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사회에서 말하는 자유를 누릴수가 있는이들은
크게 잡아도 상위 20%로 한정이 된다. 
나머지 계층에게 자유의 확대라는것은 그것이  민에게 의미를 한다는것은 소비의 자유를 의미를 한다고 보인다.
세계화 이후의 20%이하의 생활양식은 모두 비슷하게 바뀌었다. 
심지어 식문화 조차도 패스트푸드류가 주를 이룬다. 
전통이란 오늘날 일정 계급의 유흥에 불과하다. 
지식인이 만들어낸 서적들 또한 그 내용물은 공허하다. 
20%의 한정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근대초의 지식인의 의무란 사라진지가 오래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 또한 같은논리로 적용이 된다. 
예를 들어서 저소득층 전형에 대해서 옹호를 찬반의 입장 그 둘 모두 단순 감정적인 대응으로 이어진다.본질적인 데이터에 대한 탐구는 외면한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에서 입시철만 되면 논란인
대충 한부모 가족 전형 어쩌구가 모 대학의 다소 낮은 N-1등급 정도에 합격을 했다면 이는 아주 큰 논란이 되고 날먹의 요소가 된다. 

그러나 그 데이터가 말하는것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왜 평균 N등급인 합격선이 그들에겐 N-1등듭인가? 이를 알아챈 사람들이 특별한것이 아니다. 
다들 보았는데도 외면을 했을뿐이다. 
물론 어느정도 때가 무르익어서 이러한 질문이 사회 광범위적으로 퍼질수도 있다.그러나 단기적이다. 

과잉경쟁에 대한 논란들도 그러하다. 
본질적으로 과잉경쟁에 대한 이슈와 그에 대한 해결책은
사다리를 걷어서 차는 방식이다.이러한 해결책은 상위 20% 진입의 피로감과 국가적인 낭비 때문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존 상위 20%의 피로도 중요하게 작동을 한다.

한국은 역사상 민중이 스스로 인텔리 계층을 이겨본적이 없기에
종속적이고 노예적인 문화가 크게 퍼져있다.기술이면 전부다 깜빡 다 죽는다.이는 리대남들도 같은 노예문화를 공유한다. 
대표적으로 기초과학 혹은 기술문화에 대한 열망은 일부 대학의 취업확정인 계약학과로 이어진다.능력주의의 환경자본 요소를 생각을 해본다면 리대남 스스로 도련님과 아가씨들의 저점을 만들어준판이다. 

그렇기에 윤석열이 이겼어야만 했다.
많은것이 바뀌었을텐데. 
우리의 노예문화가 조금은 사라졌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