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성리학을 국시로 삼고
세종대왕을 포함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한차례 떠들썩하게 주춧돌을 세운 뒤
어느정도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틀이 잡히자
(정확히는 왕의 의지로만 국가가 돌아가지 않자)
조광조라는 기폭제가 장렬하게 산화한 후
조선 정치에는 씹선비들이 등장하며
이들이 취했던 모멘트 중 크게 주목할 것은 2가지다
첫번째 흐름은 퇴계 이황을 시작으로
두번째 흐름은 우암 송시열을 시작으로
구체적인 역사를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 선에서
상당히 비약하고 러프하게 말해보자면
퇴계를 추종한 자들은
퇴계의 실제 복잡한 철학론과는 별개로
왕을 중시했고 왕의 의지를 높게 쳤음
리를 왕에다 가져다 쓴건데
일종의 삼위일체론이라고 보면 됨
그 원리로 교황이 어느정도 지 마음대로 움직이듯이 조선의 왕도 그럴 수 있다는거다
우암을 추종한 자들은
원래 율곡에서 온 것인데
율곡 때는 힘을 못쓰고
나중에 병자호란 터지고 힘을 쓰기 시작함
이때 등장한게 바로 우암임
명나라가 망하고 기존의 천하관이 박살나니
소중화해서 조선을 성리학 안으로 피신시킴
성리학이 조선의 방어막이 되기 위해서는
이씨왕조의 통치사상이 아니라
말그대로 성리학적 세계관이 조선백성 모두에게 작동해야 했음
그래서 여기부터는 좀 더 교조적으로 돌아가면서
신하의 목소리가 강력해지고 왕의 자율성이 줄어듦
그러나 동시에 왕권은 세짐
왕으로서 개인의 힘이 줄어드는 대신 왕권은 세짐
성리학적 원리가 작동되기 때문임
예를 들어 지금 한국을 생각해보셈
6공 초기와 지금을 생각해보셈
분명 대통령 개인의 권력은 코렁탕 보내던 시절보다 약해졋음
근데 그 여당이 주도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은 예전보다 훨씬 강력함
즉 권력 주체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힘이 6공초기보다 세졌다는 얘기임
우리가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
이 땅 위에서 벌어졌던 정치적 전통을 무시할 순 없음
그리고 그 전통 중에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는 조선시대를 발췌해보자면
퇴계의 전략과
우암의 전략이 눈에 띄는거임
이것도 역시 비약과 일반화를 세게 해보자면
퇴계의 전략을 자강이라고 치면
우암의 전략은 탐색임
자강은 힘과 에너지를 통해 구조를 만드는 것이며
탐색은 정보와 지식을 통해 구조를 연결하는 것임
퇴계의 리는 한국에 있고
우암의 리는 세계에 있음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
여전히 큰 두 나라가 양옆에 있음
여기서 취해야 할 전략은 어떤 것임?
대한민국이 수출주도경제를 취한 까닭은?
송가가 글로벌리즘이고 퇴계가 내셔널리즘이라는데 엄밀히 보면 순수 내셔널리즘은 무속이고 퇴계는 글로벌 내셔널 그 중간임 대외적으로는 송가를 쓸 수도 있다는 게 여기서 나옴 박정희가 김종필을 쓴 것도 마찬가지 송가는 대외용으로 국내 정치를 하려 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임
왜 이게 되냐 경상 실용주의는 실용으로 필요시 다른 사상도 수용함 경상은 왕관 3개 만드는게 된다고 얘기했음 반면 송가는 그게 안되는 리버스 파시즘이기 때문에 통치로 부적절 함 그러니 나라 망한거 이론 이상에 불과한데 현실에 강박적으로 내려오니까 망하는 거임 그러니 일 못하는 거임
왕 개인의 의지만 있으면 필요(실용)에 따라 갖다쓸 수 있다 이게 왕 예외주의이자 칼슈미트랑도 연결되며 그러니 퇴계는 현실에서 필요(실용)에 따라 대외적으로 송가도 포함할 수 있는데 송가는 퇴계를 포함 못하는 이론에 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