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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관점에 따르면, 기독교는 서구 허무주의의 시작이자 끝이다. 

기독교는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이 세계를 불완전하고 타락한 장소로 규정하며, ‘구원’이라 부르는 것을 천국에 두었다. 

‘지금, 여기’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과도기적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지전능하고 지선한 신의 뜻에 따라, 현재의 고통은 미래의 낙원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된다.

이는 곧 인간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삶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궁극적으로 부정하며 금욕과 희생을 강요하는 노예적인 도덕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는 어떠한가? 단지 저편의 천국을 ‘역사의 종말’ 속 무계급 사회로 천치했을 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역시 현실을 부정하고, 인간 존재를 어떤 ‘완전한 미래’ 속에 투사하는 동일한 구조에 사로잡혀 있다.

언제 올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올 것이라 믿는 미래를 말이다.

카를 슈미트는 근대의 세속적 개념들이 사실 이전의 신학적 개념들이 변형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신학’이다. 기독교의 종말론, 원죄와 구원, 신국의 도래라는 신학적 서사는 마르크스에 의해 역사유물론, 계급투쟁, 혁명과 종국적 화해라는 구조로 이식되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의 세속적 변주로서 정치적 메시아주의를 실천했을 뿐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인류의 역사를 선형적인 진보의 과정으로 보고, 무계급 사회로의 필연적인 이행을 주장했다.

어떤 토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인간의 의식에서 벗어난 무언가가 의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보편주의적·초월주의적 서사를 제시한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신의 뜻에 의해 일어난다는 듯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무언가다.

기독교는 신 앞의 동일성을 강조하며 존재자의 개별성을 지우고, 공산주의는 계급의 항구적인 철폐를 내세워 문명적·민족적·문화적인 차이를 소거한다.

존재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고, 존재를 단일한 목적론적 서사 속으로 환원하는 ‘형이상학적 폭력’이다. 주변부의 경험은 ‘이단적인 것’ 혹은 ‘반동적인 것’에 불과하며, 진리에 반하는 불경한 태도로 격하된다.

공산주의는 유럽의 다신론적·이교도적 전통을 전복하고 폭력과 억압으로 세워진 기독교 문명의 이단아에 불과하다.

‘인권’은 인류 전체를 추상화된 동일성으로 환원한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구체적인 문화와 역사 속에서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