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스타그램을 보면 해외여행이나 카페 방문을 ‘인증’하려는 경향이 쉽게 눈에 띈다. 여행의 목적은 풍경을 즐기거나 현지 문화를 체험하는 것보다 ‘인스타 감성’에 맞는 사진을 남기고 공유하는 데 있는 듯하며, 맛집에서는 허기를 채우고 음식을 즐기기보다 접시의 구도와 빛을 점검하고, 먹는 순간보다 게시 순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듯 하다. 이러한 풍경은 단순한 개인 취향을 넘어, 현대 사회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과 깊게 맞닿아 있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기 드보르‘는 1967년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삶의 직접적 경험이 이미지와 재현으로 대체되는 현상”을 스펙터클(spectacle)이라고 규정했다. 스펙터클은 단순한 시각적 과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재현의 지배: 사회적 관계가 물리적 만남이 아니라 이미지·기호·광고 등으로 매개된다.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기보다 이미지 속에서 서로를 인식한다.
소비의 자기 목적화: 상품을 ‘사용하기 위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 소비’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경험은 즉각적으로 게시될 ‘사진’이라는 형태로 가공되어야 한다.
타자의 시선에 의한 자기 동일화: ‘내가 무엇을 느끼는가’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사회적 평가는 ‘좋아요’나 ‘팔로워 수’ 같은 지표로 계산된다.
맛이나 향보다 사진을 촬영하는 각도와 필터가 우선하고, ‘게시할 만한 장소’를 찾는 것이 주된 동기이며, 좋아요·댓글·조회수가 경험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었다는 점에서, 경험이 이미지라는 재현을 위해 조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 인간의 기억과 만족감은 이미지와 데이터(좋아요, 조회 수)로 측정되면서 감각적·정서적 경험은 얕아진다. 개인의 경험은 항상 타인의 반응에 종속되며, 이에 따라 개인이 살아가는 삶의 자율성은 약화된다. 결국 단순한 취향의 문제를 넘어, 스펙터클은 인간의 주체적 감각과 내면의 깊이를 붕괴시키기에 이른다.
또한 스펙터클은 대인관계를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조직한다. 우정·사랑·공동체의 의미가 스토리나 피드에 남는 ‘보여줄 만한 순간’으로 환원되고, 관계 유지가 관심 경제(좋아요·댓글)와 광고 시장의 데이터 수집에 결합되면서 친밀감은 상업적으로 착취된다. 결과적으로 관계는 깊이보다 가시성과 즉각적 반응이 우선시되는 얇은 연결로 바뀌고,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적 유대는 강하게 훼손된다.
이와 같은 일련의 현상들은 단지 문화적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오늘날 권력의 작동 방식으로도 작용한다. 이미지가 삶을 지배할수록 정치적 현실은 ‘쇼’나 ‘연출된 이미지’로 소비되기 마련이고, 대중은 ‘구경꾼(spectator)’이 되어 사건을 관찰하고 공유할 뿐이지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는 무기력해지며, 기업과 플랫폼은 데이터와 주목을 수익화함에 따라 사용자의 욕망과 행동을 더 정교하게 예측·조작할 수 있게 되어 합리화된 사회 통제를 이룩한다.
마지막으로, 스펙터클은 타인의 시선을 욕망의 기준으로 고정시킨다. ‘내가 무엇을 원할까’가 아니라 ‘남들이 무엇을 좋아할까’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 삶의 주체성을 왜곡한다. 또한 알고리즘이 일상을 지배하며 비교와 불안은 일상의 감정으로 자리매김한다. 모두가 잘 살 수는 없지만, 모두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개개인을 자기검열시킨다.
결국 인스타그램 등지의 여행·카페 인증 문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가 인간 경험을 이미지로 전환하는 구조적 현상이다. 자본주의가 욕망·관계·정치를 포섭하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점점 더 ‘삶을 살아가기보다 삶을 전시하는 데’ 몰두하며, 이는 카를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상품물신성’의 개념과 정확히 일맥상통한다. 경험은 사진으로 대체되고, 관계는 화면 속에서 계산된다.
사용자의 행동·이미지·관심은 데이터 자원으로 축적되고, 플랫폼 기업은 이를 광고·추천 알고리즘으로 즉시 수익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관심·관계까지 생산수단으로 편입하는 ‘감정 노동·주목 노동’이 일어난다. 즉, 개인의 일상과 관계가 자본 축적의 직접 재료가 된다는 점에서 한층 더 포괄적인 착취가 일어나며, 공동체와 사회를 황폐화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는 꾸준히 유기적으로 진화한다.
비록 하부구조가 아닌 상부구조의 현상이지만, 자본주의적 상품화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없이는 이를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를 타도한다는 것은 생산구조를 변혁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문화가 자본주의의 산물임을 알고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을 다시 되짚어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Droit à la différence.
내가 그래서 코코에서 고기 사다가 직접 해먹는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