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
호주계 미국인 사회학자로, 맑스주의자로서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를 지원하고, 농업협동조합을 연구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고 함.
이후 포춘지에 취직, 산업 분석가로 활동하던 중 주식 시장을 분석하다 어느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 경영학계는 하버드를 중심으로 한 기업 역사학 수준에 머무르거나, 테일러주의를 공학을 넘어서 인간에까지 적용하는 응용산업공학 정도의 취급을 받았음.
주식시장 역시 활황인 것과는 별개로 정교한 분석법이 발달하지 않았고, 주가 흐름에 의존하는 직감에 가까운 기술적 분석 정도만이 있었음.(오히려 일본 선물시장이 19세기에 이미 봉 차트를 창안하고 현대 기술적 분석에서 널리 쓰이는 일목균형표를 사용하는 등 더 선진적인 편이었음)
그런 와중에 존스는 기술적 분석에서 사용하는 자료인 거래량, 주가 등을 수학적으로 분석, 선물, 주식, 옵션 거래를 조합하여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롱숏 거래 전략을 최초로 창안함.
“수학적, 과학적 분석과 이에 바탕한 계획을 통해 이익을 실현한다”는 존스의 기본 발상은 어찌보면 맑스-레닌주의와도 연결됨.
존스가 살았던 1940년대 자본주의 경제학계는 인간의 심리 경향이 거시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중화하기 위해 정부 통제로 시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케인즈주의와 개인은 결코 시장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으며, 오직 시장에 맡기는 것 만이 최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오스트리아 학파로 나뉘었음.
그러나 이와 달리 소련 경제학계는 수학적 분석으로 최적의 생산과 분배를 달성할 수 있다는 수리경제학이 강세를 띄었고,이를 바탕으로 5개년 계획을 수립,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룸.
소련의 수리경제학파가 창안한 최적화 이론과 최적제어론은 2차대전기 미군을 통해 OR(Operational Research)로 응용되어 이후 산업공학과 경영과학의 기초가 되었고, 이후에는 거시경제학과 금융공학에도 활용되게 됨. 어찌보면 지금 월가가 수학자들을 미친듯이 뽑아제끼는 것이 소련 경제학자들의 공이라고도 볼 수 있음
맑스주의자였고 스페인 공화파를 지지했던 당대의 지식인 존스가 이런 소련 경제학의 관점을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고, 아마 비슷하게 “과학의 당찬 머리를 모아 빈틈없는 전략을 세워” 자본을 등쳐먹겠다는 생각 아니었을까?
존스는 이러한 전략이 확실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 하에 소수의 지인에게 투자를 얻어서 자금을 모으고, 돈을 왕창 빌려서 주식을 산 후 비싸게 팔아 돈을 갚는 레버리지 전략과 주가 하락에 대비해 주식을 빌려서 판 후 싸게 사들여 주식으로 갚는 공매도 전략에 분산투자하는, 지금은 투자론 개론 시간에나 배울 법한 단순한 전략으로 헤지 펀드를 시작함.
여기에 주가 변동성을 전체 시장, 산업, 기업별로 나누어 분석하고, 전체 시장 변동율 대비 산업의 변동율 비율을 이용해 어느 산업분야가 주가가 요동치는지 (=한탕하기 좋은지)를 분석해서 전략의 수익울을 더 높임.
여기서 끝인가? 아니, 우리의 존스는 인사에 있어서도 맑스주의를 도입했으니, 직원들에게 거래 전략에 따른 성과급을 제공하고 직원이 자기 돈을 자기가 관리하는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하여 ‘능력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분배하는’ 낮은 단계의 사회주의를 구현했다!
이러한 경영 혁신으로 존스의 펀드는 무려 4800%의 수익을 내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신화는 한동안 비밀에 붙여졌다.
어찌보면 당연한게, 정보가 생명인 주식시장에서 전략이 들통나기만 해도 수익에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으니까.
거기다 존스는 금융당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소수의 지인만을 투자자로 끌어들이고, 유한회사로 펀드를 운영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의 상당수는 살인적인 맨해튼 집값에 보탰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주들의 횡포는…따흐흑)
그러나 비밀이 오래 갈수는 없는지라, 펀드 직원들이 독립해서 회사를 차리고, 이를 눈치챈 포춘지가 헤지펀드에 대해 보도하면서 그의 전략이 누설되고, 자연히 그의 헤지펀드도 사양길에 접어든다.
존스는 이후 금융계를 떠나 미국 평화봉사단에 참여,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과거를 뒤로 하고 미제의 개발도상국 종속에 부역하다 세상을 뜬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헤지펀드가 금융계를 넘어 실물경제를 위협하고, 자본주의의 핵심부가 된 지금, 우리는 사회주의자로서 자본주의의 꽃의 아버지가 된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꿈꾸었던 과학과 계획을 통해 자본주의를 등쳐먹는 전략은 이제 자본주의 유지의 도구이자 그 모순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되고 말았다.
가난한 개미들이 자신이 자본주의를 등쳐먹고자 만든 헤지펀드에 대항하고자 공매도를 저지하는 모습을 보며, 저승(지옥인지 천국인지는 모르겠다)의 알프레드 존스는 무엇을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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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보고 또 다른 챗지피티와의 논쟁을 통해 금융업이 일부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효과‘ 자체는 있다는 결론을 내림(다르게 말해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저지하는)
따라서 사회주의자로써 금융업의 본산 미제가 망하길 기도해야하는것
이건 내가 또 다른 글에서 설명할것
Based. - dc App
똥글만쓰는줄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