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사회가 만든 법과 제도는 단지 피해를 막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음. 사회는 스스로가 ‘어떤 가치관 위에서 서 있는가’를 드러내기 위해 금기의 상징을 유지하려고 함. 현실의 일부를 가려서라도 도덕적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경우가 특히 그러하고

동성애가 과거에 병리로 여겨졌으나 현재 정상으로 인정된 것은, 순전히 사회적 인식과 통념의 변화에 따른 것임

(상당 부분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반하여) 동성애가 인간의 목적이라고 가정된 생식과 재생산에 기여하지 못 하니, 인구를 생산력의 원천으로 간주하는 국가가 생명정치적 접근을 통해 ‘정상성’의 기준을 규정하며 동성애를 타자화했고, 시간이 지나 질병으로 규정될 과학적 근거가 전무하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했음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동성애는 처음부터 정신질환으로 취급할 과학적 근거가 부재했다는 사실임. 어떤 개인이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 고통을 주지 않았고, 일상생활에 기능적인 손상이 발생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적 다양성을 정상성의 범주에 포함할지 말지를 두고 향방이 결정됐을 뿐임

현재 소아성애가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하고, 어떤 치료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음. 행위는 직접적인 사회적 위해를 미치니 범죄로 규정하고 배척해야 하더라도, 욕망은 개인의 내면에서 비의지적, 무의식적으로 작용할뿐더러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행위로 직결되지 않는 이상 잘못되었다고 규정할 근거는 ‘도덕적 불쾌감’ 이외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음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향을 선택한 게 아닌 것처럼, 소아성애자도 자신의 성향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임. 소아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아동을 해치는 것은 아니고, 기본적으로 도덕의 범위는 일말의 가능성이 아니라 실재적 행위에 국한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성애자를 배제하려는 경향은 ’정상성‘을 규정하는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음

어떤 현상이 병리적이라는 생물학적이거나 임상적인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역겨움’이라는 감정과 사회적 합의에만 의존하여 개인의 성향을 재단할 것이라면, 결국 수준의 차이일 뿐 동성애자는 아동성애와 동급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음. 다른 한편으로, 만약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한다면, 아동성애자가 스스로의 성향을 인식하고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임.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동성애에만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건 적어도 위선이거나, 기만이거나, 멍청한 거임

This is our purpose: to make as meaningful as possible this life that has been bestowed upon us; to live in such a way that we may be proud of ourselves; to act in such a way that some part of us lives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