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그 하수인들이 아리아인들의 생존권역을 부르짖으며 유럽 전역을 폐허로 만든지 몇년 지나지 않아, 다시 ‘아리아인’들이 국가사회주의를 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일이 벌어진 곳은 독일이 아닌 수천 km 떨어진 이란이었다.
SUMKA는 50년대 이란에서 다부드 몬시자데가 ‘라흐바르’를 자처하며 만든 민족주의 정당이었다. 하켄크로이츠에서 스와스티카를 파라바하르 문양으로 바꾸기만 한 당기에서 볼 수 있듯이, 노골적으로 네오나치즘을 따르는 단체였다.
이 단체의 창립자도 평범한 네오나치는 아니었다. 몬시자데는 1937년부터 베를린에 거주하면서 나치당에 부역했는데, 키예프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베를린 공방전에서 싸웠으며 소련군 포로 통역을 맞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잠시 독일에서 머무르다가 고국 이란으로 돌아오는데, 그는 그 곳에서 나치당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야망을 품게 된다.
사실 전쟁 전에도 이란에서는 나치즘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기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실제로 1930년대에는 ‘셈어족의 공격‘에 맞서 아리아인 공동체가 뭉칠것을 주장하며 히틀러와 레자 샤 팔레비를 동시에 추앙한 ‘Iran-e Bastan’이라는 잡지가 수만명의 독자를 거느리며 성황리에 출간될 정도였다. 아무튼 이러한 나치즘에 대한 심정적 동조가 만연한 상황 속에서 ‘이란인들의 나치당‘이 결성되었다.
SUMKA는 결성된 이후 무솔리니의 검은셔츠단이 그랬듯 좌익 세력들에 대해 백색 테러를 자행했다. 당시 이란은 자유주의자였던 모사데크 총리가 집권하고 있었고, 이란 공산당인 투데당도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였고, 이는 당시 이란의 군주였던 모하메드 레자 샤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졌다. SUMKA는 이런 상황에서 수백명 규모의 ‘돌격대’를 꾸려 투데당 당원을 습격하거나 테헤란의 소련문화원을 공격하는 등 우익 테러를 행했다. 이로 인해 정부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여러 정보기관으로부터 후원을 받았고, 전성기에는 당원 수가 만 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SUMKA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정부와 정보기관의 비호를 받던 반좌익 활동의 대상인 모사데크가 1953년 11월 미국과 샤가 주도한 쿠데타로 실각한 것이다. 샤와 정보기관은 그 쓸모를 다한 SUMKA를 토사구팽해버렸고, 후원이 끊기면서 그 세력이 급속히 쇠락하게 된다. 거기에 1953년 몬시자데가 샤에 의해 유럽으로 보내지면서 구심점을 잃은 SUMKA는 이후 힘없이 와해돼 버렸다.
하지만 이란의 네오나치들은 SUMKA가 무너지고나서도, 심지어 이슬람 혁명 이후에도 남아있다. 이들은 과거 자신들의 조상이 그랬듯 아랍인과 유대인을 미개한 ‘셈족’으로 비하하면서, 히틀러와 나치를 자신과 같은 아리아인을 위한 사상으로 여기며 온라인 포럼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이슬람 체제에 눌려 제대로 발언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만연한 나치 동조 정서를 고려하면 마냥 무시하기 힘든 문제다.
SUMKA가 중시했던 조로아스터교에서는 ‘Humata, Hukhta, Huvarshta’라는 3대 교리를 강조하는데, 각각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이라는 뜻이다. 물론 민족을 위하는 그들의 열정은 진심이었겠지만, 과연 그 열정에서 이어진 사상이, 그리고 만일 이들이 집권했을 때 이 세 덕목들을 실천했을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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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네요 ㄹㅇ
더 찾아보니까 모시자데 손주도 네오나치 포럼 운영한다고 하더라고요
http://hottt.kr/fCm2kr
세속화부터하던가해야지 이란 집권세력들 너무ㅈ국가운영을 돌대가리처럼함
ㄹㅇ
오 재밌네요 ㅋㅋㅋㅋㅋ 이란도 진짜 민주화?되면 다시 온갖 사상들 판칠거 같은데 재밌을듯!
이란도 지하당 세력이 좀 있는 거 같아서 지금 체제 무너지면 ㄹㅇ 어떻게 될지 모름
스탈린그라드랑 베를린 공방전 참여할 정도면 네오나치가 아니라 원조나치 아닌가요
네오나치x 올드나치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