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은 동거 관계, 혈연이 아닌 공동 생활 단위, 혹은 특정한 상호 부양 관계가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면, 국가는 이를 방치하기보다는 제한적으로 포섭해 관리하는 편이 나음. 하지만 이게 꼭 결혼의 법적 정의를 확장하거나, 결혼과 무관한 관계를 결혼과 유사한 위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음. 왜냐하면 결혼은 단순한 사적 계약이 아니라, 국가의 인구·세대·재생산 질서를 구성하는 핵심 제도고, 언제나 혼인·출산·상속과 통합된 상태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임

그렇다면 시민결합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방향이 좋다고 생각함. 동성결혼의 과도기적 단계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존립할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는 거임. 예를 들면 시민결합은 결혼과 “다르다”는 점이 법문과 행정 실무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어야 하고, 명칭, 등록 방식, 상징, 절차 모두에서 혼인과 구별되어야 하며, 혼인에 준하는 사회적 승인이나 의례는 부여되지 않아야 함. 이는 시민결합이 결혼으로 가는 단계나 대안으로 인식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임

그리고 권리 범위를 극단적으로 제한해야 함. 예를 들면 상호 의료 결정권, 공동 거주에 따른 임대·주거 안정, 재산 관리 및 상속(단, 유언이 있을 때만), 특정 행정 절차에서의 대리권 등을 보장할 수는 있겠지만, 공동 입양, 가족 단위 세제 혜택, 출산·양육과 연동된 국가 지원, “가족”으로서의 헌법적 지위와 같은 영역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함. 왜냐하면 시민결합은 가족의 대체재가 아니라 생활의 편의를 조정하는 계약적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임

이 제도는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과 무관하게,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공동 생활 관계를 대상으로 한 중립적 행정 범주로 설정되어야 함. 다시 말해, 제도가 개인의 정체성을 승인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며, 오직 법적 공백을 메우는 기능만 수행해야 한다는 거임. 이를 통해 제도는 조용히 도입되고, 조용히 운영되며, 권리의 확대를 요구하는 정치적 동학을 차단해야 함

그리고, 시민결합은 가족의 대체물이 아니라, 가족이 아닌 관계를 가족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에, 결합의 형태는 오히려 매우 포괄적으로 정의될 수 있음. 두 명이든, 세 명 이상이든, 혈연이 맞든 아니든, 일정 기간 공동 생활을 유지하고 상호 책임에 합의했다면 등록은 가능하지만, 그 효과는 철저히 제한되어야 함. 국가는 그 관계를 “정상화”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단지 분쟁과 공백을 예방하기 위해 기록하고 규정할 뿐이기 때문

이를 통해 형태를 묻지 않고 동일한 최소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행정적 안정성과 법적 명확성을 확보하고 이들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