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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이튿날에 필기시험을 보러 안산면허시험장을 찾았다

해도 넘어갔으니 좀 한산해졌겠거니 하고 갔다가 여전히 토나오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진이 빠졌는데 대기번호를 기다리며 인파 속의 면면을 보니 오늘날 우리나라의 단면을 보는듯하였다

우선 내또래는커녕 30대도 말린멸치 속 꼴뚜기마냥 드물었는데(이것은 면허갱신 대상이 중년 이상이고 대부분 청년들은 현명하게 사람 몰리기 전에 방문하여 그런 것 같다) 눈에 띄는 젊은이들은 모두 중국, 베트남, 러시아, 중앙아, 흑인들이었다

그중 한 흑인의 서류를 훔쳐보았는데 이름에 응(ng), 투(tu)이런 음절들투성이인것을 보니 서구 잡종은 아닌듯하고 아프리카 OG같아서 정감이 갔다

또 구소련계열 청년들은 죄다 크리스마스 엘프처럼 꼭대기 뾰족하게 비니를 쓰고다니는 것이 볼만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히려 아직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인들이다

인파에 떠밀리며 스쳐지나가는 얼굴들을 들여다보니 별안간 구한말 기록사진에서 본 면면들이 겹쳐보이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백수십년 전의 기록사진에서, 수백년 전의 민속화에서 우리네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건물은 백년만 지나도 귀하다 하고 수백년 된 그림이나 도자기는 손도 못 대게 하는데 천년을 이 땅에 뿌리박고 이어진 핏줄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유산일까

그러다 지금과 같은 대량이민과 혼혈화 추세가 계속되면 두어 세대 뒤에는 이런 얼굴들도 자취를 감추겠다는 데 생각이 미쳐 서글퍼졌다

돌아와서 가족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 민족의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난 것 아니겠냐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못난이 민족에게 미래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