 소위 국뽕빨며, 노무현 찬양하고, 민주당 지지하는 민족주의자들.
이들은 민족적 부에 관심이 많다.
허나 이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민족적 성을 추구하지 않고 개인적 성을 추구한다는데 있다 (야스를 알려주겠다, 미투 당하기, 자칭 인기 많다는 영포티 등등)
따라서 성이 중요한 남자의 관점에서, 이들은 민족주의자라 부를 수 없다. 결정적인 것을 희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주의한다는 남성이 진짜 그런지 보려면 민족적 성 추구를 하는지 봐야 한다.
정상적으로 아들들에게 돌아갈 성을 빼았고 페미를 조장하며 자식들 결혼을 방해하는게 무슨 민족주의자인가
민족적 물 추구를 한다 한들 민족적 성 추구에 관심없는 이상 이들은 민족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2030 여성 민족주의자들.
이들이 최근 화짱조 여론을 불지피며 한국을 수호한다는 뽕에 빠져있으며 단연코 최대 관심사는 외국 여성 유입 방해다.
즉 어떻게보면 한국에서 민족적 성 추구에 가장 열심인 자들이다. 4050 남성이 물 중심 민족주의면 이들은 성 중심 민족주의이다.
허나 이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민족적 성을 추구하지 않고 개인적 성을 추구한다는데 있다.
가족을 만드는데 관심이 없어서 물욕은 자식에게 주기 위한 것 아니라 오로지 개인적 물욕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물이 중요한 여자의 관점에서, 이들은 민족주의자라 부를 수 없다. 결정적인 것을 희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주의한다는 여성이 진짜 그런지 보려면 민족적 물 추구를 하는지 봐야 한다.
명품백 등은 민족의 자식을 키우기 위한 것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자신만의 물욕이고 외국여성 유입 막아 더 많은 개인 물욕을 좆기 위한 게 무슨 민족주의자인가
민족적 성 추구를 한다 한들 민족적 물 추구에 관심없는 이상 이들은 민족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들은 그래프에서 각각 리버럴남 리버럴녀이다
그렇다면 남자는 민족적 성 추구를 하고, 여자는 민족적 물 추구를 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답은 뭐 새삼 또 말 할게 있나 싶다
그렇다면 왜 저런 형태의 리버럴남 리버럴녀가 양산된 건가?
즉 개인적 물 추구, 민족적 성 추구 리버럴녀와
민족적 물 추구, 개인적 성 추구 리버럴 남이라는 기형적 조합이 탄생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원인은 기독교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의 특징이 가족적 성, 가족적 물 추구이고
기독교에 가족 다음 민족 레벨은 없다. 바로 가족 다음 단위가 전세계다.
민족적 성, 민족적 물 추구라는 게 없다. 세계적 성, 세계적 물 추구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남자에는 가족적 성, (세계적 물)
여자에는 가족적 물, (세계적 성) 조합이 나오게 된다.
리버럴은 기독교를 뒤집어 탄생했다.
리버럴은 기독교의 가족가치에 반발한다.
가족적 성, 가족적 물은 개인적 성, 개인적 물로 대체된다.
다음으로 기독교의 글로벌리즘에 반발한다.
세계적 성, 세계적 물은 민족적 성, 민족적 물로 대체된다.
(프랑스 대혁명 민족주의를 생각해보자)
기독교남(가족적 성, 세계적 물)이 뒤집히면, 리버럴남(개인적 성, 민족적 물)이 되고
기독교녀(가족적 물, 세계적 성)가 뒤집히면, 리버럴녀(개인적 물, 민족적 성)이 된다.
즉 (유교 관점에서는) 기독교 자체가 기형적이었기 때문에(제가와 평천하만 있다, 치국 X. 가족 다음 민족없이 곧바로 세계)
기독교를 뒤집은 리버럴 남녀도 기형적이게 된다.
왜 리버럴 남녀가 민족주의 하나씩 갖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허나 이 리버럴 남녀는 당연히 가짜 민족주의 남녀라고 앞서 말했다. 기형적 것,
리버럴 남녀는 각자 이익(개인적 성, 개인적 물)을 위한 행동을 할 뿐이고,
리버럴은 기독교와 함께 가족을 해체하기 때문에 가족을 위한 민족주의(가족과 함께 가는 민족주의, 당연한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미친 리버럴 남녀들에서 "민족"과 "가족"이 따로 놀고 있는 것은 매우 이해가 안되고 이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애초에 리버럴이 뒤집은 기독교부터가 "민족" 관념이 부재한 이상한(weird) 종교이기 때문이라 설명된다.
