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기원전 3만년 전부터 인간이 거주한 땅이며, 쿠시 왕조, 알로디아 왕국, 마쿠리아 왕국 등 여러 번영했던 국가들의 기원이었지만 지금은 3번째 내전이라는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다. 수단이 과거의 영광을 잃고 북아프리카의 최빈국이자 대표적 실패국가로 전락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수단의 근현대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단은 아프리카에서도 각 지역별 차이가 매우 심한 편이었다. 북부는 15세기 경까지 기독교 소왕국들이 존재하다가 이후 아랍화•이슬람화가 진행되면서 범아랍권에 편입된 반면, 남부 지역에서는 누에르족, 딩카족과 같은 부족민들이 반농반목을 하며 살아가는 상황이었다.
또한, 남부와 북부 사이에 ‘Suud’라 하는 습지대가 있어서 양쪽 간의 교류도 상당히 제약됐었다. 하지만 상황은 19세기에 무함마드 알리 치하의 이집트가 남하를 시작하며 급변했다.
당시 이집트의 통치자였던 무함마드 알리는 앞으로의 확장의 원동력을 보충하고자 수단의 금과 흑인노예들을 얻고자 했다. 또한 1811년 맘루크 숙청 이후 수단으로 도망친 맘루크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수단 원정을 추진하게 되는 또다른 이유가 되었다. 그 결과 1820년 경부터 이집트인들은 분열되어 있는 수단을 천천히 정복했고, 1860년 경에는 현재 수단과 남수단 영토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후 정복된 영토들은 남북부 모두 이집트에 편입됐고, 이집트가 영국의 보호령이 되면서 수단 역시 20세기부터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 통치를 받게 된다 .
문제는 여기서부터인데, 영국이 수단의 남부와 북부를 철저히 분리시켜 통치했다는 것이다. 영국 식민정부는 남부의 아랍화•이슬람화를 억제하는 동시에 기독교 선교사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또한, 현지 지배층으로 기능하던 아랍 상인들을 추방시키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북부와의 경제적 연계마저 단절시켰다. 이러한 남부 고립정책으로 인해 남부와 북부간의 경제격차가 확대되었고, 정체성 차이 역시 매우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탈식민주의의 바람이 불자, 수단 역시 독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석유 등 자원이 풍부하나 수십년간의 남부의 소외와 고립으로 인해 낙후된 남부가 개별적인 국가로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고, 그 결과 영국은 졸속으로 남부와 북부를 통합시킨 후 1956년에 철수했다. 독립 직후 수단은 수십년간 누적된 문제로 인해 바로 남부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여느 아프리카 국가처럼 독립 직후 군부쿠데타가 발생하면서 민정도 종말을 고하게 됐다.
정권을 잡은 이브라힘 아부드 장군은 그의 군정에 대한 반대파가 많았던 남부를 제압하고자 아랍어 사용을 강제하는 등 아랍화•이슬람화 정책을 강행했고, 결국 이에 대한 반발로 실각했다.
이후 정권을 잡은 아랍사회주의 성향의 가파르 니메이리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중재 하에 남부 반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자치권을 약속했고, 주요 산업 국유화 및 “아랍의 빵바구니“를 목표로 한 농업 부문에의 막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발전을 꾀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로 인해 농업 발전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고, 그와 더불어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인해 수단은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되었다. 결국 1978년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가혹한 긴축정책을 강요받는 등 경제문제가 점차 심화되었으며 1980년부터 1981년에 기근까지 일어나면서 수단의 경제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한 니메이리가 권력유지를 위해 손을 잡은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이슬람주의자들이었다.
1983년, 이슬람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고자 니메이리는 수단 전역에 사지절단형을 도입하는 등 샤리아 법령을 적용할 것을 선포했다. 문제는 이것이 기독교도가 다수인 남수단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같은 해에 자신의 주요 공적 중 하나였던 아디스아바바 협정을 파기하고 자치구역도 폐지하자 이 상황을 묵과할 수 없던 남수단인들은 다시 한번 반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을 자초하면서까지 권력을 붙잡고자 했던 니메이리 정권은 이슬람주의 정책으로 인한 경기 악화까지 겹치면서 1985년 쿠데타로 허무하게 무너졌지만, 수단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샤리아 적용을 북부에만 국한시키는 등 남부와 협상을 하고자 한 민정을 오마르 알 바시르가 1989년에 전복시키면서 다시 군정 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알 바시르는 니메이리의 이슬람주의 정책보다 더한 강경책을 내놓았다. 그는 공공기관 전반에 대한 대숙청을 실시했고, 무슬림 형제단과 대놓고 협력하면서 다시 수단 전체에 대해 샤리아를 적용했으며, 한때는 빈라덴과 같은 지하디스트들을 숨겨주기도 했다. 또한 남수단 반군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기아를 유발하고 종교 박해를 일삼는 등 수많은 전쟁범죄를 자행해 190만명의 죽음을 초래했다. 또한 남수단 외에도 다르푸르 지역에서 20만명을 학살하는 등 여러 악행들을 저질렀다.
하지만 국제사회로부터의 압박과 제재가 점차 심화되자 알 바시르는 2005년 어쩔 수 없이 남수단 지역과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협정에 따라 2011년, 그렇게 붙잡으려 했던 남수단이 독립하게 되었다.
알바시르는 이후에도 권력을 유지했지만, 이전 석유 생산량 중 3/4를 제공했던 남수단의 이탈로 인해 수단의 경제상황은 더욱더 악화되었고, 결국 2019년 민중 집회와 쿠데타로 축출되면서 그의 학정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군부 내의 내분으로 인해 2023년 한 번 더 내전이 일어났고, 정부군과 신속지원군 모두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등 아직까지도 수단에서의 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RSF 측이 엘 파셰르 시를 함락시킨 후 대량학살을 자행하면서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는 일도 있었다.
수단은 오랜시간동안 나일강의 풍요를 누려온 지역이었으며, 근대 시대에도 큰 잠재력을 지닌 나라였다. 하지만 “고통에게 자리가 없다고 말하면 고통은 스스로 의자를 가져왔다고 말한다“라는 수단의 속담처럼, 이집트와 영국 등 외세의 착취와 지도부의 무능과 같은 수많은 악재가 겹치면서 현재는 아프리카의 대표적 파탄 국가들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슬프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수단이 나일강 유역을 호령했던 조상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되는 일은 어려워보인다.
자료 출처:
Sudan, a country study 144p-147p
맘루크가 수단으로 튄건 첨 알았네요!!! 수단은 대부분의 아랍권 국가들과 달리 군부가 이슬람주의를 적극 수용한게 참 신기한듯요 ㅋㅋㅋㅋ
@라파헤 니메이리가 이슬람주의 안하고 계속 세속주의 밀고 나갔으면 분단은 안 됐을수도 있는데 참 안타깝죠..
민족 구성에 따라 국경이 정해졌다면 참사는 없었을 것을…
그것도 그렇고 통일 수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여러 기회들을 다 스스로 날려먹은 게 큰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