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이민을 멈추려면 노동 이민부터 막아야 한다. 노동 이민은 단기적 이해관계에 근거하지만, 그 장기적 귀결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파괴로 이어진다. 이는 노동자와 고용주,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계약이다.


이민은 노동인 동시에 소비다. 본국보다 높은 소득과 양질의 인프라를 누리는 대가로 노동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고용주에게 이민은 노동자를 더 싸게 착취할 기회일 뿐이다. 실업자는 임금 하락을 유발한다. 이는 남반구에서 유입된 수억 명으로 거대해졌다. 자본가들이 국경 개방을 외치는 이유다. 그 이면에는 고용주의 노골적인 탐욕이 있을 뿐이다.


고용주들은 소비자의 구매력 한계를 핑계로 삼는다. 그러나 정당한 노동에는 정당한 임금이 따라야 한다. 서비스 비용이 오르는가? 그렇다면 외식을 줄이고, 배달을 시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값싼 노동력에 기댄 편의는 의무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무엇인가? 나태함이다. 결국 이민은 개인이 단기적 편익을 위해 공동체에 장기적 비용을 전가하는 행위다. 오늘의 문제를 내일로, 개인의 책임을 공동체로 떠넘기는 것이다. 이제 좀 공동체와 미래를 생각하자. 


이민 찬성론자들의 첫 번째 논리는 인구 피라미드다.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노동력을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눈데, 첫째, 유럽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여전히 막대한 실업 인구가 존재한다. 둘째, 인공지능이 노동력 부족이 아닌 과잉을 초래할 것이다. 잉여 노동력이 우려되는 시대에 왜 노동력을 수입해야 하는가?


두 번째 주장은 자국민이 꺼리는 일을 대신한다는 해묵은 변명이다. 이는 1970년대 자동차 산업이 저지른 과오의 반복일 뿐이다. 당시 값싼 노동력 수입은 산업의 현대화를 지연시켰고, 오늘날 유럽에선 실업과 범죄, 이슬람화의 온상이 되었다.


요컨대 자본의 예비군으로서의 이민은 자본가의 탐욕과 소비자의 나태에 봉사하며 공동체의 미래를 좀먹는다. 내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문화적 응집력을 보존하고 우리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지, 나중에 큰 대가를 치를 손쉬운 해결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