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 Theodore John Kaczynski
© 2024 Aram Han. Translation rights reserved.
— 자끄 엘륄(Jacques Ellul)1
체제는 오늘날의 예비 혁명가와 반항아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있다. 그 속임수는 수학적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해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라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무엇이 체제가 아닌 것인지 확실히 하자. 조지 W. 부시와 그의 참모들과 관료들, 시위자들을 학대하는 경찰관들, 다국적 기업의 CEO들, 그리고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사악한 생명체를 만들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들은 체제가 아니다.
이 사람들은 그저 체제의 하수인들일 뿐이며, 그들 자체는 체제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이들의 개인적인 가치관, 태도, 신념, 행동은 체제의 필요와 충돌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체제는 사유재산권을 보호하지만, CEO, 경찰관, 과학자, 정치인들은 가끔씩 도둑질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도둑질은, 물리적 실체가 있는 물건을 도둑질 하는 것 뿐만 아니라, 탈세, 뇌물, 그 외 다른 형태의 부정부패까지 의미한다. 하지만 CEO, 경찰관, 과학자, 정치인들이 가끔씩 도둑질을 한다고 해서 도둑질이 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찰관이나 정치인이 도둑질을 할 때, 그들은 법률과 사유재산권을 짓밟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도둑질을 할 때 조차도 그들은 겉으로는 법률과 사유재산권을 지지함으로써 체제의 하수인으로서 복무한다. 정치인, 경찰관, CEO가 개인으로서 저지르는 도둑질, 뇌물, 부정행위는 체제의 일부가 아니라, 체제가 앓는 질병이다. 도둑질이 줄어들 수록, 체제는 더욱 견고해진다. 그래서 가끔씩 편의를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체제의 하수인들과 옹호자들 조차도 겉으로는 체제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비록 경찰은 체제의 집행자이지만, 경찰 폭력은 체제의 일부가 아니다. 경찰관들이 용의자를 떡이 되도록 구타할 때, 그들은 체제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경찰관들은 그저 자신의 분노와 적개심을 분출하고 있을 뿐이다. 체제의 목적은 폭력이나 화풀이가 아니다. 체제가 경찰관들에게 원하는 것은 혼란, 폭력, 부정적 인상을 최소화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제의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경찰관은 절대 화내지 않고, 절대 불필요한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대중을 통제할 때 물리적 수단보다는 비물리적 수단을 선호하는 경찰관이다.
경찰 폭력은 체제의 일부가 아니라, 체제가 앓는 질병일 뿐이다. 그 증거는 언론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주류 언론은 대부분 경찰 폭력을 비난한다. 물론 주류 언론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권력자들이 체제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반영한다.
앞서 언급한 도둑질, 부패, 경찰 폭력에 관한 분석은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빈곤, 노동착취에도 적용된다. 이 모든 것은 체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흑인들이 차별당하고, 소외당하면, 더 많은 흑인들이 범죄의 길에 빠지거나, 스스로를 체제에 쓸모있는 사람으로 만들 교육의 기회를 포기할 것이다. 현대 기술은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망가뜨렸다. 현대적 교통 수단 때문에 서로 다른 인종, 국적, 문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서 일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인종, 민족, 종교, 성지향 등을 이유로 서로를 미워한다면, 체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제시 헬름스(Jesse Helms) 2 같은 구닥다리 유물들을 제외하면, 체제의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와 언론은 우리에게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등이 제거되어야할 사회악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체제의 일부 지도자, 정치인, 과학자, CEO들이 개인적으로는 여성은 집안일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거나, 동성애와 다른 인종 사이의 결혼을 혐오하는 것은 분명하다. 설령 대다수가 그렇게 믿는다고 할지라도, 일부 지도자들이 도둑질을 한다고 해서 도둑질이 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닌 것 처럼, 인종차별, 성차별, 그리고 동성애혐오가 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체제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과 사유재산권을 장려하는 것처럼, 같은 이유로 인종 차별 및 기타 차별을 막아야만 한다. 그래서 개별 엘리트들의 사적인 일탈에도 불구하고, 체제는 기본적으로 차별과 희생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증거로 주류 언론의 태도를 살펴보라. 일부 대담하고 반동적인 논객들의 소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언론 선전은 인종평등, 성평등, 동성애, 타 인종 사이의 결혼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3
체제는 온순하고, 비폭력적이고, 길들여지고, 유순하고, 순종적인 인구가 필요하다. 사회적 기계의 질서정연한 작동을 방해할 수 있는 어떠한 갈등이나 혼란도 피해야 한다. 인종, 민족, 종교 및 기타 집단들 사이의 갈등을 억제하는 것 외에도 남성성, 공격적 충동, 폭력성 등 혼란이나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경향을 억압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인종적, 민족적 적대감은 서서히 사라지지만, 남성성, 공격적 충동, 폭력성은 쉽게 억제되지 않으며, 성 정체성에 대한 태도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체제는 이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4
2. 체제는 어떻게 반항심을 악용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 촘촘한 규칙과 규제의 그물망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기업, 정부, 노동조합, 대학, 교회, 정당과 같은 대규모 조직들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무기력하게 되었다. 체제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예속, 무기력감 및 기타 치욕의 결과로 광범위한 좌절감이 생겨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체제가 교활한 속임수를 쓰는데, 바로 반란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좌절하는 근본적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반항에는 방향성이 없다. 반항하고 싶다는 것은 알지만, 무엇에 반항하고 싶은지는 모른다. 다행히도 체제는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여성 문제, 빈곤, 노동착취 등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반항할 수 있는 표준적이고 정형화된 불만 목록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 수많은 예비 반항아들이 미끼를 문다. 인종차별, 성차별 등에 맞서 싸우면서 그들은 체제를 도와주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이 체제에 저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첫째, 1950년대에는 체제가 아직 흑인, 여성,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대의들은 실제로 저항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대의들은 저항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전통의 문제, 즉 각각의 반항아 세대들이 이전 반항아 세대를 모방한 덕분에 오늘날까지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둘째, 앞서 지적했듯이 체제가 요구하는 사회적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상당수 존재하며, 심지어 이 사람들이 경찰관, 판사, 정치인 등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사람들은 예비 반항아들의 표적이 된다. 