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적 가치

아시아 문화는 이기적인 인간상을 배격하고 상부상조하고 이타적인 인간상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중시하여 왔다. 그러므로 공동체 구성원 전체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세로 이타적이고 상부상조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국가 공동체 또한 가족 공동체의 연장선으로 생각해야 하며, 가정에서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자식이 자식답게 행동해야 하듯 국가에서 지도자도 지도자답게 국민들도 국민답게 행동해야 한다.(군군신신부부자자)



왜 이제는 박정희가 가부장제를 부정했다고 하겠군




그냥 저새끼 거짓말은 하나하나 설명해줄 가치도 없지만 황제펭귄-코르시카식 설명방식으로 똑같이 해준다



결과론적 후견주의와 박정희 리더십


곽준혁. (2010). 결과론적 후견주의와 박정희 리더십. 국가전략, 16(4), 5-32.


지금까지 저자는 이 논문을 통해 두 가지 주장을 전개했다. 첫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결과론적 후견주의’가 발현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대중을 위해 대중들의 의사에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해야하는 민주적 리더십의 딜레마는 성숙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발견되는 것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여 준 해법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 필요한 민주적 리더십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과제를 수행했다. 첫째, 민주적 리더십과 구성적 리더십을 기존의 정치가나 정치 상황만을 강조하는 전통적 리더십과 구별하여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의술’의 비유에서 나타나는 플라톤과 아리 스토텔레스의 지도자관이 대조되었고, 이를 토대로 민주적 리더십과 구성적 리더십의 의미가 지도자의 탁월성과 시대적 요청을 강조하는 전통적 리더십 의 대안으로 구체화되었다.

둘째, 해석학적 기법을 적용하여 박정희 전 대 통령의 인식론적 전제가 결과론적 후견주의였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여기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의 결과론적 후견주의는 대중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 한 환멸에 기초했다는 점이 부각되었고, 이를 토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민주적이고 비정치적 리더십의 연원이 분석되었다.

셋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과론적 후견주의가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떻 게 투영되었는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과 반공주의, 그리고 경부 고속도로의 상징화의 결과로 결과론적 후견주의가 시민들의 의식으로까지 각인되게 되었다는 평가를 내어 놓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은 후발 발전도상국가의 효율적 리더십의 전형으로 평가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결과론적 후견주의에 기초한 비민주적 리더십은 그 설득력을 가질 수없다. 비록 대중들의 의사와 상충하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민주적 리더십의 딜레마가 비민주적 결과를 초래하지 못하도록 제어할 조정원칙이 필요하다. 그 판단기준은 비지배적 상호성이라는 조정원칙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첫째, 민주적 리더십의 딜레마에서 지도자 는 자신과 대중이 갖는 시각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이 대중보다 본질적으로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상정해서는 안 된다. 박정희 리더십에서 발견되 듯, 지도자가 대중보다 정신적으로 우월하다는 전제에서 비대칭적 관계를 형성한다면, 비대칭적 관계는 지도자의 자의적인 지배를 가능하게 만든다.

둘째, 민주적 리더십의 딜레마는 지도자와 대중의 상호 견제가 가능한 조건에서만 성립된다. 지도자가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거나 계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민주적 리더십은 시민들의 정치적 견제력을 전제조건으로 해야 하고, 이러한 전제조건은 지도자의 일방적 정책추진이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까지도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각인시켜주어야 한 다.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이 가져온 정치적 효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아직도 민주적 리더십의 딜레마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방식으로 풀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적절한 대안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고, 후발 발전도상국가의 경험적 사실과 함께 결과론적 후견주의가 효율적 리더십의 인식론적 기초처럼 소개되기도 한다. 이런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익숙한 사고방식으로부터의 자발적인 일탈, 진지한 자기반성, 그리고 사려있는 재해석의 반복적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개인의 특성과 상황이 강조되는 전통적 리더십 접근방법으로부터 벗어나 대중과 대표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지배적 상호성에 기초한 구성적 리더십이 민주적 리더십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냥 당연한 말을 설명하고 있는 것

후견주의 = 가부장주의 = paternalism = 서열 인정, 형이하에서 불평등 전제



“온 나라 사람을 다 존귀하게 할 수는 없다. 다 존귀하게 되면 일은 이루어지지도 않고 나라만 불리하게 된다.” 《관자》의 승마편(乘馬篇)에 있는 말. -정약용, '跋顧亭林生員論'

정약용


= 온 나라 사람이 다 존귀하지 않다 

= 후견자와 피후견자가 같을 수 없다

= 왕과 백성의 일이 다르다

= 사장과 노동자의 일이 다르다

= 둘의 역할이 각각 나눠져있다(군군신신부부자자)

= 박정희가 후견주의로 일방적으로 경제발전 견인하겠다 

=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테크노크라트는 테크노크라트답게, 과학기술자는 과학기술자답게, 농민은 농민답게

= 농민은 경부고속도로 짓는데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농사나 지어라 대신 잘 챙겨주겠다 일일이 설명할 시간 없다

= 솔거노비는 솔거노비 일 해라 대신 잘 챙겨주겠다 = 자유민이 되어서 국정에 관여하지 마라 = 둘을 구분하는 권위가 있다




그러니 박정희의 근간은 형이하에서 차별을 긍정하고 수직질서를 긍정한 남인 主理論 정약용에서 오는 것이지

애초에 평등주의 찬양하면서 어떻게 박정희를 이끌어내는지

박정희 자체가 소위 민주적 수평적 리더십이 아닌 건 너무 명백한 사실인데

이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건 얼마나 사람들을 바보로 보는 것인지



자기가 빠는 워딩이 리버럴이라는 사상적 흐름을 다 알면서 고의로 바꾸는 건지 진짜 모르는 건지

전자면 뭣모르는 사람들을 거짓으로 선동하는 죄가 크다 차라리 대놓고 리버럴을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