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공지능(AI)은 단순한 연구 대상이나 보조 기술의 수준을 넘어, 생산·유통·행정·의사결정 등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으며, 그 속도 또한 과거의 어떤 기술 혁신보다 빠르다. 이에 따라 대규모 기술적 실업 가능성이 점점 더 현실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제(Universal Basic Income)가 가장 유력한 해법 중 하나로 논의되고 있다. UBI 지지자들은 자본주의 시장 질서가 인간의 소비 능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실업이 발생할 경우 국가와 기업은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소득 보장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일부 지지자들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인류가 UBI를 기반으로 자유로운 자기실현에 몰두하고, 기술 발전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생물학적 한계—심지어 죽음마저—극복하는 유토피아적 미래를 상상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결정적인 전제를 간과한다. 그것은 국가 간 경쟁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문명의 관점에서 국가는 상호 협력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군사력·경제력·기술력·생산성 측면에서 끊임없이 비교·경쟁되는 단위이기도 하다. 이 맥락에서 국가와 기업의 입장에서 AI로 인해 생산 과정에서 배제된 인구를 장기간 부양하는 것은, 동일한 자원과 에너지를 기술 고도화, 인프라 확충, 군사·정보 역량 강화 등 더 직접적인 경쟁력 제고 수단에 투입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즉, UBI는 인도적·윤리적 제안일 수는 있으나, 경쟁 논리의 관점에서는 비생산적 비용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일부 국가가 인도적, 윤리적 입장을 고려해 대규모 UBI를 유지하며 경제성장과 기술적 효율성의 하락을 감수하는 반면, 다른 국가가 인구 부양을 최소화하고 AI 중심의 생산성과 경제성장 극대화를 추구한다면, 장기적으로 후자는 전자에 비해 군사적·경제적·외교적 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되며, 결과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는 인간 복지를 상대적으로 덜 고려하고 기술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국가 모델이 더 “성공적인” 사례로 간주될 것이다. 이는 개별 국가의 도덕적 타락이나 악의적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경쟁 환경에서 작동하는 일종의 구조적 선택 압력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UBI 옹호자들은 흔히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 “AI에는 의식과 욕망이 없으므로, 인간 소비자가 사라진다면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반론 역시 인간중심적 경제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자연계에서 곰팡이, 바이러스, 세균과 같은 존재들은 의식이나 욕망을 갖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를 흡수하고 자기증식하며 영역을 확장한다. 마찬가지로 AI 역시 의식과 욕망이 없어도, 다른 AI가 생산한 재화와 에너지를 입력으로 삼아 자기증식적 생산 과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계가 생산하고 기계가 소비하는 경제”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데이터, 연산 자원, 에너지, 하드웨어를 매개로 한 자기참조적 순환 구조가 형성된다면, 인간의 생존과 소비는 더 이상 경제 성장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 이때 인간은 경제 성장의 주체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의 관점에서 유지 비용이 발생하는 변수로 전락할 위험에 놓인다.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이 극단화될수록, 인간 생존과 복지를 고려하는 정책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UBI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혹은 기술적으로 가능한가에 있지 않다. 문제는 AI가 주도하는 생산 체계와 국가/기업 간 경쟁 구조가 결합될 때, 인간의 생존과 복지가 더 이상 체제 유지에 필수적이지 않게 되는 조건이 출현한다는 점이다. 이 조건하에서 UBI는 장기적, 보편적 해법이 되기보다는, 국가와 기업 입장에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언제든지 축소·폐기할 수 있는 임시적 완충 장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이, 기술적 실업과 AI 시대의 인간 미래에 대한 논의는 낙관적 분배 설계가 아니라, 기술 진보와 경제성장이 인간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리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반기술(Anti-Tech)적, 원시주의적 성찰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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