(그래서 민족 단위 패싱하고, 가족에서 바로 만인 전인류로 나아가 사랑하라는 예수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부터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제가, 평천하]만 해왔고, 그 반작용인 리버럴도 [수신(?), 치국]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버럴남이 개인적 성욕을 탐하고, 리버럴녀가 개인적 물욕을 탐하면서
그 개인적 이익을 위해 패션으로 남자는 민족적 물, 여자는 민족적 성 부역시킨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자
순서1 리버럴남이 가족(와이프) 내던지고 개인적 성을 탐하고, 비서한테 야스를 알려준다 하고 미투나 당한다.
민족적 물 추구도 하긴 하는데, 나라 경제가 중요하니 리버럴 꼭 해야한다고 한다.
순서2 (잠재적) 유교녀였던 이대녀는 리버럴남 개저씨 꼴을 보든, 리버럴에 세뇌당해서든 리버럴녀로 갈아탄다.
우리가 아는 페미, 반가족적이며 극한의 개인적인 물 추구가 벌어지고,
동시에 민족적 성 추구, 외국여자 견제로써 개인적 물 추구를 한다.
순서3 (잠재적) 유교남였던 이대남은 이대녀가 싸그리 페미가 되는 꼴을 보건대,
마지막까지 꾹참고 결혼하려했던 유교남 양식을 벗어던지고
3-1. 리버럴남. 리버럴에 세뇌 당해서든. 나도 알파남으로 깽판쳐보겠다든. 4050 윗세대처럼 리버럴(개인적 성, 민족적 물)하는 부류: 백군새 리버럴
-> 이들이 다시 리버럴녀를 양산하고(한번 버린 몸 창녀처럼 즐겨야지), 리버럴남과 리버럴녀가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며 리버럴 순환 고리를 만든다.
3-2. 기독교남. 기독교에는 민족이 없고 가족만 있다. 기독교적으로 (민족적 성 없이) 오로지 가족적 성만 추구하는 부류: 주갤
-> 흥미롭게도 리버럴 반작용의 결과로 기독교로 들어간 케이스다.
3-3. 식민남. 원래 없던 물욕은 물론이고, 성욕을 거세시킴으로써 후천적으로 물욕을 만들지도 않는다. 후대 포기하고 욕구 자체를 없애는 부류: 무탈갤
-> 식민녀를 무력하게 제국남(리버럴남)에게 내주는 식민지 남성성이 만들어졌다.
3.2 3.3은 리버럴남과 리버럴녀의 극단적인 리버럴 순환의 결과 순환의 고리에서 튕겨 원심력으로 밀려난 자들이다. 리버럴 경쟁 논리에서는 도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허나 합리적으로 페미녀를 감당하지 않는 것, 설거지 포기를 경쟁패자 도태라 봐야할 지는 모르겠다.
이들은 빨간 글씨로 적어놨지만
3.2 기독교남은 결혼이민을 유입시키고 혼혈아를 생산한다.
3.3 식민남은 모든 욕구가 거세돼있고 가족을 만들지 않는 관계로 근로가 최소화되며, 외노자 수입, 취업이민을 유입시킨다.
즉 결과로 보면 외견상 이들이 민족주의의 최대 적으로 보인다.
허나 리버럴 순환 고리에서 떨어져나간 것이 리버럴 논리상 소위 도태된 이들의 책임일까 싶다.
애초에 도태인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했고, 페미녀 감당 안하는 것이 도태라는데 그것에 동의하는 젊은 남자는 사실상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에야 세뇌가 통한거지 페미녀(리버럴녀) 극단적으로 강화해놓고, 남자만 유교남 돼서 무한희생하고 받아라 하면 되도않는 (억울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교남을 원하면 유교녀를 만들어놔야 공평하기 때문이고, 설거지론은 정확히 이것을 지적한 것이다..
일전에 지방 깡촌이 외노자 유입, 이민 유입에 호의적인 것도 서울이 젊은 사람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구조가 근본 원인이고 서울 리버럴 권력부터 조져야 한다고 얘기했다.
문제의 본질은 리버럴 순환 고리고 저것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리버럴남과 리버럴녀를 감당할 수 없어 리버럴 순환 고리 밖으로 튕겨지는 사람이 무한 발생한다.
