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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부터 이야기하자면, 히피 운동은 “문명 비판의 본능적 형태”였음. 다시 말해, 히피들이 자본주의, 물질주의, 기술 중심주의에 반대하고 공동체적 삶, 자연과의 합일, 정신적 탐구를 지향한 것은 그 자체로 근대성에 대한 원초적 반응이었다고 할 수 있음. 예컨대 “back to nature”, “love not war”, “commune life” 같은 이상은 “근대 이전의 공동체적 질서로의 회귀”와 닮은 점이 분명 있었음

자연으로 돌아가고, 명상과 공동체 생활을 추구하며, 신화적·영적 체험을 중시한 것은 근대의 합리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본능적 반항이었고, 근대의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를 초월하여 신화와 상징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단지 생태학적 요구가 아니라, 영혼의 요구”라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듯 했음

그렇지만, 히피들은 근대 자본주의를 부정하면서도, 여전히 근대의 핵심 전제—보편적 인간관, 개인주의적 자유—를 벗어나지 못했음. 현존하는 체제를 부정하면서도, 그 부정의 언어마저 리버럴한 휴머니즘에 의존하고 있었고, “사랑과 평화로 모든 인류가 하나가 되자”는 말은 근대성의 신화를 답습하는 것처럼 보였음. 요컨대 정치적·철학적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낭만적 감성에 머무른 나머지 형태를 갖추지 못 했다는 거임

히피들이 작금의 기계화된 권위와 제도를 거부한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없는 자유”를 택한 것은 명백한 실수고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음. 그 자유는 결국 소속 없는 방황, 의미 없는 다양성으로 이어졌기 때문임. 자유는 인간이 어떤 집단과 전통, 상징적 유대 속에 있을 때만 진정한 의미를 갖지만, 히피들은 인간적 근대성—즉, 개인주의의 신화—을 넘어서지 못했음

정리하자면, 히피들이 영성이나 원시 공동체 등에 매료된 것은 서구의 이성 중심 문명에 대한 본능적 반동이었다고 할 수 있음. 단순한 퇴행이 아니라, 서구 문명이 잃어버린 상징적 질서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었다는 거임. 이런 시도가 진지한 신화적 회복이 아니라 “관광적 신비주의”에 그쳤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히피들이 무의식적으로 던진 질문—“기술과 논리로 무장한 문명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가?”—는 현재에도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음

히피는 길을 잃은 전통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비극적이라고 생각함. 요컨대 히피는 틀린 방향의 올바른 반항이었음. 직관은 옳았으나 철학이 부재했던 거고, 공동체를 그리워하면서도 공동체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보니 몰락한 것임

和而不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