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의 거두로는 율곡 이이를
남인의 사상적 시조로는 퇴계 이황을 들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인물 모두가 단군의 실재를 부정한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특히 당대 지성의 정점에 있었던 율곡은 직접 저술한 기자실기에서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조선을 정통으로 보는 관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는 오늘날 한국 사학계가 취하는 인식과는 정반대의 스탠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국호 자체가 단군조선이 아니라 기자조선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의 지배 엘리트들이 이러한 역사관을 가졌던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한민족의 기자 숭배는 생각보다 오래된 것이어서
고려 이전 삼국시대 때부터 등장한다
단군의 재평가는
인조반종 이후 가속화된 소중화주의의 반발로 이뤄진다
허목이란 인물에 의해서인데
알다시피 반송시열 진영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민족의 시조를 기자가 아닌 단군 왕검으로 추대하는
단군세가란 책을 편찬하였고
후에 위서 환단고기가 이 책을 많이 참고하기도 한다
부정해야했다는 것은 거꾸로 그러한 믿음이 언급이 필요할 만큼 이어져내려오기도 했다는 의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