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련은 황해도의 천민 출신으로 임진왜란 시기 의병에 가담해서 용맹 하나만으로 명성를 쌓고 출세한 인물이었다. 

당대의 여러 인물들에게 용맹하다고 평가 받았으며 얼마나 용맹했는지 명나라 제독 마귀에게 이순신, 권율 장군과 함께 거론될 정도였다.


광해군 집권기에 안정된 시절을 보내며 순변사로서 군졸들을 잘 보살핀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광해군이 폐위되자 좋은 시절도 끝나버린다. 한명련은 불안을 느꼈는지 먼저 사직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0490f719b38a6bfe20b5c6b011f11a39f274219fce63075dd4



불안은 맞아떨어졌고, 한명련은 서인들에게 이괄, 정충신과 세트로 묶여서 반역을 모의했다는 무고를 받는다.

그리고 한양으로 압송되었지만, 이때 진짜로 반역을 일으킨 이괄이 중간에 한명련을 구출해냈고, 그뒤로 이괄군에 가담해서 2인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폭발한건지 이괄군의 선봉으로 관군을 격파하는데 앞장섰다. 하지만 이괄과 함께 몰락, 죽음을 맞는다.

여기서 한명련의 아들 한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데, 완전히 흑화해서 조선을 엄청나게 증오하게 된다.


아버지 한명련이 억울하게 모함받고 난에 가담해 죽은 후 숨어살던 한윤은 포위망이 좁혀오자 사촌동생 한택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간다.

그리고 그를 받아준 인물이 바로 후금(1636년에 국호 청나라로 바꿈.)의 초대 황제 누르하치였다.

누르하치에게 유격의 직책(1500명 정도를 통솔)을 받은 한윤은 곧바로 조선 정벌을 주장하지만, 누르하치는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조선정벌 주장은 누르하치가 죽고 홍타이지가 칸이 되자, 홍타이지에게 조선침략을 부추겨 현실이 된다.


한윤은 앞잡이 길잡이 노릇하면서 조선의 의주성을 함락시키는데 앞장섰고, 이 일로 수만의 조선인들이 학살을 당한다.

정묘화약이 이루어진 후 후금군은 철수했지만, 한윤은 계속 조선을 완전히 정벌해야된다고 주장했다.

한윤은 위세는 계속 높아져서 후금으로 간지 7년만에 후금(청나라) 공신 서열 50위에 올랐고, 용골대와 사돈을 맺을 정도가 된다.

마침내 홍타이지는 3만 대군을 출병시켜 불과 50여일 만에 인조를 무릎 꿇리고 화친을 받아냈다. 



전설적인 애국 의병장 반역으로 몰아서 외세에 무릎꿇기는 서인

병자호란 + 세도정치 망국 2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