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과학은 기본적으로 ‘현상을 변수들로 분해하고, 그것들의 정량적인 관계를 공식화하며, 그것의 보편적 재현성을 추구하는’ 일련의 고유한 방향으로 발전함. 예를 들어서, 인간/자연, 자연/신성, 세속/신성, 정신/물질, 육체/영혼, 주체/객체, 이성/감정, 과학/신앙, 객관/주관 같은 건 철저히 고대 그리스와 중세 스콜라 철학,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따라 체계화되었을 뿐인데, 이건 서구 특수의 산물이라서 다른 문명권에선 관측되지 않음.
그래서 그게 서구적인 발전 경로(산업화/기계화)로 이어졌을 뿐임. 특별히 우열을 가릴 게 아님. 아메리카 전역의 약용식물 지식 체계는 현대 약리학과 일치하는 것이 매우 많고, 마야·아스텍·이누이트·아메리카 북서부 부족은 천문 관측 체계가 매우 정교하며, 북미 평원의 부족들은 생태적 지식과 계절 주기 활용에서 높은 복잡도를 보임. 이건 오히려 서구가 배워온 거임. 다만 서구는 세상을 단순화하는 방식이라는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갔을 뿐임.
서구-기독교적인 시공간관도 그러함. 예컨대 시간은 직선적이고 시작-끝의 구조를 가진다든지, 세계는 절대적인 공간 속에서 움직인다든지, 자연은 인간이 군림해야 할 대상이라든지 하는 것들임. 하지만 현대 과학에 따르면 시간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고, 공간은 절대적 배경이 아니라 물질·에너지와 상호작용하며 휘어지며, 양자역학은 ‘객체의 독립적 존재’를 부정하고 관계성·확률성·비결정성을 전면화함. 우주는 열린 동역학계에 가까움.
그리고 이런 사실들은 오히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세계관과 일치함. 인간·자연·영적 존재가 상호 작용하는 전체성(이를테면 북미의 Wakan Tanka)이라든지, 객체보다 관계가 기본이라든지, 현실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흐름과 과정에 의한다든지,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존재라든지,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주기와 순환을 가진다든지. 그저 다른 형태의 복잡성으로 나타났을 뿐인 거고.
처음에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 발표했을 때 기독교계에서 아인슈타인을 두고 기독교의 시공간관을 파괴하는 유대인 드립 쳤던 거랑 일맥상통함. 상대성 이론은 시간의 방향성을 부정하기 때문임. 오늘날에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임의적인 방식에 불과하다는 과학적 가설도 힘을 얻고 있고. 세상은 사변적이라는 사실이 기계적인 사고에는 안 어울려도 다른 사고에는 어울릴 수 있는 거임
그리고 현대 원주민 운동에서 과학기술을 부정하고 이전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주장은 없음. 자치, 자결을 요구할 뿐임. 비록 맥락이 다르긴 해도 Archeofuturism 같은 게 왜 있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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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고방식 때문에 나타난 게 1945년 이전의 제국주의고 1945년 이후의 글로벌리즘인데,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건 서양노들한테 부역하는 건지?
@Großkorea 아 오해함 ㅈㅅㅈㅅ
예리하군
ㄹㅇ;
남북전쟁과 인디언에 관한 책을 읽으면 바뀔 생각이군.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