그리고 이대남 거의 7할은 튕긴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대녀 7할이 유교녀에서 벗어나 리버럴 고리로 유입돼서 리버럴녀로 전락한 것에 따른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잠재적 유교녀였던) 이대녀에 이어서 (잠재적 유교남이었던) 이대남 역시 유교 직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자는 유교녀가 아니라 페미녀(리버럴녀)로 만들어 뒀으면서, 남자(이대남) 보고만 유교남 되라는 가스라이팅을 계속할 것인가,
되도않는 가스라이팅인 거 (설거지론으로) 다 들통났는데도 허공에 대고 가스라이팅 계속하면서 이대남이나 계속 욕하며 리버럴 순환 고리는 손을 안댈 것인가?
혹자는 페미(여자 리버럴)를 부숴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 말은 리버럴 순환 고리의 한 축인 페미녀(리버럴녀)를 조져서 리버룰 순환 고리를 파괴하고
리버럴 순환 고리로부터 기독교남, 식민남으로 떠밀려 다문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미로 읽힌다.
좋은 해결이지만 리버럴 순환 고리 자체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즉 이 고리는 여자 측도 끊어야 하지만 남자 측도 끊어야 한다.
리버럴녀를 유교녀로 복원시키려는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리버럴남을 유교남으로 만드는 것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남녀 공평하면서도 고리를 분쇄함에 효과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리버럴녀 2030 여성에 대한 교화와, 리버럴남 2030 남성 백군새 준빠, 섹스 알려주고싶은 4050 남페미 남성 교화가 동시에 들어가는 것
즉 리를 동원해서 리버럴남, 리버럴녀 모두 유교 직선상으로 강제로 끌고오는 유교적 해법이다.
이러한 교화는 종교와 국가가 결합한 유교 특성상 국가에 의해 직접 정책적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물론 도교적 해법도 있다.
(도교는 유교와 달리 시장, 자연에 맡기자는 쪽이다. 무로 유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다문화 일으킨다고 욕먹는 3.2 기독교남 3.3 식민지남은 장기적으로 국내 여성의 성 가격을 떨어뜨린다.
이는 강제로 여성의 물욕을 감쇄시키고, 개인적 물욕에서 가족적 물욕으로, 여성을 물적 이타성 방향으로 끌고온다.
그들의 존재가 장기적으로 리버럴녀를 유교녀로 복구시키게 된다.
이것은 그래프상으로도 볼 수 있는데, 남녀 결합을 위해서는 남녀(점들) 거리가 가까울 수록 유리하다.
그렇다면 튕겨나가져 있는 식민남, 기독교남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인해 리버럴녀를 유교녀로 당기는 힘이 있게 된다.
유교녀로 당겨지면 다시 남자도 유교남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러면 자연히 평화로운 봄이 올 수 있다.
현재 국가의 유교적 리를 통한 개입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한국의 남녀갈등 진정과 출산율 상승은 이 도교 논리에 따른 것이다.
즉 역설적으로 다문화 만든다고 그렇게 욕먹는 튕겨져나간 3.2 기독교남 3.3 식민지남의 영향이다. 원래 도교가 역설을 많이 말한다.
경제학적으로도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한국결혼시장에서 한국여자에 접근하는 한국남자 공급이 감소하자 여자 쪽 지위가 하락하고
여자는 선천적 물욕을 후퇴시키는 방향(물적 이타적인 방향)으로 남자에 끌려오게 되며
곧 자연히 유교녀, 현모양처녀, 이제는 결혼하고 애낳고 싶어요녀가 되어버리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5년전 한국 여자를 떠올려보면 놀랍기도 하다. 튕겨져 나가서 다문화 일으킨다고 욕먹고 있는, 한국결혼시장에서 이탈한 이들이 시장에 한국남자 공급을 줄여서 한국 여자 눈높이를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복잡한 생각이 들면서 세상 이치의 오묘함을 생각하게 된다.
회복 중 부작용으로 다문화가 초래되고 있으나 이것은 페미를 밀어부칠 때부터 그것의 양(量)을 예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페미를 밀어부친 취지가 그만큼 다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 보게 된다. 페미에 오염돼서 비혼한다고 시장에서 이탈하는 여자 수만큼 정확히, 다문화 (초래)하는 남자 수가 증가하는 것이다. 억지로 이대남 상대로 세뇌 가스라이팅 성공하지 않는 한)
물론 유교가 없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도교로 회복이 이뤄지는 것에 만족할 수는 없다.
철저하게 리로 리버럴 순환 고리 발동을 틀어막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다.
