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절차 이전에 “누가 결정에 참여하는지(구성원의 경계)”, “누가 책임을 지는지(책임의 귀속)”, “누가 피해와 이익을 감수하는지(결과의 내재성)”를 전제할 것이 강제됨. 이러한 조건들은 공동의 정치적 경계 안에서만 안정적으로 성립할 수 있으므로,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영토적이고 배타적인 정치 공동체를 전제함. 그러나 세계시민주의는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 함
만약 초국가적 체제가 존재하는 경우, 결정권은 상위 기구에 있으나, 정당성은 하위 민중에게서 나와야 하고, 책임은 양쪽 모두에게 희석되는 구조이므로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음
예를 들면 유럽연합의 경우가 있는데, 정책 통합 수준은 높지만, 정치적 연대와 정체성은 낮고, 선거를 통해 실질적으로 정책이 변경될 가능성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정책 선택에 따른 명확한 책임 추적과 교체 가능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명제에 정면으로 반함. 이는 단순히 관료주의라는 틀로 설명 불가능한 영역임
완전하거나 준완전한 국가 간 경제통합을 이루려면 국가 단위의 의사결정을 넘어선 통화 정책의 정치적 독립, 재정 규율의 강제, 노동 및 자본 이동의 비정치화 등이 요구되는데, 이러면 비선출 기구, 규칙 기반 통치, 사법화된 정치가 확대될 수밖에 없음
국민국가 내부에서 나타나는 외부 적대 담론을 단순히 비이성적 민족주의로 환원하는 것도 문제적임. 민주주의는 내부 연대를 필요로 하고, 연대는 경계 설정을 수반하며, 경계는 필연적으로 외부를 상정하니 말임. 이 매커니즘은 민주주의의 집합적 정체성에 대한 자기방어라는 측면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
자유주의라는 공통의 규범에 의해 ‘이론적으로는’ 합치 가능하더라도, 실천적 결론의 수준, 특히 정책 결정과 책임 구조의 차원에서는 제로섬에 가까운 긴장 관계에 놓여있고,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는 건 민주주의 외부의 현상이 아니라 내부의 현상에 가깝다고 생각함.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정치적 자기결정, 세계시민주의가 요구하는 경계 해체는 동시에 극대화될 수 없고, 단지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만 이 문제의식이 의도적으로 은폐되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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