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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펄리즘은 우둔하고 멍청하게 보인다. 

음모론,과잉적 방어기제,공포론...


정치적인 인상을 평가를 할때 기성층에서 패배자 혹은 약자들의 그럴듯한 변명의 집합체로 보인다.


또한 퍼펄리즘의 외침에 대한 영리하고 쇼맨쉽이 넘치는 정치인과 기성층의 접근은 쓰고 버릴 하나의 덩어리로 느끼어진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퍼펄리즘의 목소리들도 마치 쇼맨쉽과 결탁을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을 하는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그렇게 보이는것 처럼 언론들을 말을 한다. 


문제는 실상은 다르다. 


그건 어쩌면 고대나 혹은 생산양식이 급변하는 산업시대 초기부터 혀를 뽑힌채 앉아있는 울브스들과 같다. 


암흑과도 같은 쇼맨쉽 정치인이 떠난자리엔 퍼펄리즘의 목소리는 남는다. 


이는 간단하다. 


그들이 경제구조나 사회적 계급에서 더 보편적이다. 


이에 대한 기성층들의 대항은 새로운 문화적 문제나 문젯거리들을 만드는것이다. 


그렇지만 그 문제들로 또 다른 울브스들이 눈을 뜬다. 


우둔하고 멍청하게 보이는 늑대들이 점점 늘어나는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흥미롭다. 


퍼펄리즘의 통제나 혹은 퍼펄리즘의 탄생 혹은 성격을 바꾼다는 야망은 낭만적일정도다. 


문제는 이러한 기성층의 반응들도 퍼펄리즘이 가지는 신비주의적 주술적 의식과 닮아있다. 


그렇게 퍼펄리즘은 점점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