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암?


뇌절을 한다는 것임


이색히가 1절 2절하면 됐지 선을 넘는 것임


그래서 결국 균형을 무너뜨림


이게 왜 그러냐면


기호지세라 하여


정치의 생리가 그러함






어떤 정치 단체가 있다하자.


이들이 목적을 달성하면 그걸 멈춰야하는데


문제는 이들의 시작과 구심점은 어떤 원리주의로부터 시작됐다는거.


그 원리주의로부터 빠져나오면 정치에서 소외되어버리는게 문제.


그래서 그 원리주의가 현실을 흔들기 시작하면 망하게 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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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세상에는 그러한 특수성이 전통으로 살아남는 경우도 많음



하지만 뿔의 길이는 결국 한정되어 있다












우암이 북벌론을 주장했다는 것은 유명하지


하지만 실상은 이러함




출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9/2018091900079.html

[박종인의 땅의 歷史] 송시열이 北伐을 추진했다고?박종인의 땅의 歷史 송시열이 北伐을 추진했다고 137 북벌을 거부한 송시열과 화양동 만동묘www.chosun.com






효종이 이리 말했다.


"예전의 칸(汗· 청 황제)은 인재가 많았는데 지금은 용렬하며, 점점 무사(武事)를 폐하고 중국의 일을 본받고 있다.

나는 그 땅에 오래 있었기에 형세 또한 잘 안다. 10만 포병을 기르면 중원의 영웅들이 호응할 것이다. 칸은 주색(酒色)에도 깊이 빠져 있지만

나는 주색을 끊고 경계하여 늘 정신이 맑고 몸도 건강해졌으니, 10년을 기다릴 수 있다."


구체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북벌 계획에 송시열이 이렇게 답했다.


"제왕은 반드시 자신을 수양하고 가정을 다스린 뒤에야 법도와 기강을 세워 두서가 있게 일을 했나이다(帝王 必先修己刑家 然後乃可以立經陳紀)."


한마디로 수양부터 하라는 말이었다.


거듭 구체적인 방안을 묻는 효종에게 송시열은 똑같이 거듭해서 이렇게 답했다.


"격물치지와 성의를 하고 난 뒤에도 정심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성인이 쓸데없는 말로 후세 사람들을 속였을 리가 없습니다(聖人必不爲此無用之言)."


이른바 성리학에 나오는 자기 수양론을 송시열은 끝없이 나열했다. 결국 효종이 이렇게 말했다.


"경의 뜻은 내 뜻과 다르오(卿意與予不同矣)."


이게 북벌 계책을 묻고 답하는 비밀 독대의 전부였다.









송시열이 속한 서인 반대파인 남인 남하정이 쓴 '동소만록(桐巢漫錄)'에는 이런 일화가 적혀 있다.


송시열이 정승 정태화에게 와서 북벌을 도모할 때라고 했다.


그러자 정태화가 당신이 천하에 대의를 펼치라고 답하고 말았다. 그가 가고 아들이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정태화는


"나한테 북벌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기는 빠져나가려고 왔던 것인데 내가 어찌 속아 넘어가겠는가"라고 답했다.


당대의 평도, 대화를 한 군주도 송시열 속뜻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북벌은 없었다












조선시대에서 우암만큼 세련되고 현대적인 정치인을 본 적이 없음


정치란 저렇게 WWE를 하면서 서로 명분을 챙겨주면서 진짜 할 수 있는 선택을 탐색하는 과정임


인사치레이므로 자원과 인재를 아낄 수 있단 말임


뿔이 생기기 전에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단말임


문제는 저.. 정태화 같은 남인들이


우암의 큰 뜻을 모르고 UFC를 걸면서 


거기에 숙종 같은 멍청한 임금이 거기에 호응하면서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





그래도 결국 우암의 큰 그림으로


리가 조선 백성 전역으로 전달되어


한민족이 리의 민족이 되어버렸지


이를 테면 성리학은 우암의 사후보장까지 톡톡히 해줬던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