따라서 그 징비록으로 리버럴 순환 고리를 분쇄하기 위해 나는 지금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핵심적인 유교의 취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지난 5년의 교훈으로 리버럴 순환 고리를 억제해 다음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별개로
이미 튕겨져나간 기독교남 식민남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이들은 잠재적 유교남이었다. 허나 여자가 유교녀가 아닌 세상에서 비자발적으로 밀려났다 볼 수 있다.
혼혈아 생산까지 한 기독교남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혼혈가족의 외국으로의 이민을 장려하여야 할 것이고
한편 식민남에게는 아무런 욕구가 없다. 도교적으로 기싸움 욕구가 없을수록, 협상이 파국으로 가도 아무 상관이 없을수록 승리한다.
이들이 욕구를 거세한(된) 것에 연민이 들면서도 이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일본의 40대가 이렇다는데, 버려진 세대는 그들에게도 사회 전체에도 불행이 되었다.
지금의 유교 부재 상황이 그들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유교를 날린 게 이들도 아닌데 이들을 비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이 못된다고 본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유교를 정비하고 리버럴남(개인적 성 => 가족적 성으로써) 리버럴녀(개인적 물 => 가족적 물으로써)에게 철퇴를 가하는 일이다.
한편 또래의 페미 여자들에게도 비슷한 생각이다. 이들에게도 리버럴남이 리버럴녀를 추동한 것에 따른 것, 리버럴 세뇌에 당한 것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또래는 잠재적 유교남이었는데도 4050 일부 한남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단체로 리버럴녀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또래 남자도 처음에는 유교남으로서 여자들에게 비혼말고 결혼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설득하다가, 국가가 할 일을 안하고 방임하는 상황에서(되려 거꾸로 국가가 리버럴 밀어부치던 상황에서) 이게 도리어 도교식 협상 상황의 약자 포지션이 되어버려,
어 상대(이대남)가 약자네? 더 밀어부쳐볼까 딜 어디까지 들어갈까, 서울아파트 해와, 신라호텔에서 결혼식해, 시그니엘에서 프로포즈해, 아니면 결혼 안해, 여자들 담합해서 비혼하고 4B운동하고 남자들 몰아부쳐도 얘네 무조건 결혼 하자네 결혼(성욕)에 미쳐있네, 리버럴(페미)이 무조건 이득이다로 리버럴녀 양산을 부채질해버렸고,
마침내 페미가 극에 달하자 물극반(物極反)으로 이대남 역시 못참고 손해가 막심한 유교남의 길을 손절하게 된 것이다. 이에 3.2 기독교남 3.3 식민남의 한국결혼시장 이탈로 여자의 협상력이 도교적으로 급격히 후퇴하고, 나이들어 30세에 급격히 턴해 결혼해야 한다고 유교녀로 돌아가도, 즉 여자들이 뒤늦게 정신차려도, 설거지해줄 남자는 없게 되었다.
재밌는 건 페미가 극단화되기 전에는 웬만하면 유교녀 아닌 여자도 착한 유교남들이 다 설거지해줬는데, 이득본 쪽인 82년생 김지영이 되려 약자로 스토레텔링되어 욕심에 욕심을 거듭하다 지 복을 지가 걷어찼으며, 여자의 (물적) 이익 추구가 말도안될 정도로 극에 이르자 비로소 반대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도교적 사회실험에 한대 맞은 기분이다.
양이 크게 극하면 음이되고, 음이 크게 극하면 양이 되는 원리, 태극의 원리다. 파랑이 극에 달하기 전 빨강이 슬슬 치고 나오며, 파랑이 극에 달하면 파랑은 줄어든다. 마치 가장 더위가 극성일 때부터 여름으로 향해가고, 추위가 극성일 때부터 여름으로 향해가듯. 지금은 페미가 싹사라진 이유다. 그런데 페미였던 여자를 받아줄 남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아마 한국도 일본처럼 극심한 남자의 갑 세상이 올지 모른다. 이미 여자력은 에겐녀로 교육중이라던가.
남녀 모두 리버럴 유교 없는 시대의 피해자였다고 할 수 있다. 선동에 취약한 여자와, 기싸움으로 도교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여자의 특성을 몰랐던 남자의 대응(남자도 도교에는 도교로 처음부터 비혼한다고 도교적 기싸움 걸었어야 했다.)이 합쳐져 비극이 됐다.
유교나 도교 같은 동양철학이 20대에서도 더 대중적이었다면, 리버럴 논리를 처음부터 잘 분쇄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세대의 불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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