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야말로 이조가 배출한, 아니 박해한 위대한 학자다. 그는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의 정적들은 그를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 학자의 진가를 알고 있었던 정조(正祖)가 그를 어여삐 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처형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16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70여 권의 귀중한 원고를 남겼다.
그런데 요즘에도 노론계에 속하는 인사들은 그가 남인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는다.
- 윤치호, 《윤치호일기: 1916년 ~ 1943년》 (김상태 편역, 역사 비평사, 2001년) 613페이지
1930년대 까지만 해도 노론계 인사들의 후손들은 남인에 속하는 정약용을 극도로 혐오하였다. 한국에 서점의 개념이 도입된 1890년대 이후, 자유롭게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었음에도 그의 저술들을 외면하였다. 윤치호는 정약용을 높이 평가하면서 노론 벽파의 후손들은 1930년대까지도 정약용을 싫어하여 정약용의 책은 사거나 읽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론은 정약용이 죽은지 130년이 지난 뒤인 1930년대 까지도 정약용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유지하였으며, 이는 1945년 8월 광복과 동시에 남아있던 노론들이 해체될때까지 그 적개심은 계속되었다.
대단하노
사실 한국에서 집안가려가며 결혼하던 시절이 그리 오래전이 아닙니다 다문화선동의 급진성이 얼마나 기괴한 수준인지 보여주는 부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