러시 림보(Rush Limbaugh)(역자 주: 러시 림보는 미국의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이자 보수 논객이다. “페미나치(Feminazi)”라는 용어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같은 논객들은 활동가들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이 과정을 돕는다. 이 논객들이 활동가들 때문에 분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이 실제로 저항하고 있다는 활동가들의 착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셋째, 체제가 요구하는 사회적 변화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대다수 체제의 지도자들을 상대로도 예비 반항아들은 지도자들이 신중하게 제안한 해결책보다 더 급진적 해결책을 주장하고,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 과장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지속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흑인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하며,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에 격분하는 경우가 많다. 그 비판이 아무리 신중하고 합리적이어도 상관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 활동가들은 자신이 체제에 저항하고 있다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터무니없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등에 반대하는 선동은 정치적 부정부패에 반대하는 선동과 마찬가지로 체제에 대한 반란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부정부패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체제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집행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인들이 체제의 규칙에 순종하도록 만들고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체제의 집행자 역할을 한다. 이들은 체제에 문제를 일으키는 비정상적인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를 억제하는 것을 도와준다.
하지만 활동가들이 체제의 집행자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체제와 그 기관을 향한 대중의 분노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 체제를 보호하는 일종의 피뢰침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여성을 가정보다는 직장에서 일하게 만드는 편이 체제에게 유리한 몇 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1950년대에 정부나 언론으로 대표되는 체제가 갑자기 여성들로 하여금 가사노동보다는 직업적 경력을 추구하게끔 만들도록 설계된 선전 운동을 시작했다면, 변화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저항으로 인해 대중의 광범위한 분노에 직면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변화를 주도했고, 체제의 기관들은 안전거리를 두고 변화를 뒤따랐다. 보수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는 체제와 그 기관들을 향하지 않고 주로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을 향했는데, 그 이유는 체제가 변화하는 속도는 페미니스트들이 요구하는 더 급진적인 해결책에 비해 느리고 온건해 보였고, 이러한 비교적 느린 변화조차도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3. 체제의 교활한 속임수
즉, 체제의 교활한 속임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 체제 자체의 효율성과 안전을 위해, 기술 진보로 인해 변화된 조건에 맞춰 급진적이고 심오한 사회 변혁이 필요하다.
(b) 체제가 강요하는 상황 때문에 발생한 좌절감은 반항적 충동으로 이어진다.
(c) 체제는 체제가 필요로 하는 사회 변혁에 알맞게 반항적 충동을 채택한다. 활동가들은 체제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낡고 오래된 가치를 상대로 “저항”하고, 체제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
(d) 이런 식으로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었던 반항적 충동은 체제에 무해해질 뿐만 아니라, 체제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해소된다.
(e) 강요된 사회 변혁으로 인한 대중의 분노는 체제와 그 기관이 아니라, 사회 변혁을 주도하는 급진주의자들을 향하게 된다. 5
물론 이 속임수는 체제의 지도자들이 사전에 계획한 것이 아니며, 지도자들은 이 속임수를 인지하지 못한다. 속임수의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다.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 결정할 때 언론의 편집자, 출판인, 소유자들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여러가지 요소들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해당 사안에 대해 출판하거나 방송하는 내용에 대해 독자와 시청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고려해야 하고, 광고주, 동료 언론인, 기타 권력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고려해야 하며, 출판하거나 방송하는 내용이 체제의 안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실용적 고려 사항들은 일반적으로 해당 사안에 대한 개인적 감정보다 더 중요하다. 언론 지도자, 광고주, 기타 권력자들의 개인적 감정들은 다양하다. 그들은 진보적일 수도 있고, 보수적일 수도 있고, 종교적일 수도 있고, 무신론적일 수도 있다. 이 지도자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체제와 체제의 안위, 체제의 권력을 향한 헌신이다. 따라서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언론의 태도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언론 지도자들과 다른 권력자들 사이에서 무엇이 체제에게 좋은지에 대해 이루어진 대략적 합의이다. 그러므로 편집자나 기타 언론 지도자들이 어떤 운동이나 대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결정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그 운동이 체제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의 여부이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도덕적, 철학적, 종교적 기반에 근거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체제의 안위가 언론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 다른 모든 요소들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관찰 가능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뉴스잡지의 편집자가 민병대 운동(역자 주: 1990년대 미국에 있었던 민병대 운동을 의미한다. 주로 루비능선 대치(Ruby Ridge standoff)와 웨이코 포위전(Waco siege)을 계기로 시작됐다.)을 바라볼 때, 그는 민병대 운동의 분노와 목표에 개인적으로 공감할 수도 있고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광고주들과 동료 언론인들 사이에서 민병대 운동이 잠재적으로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으므로 억제해야 한다는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고려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잡지가 민병대 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언론의 부정적인 태도는 아마도 민병대 운동이 힘을 잃은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같은 편집자가 레디컬 페미니즘을 바라볼 때, 그는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요구하는 급진적 해결책들이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지만, 동시에 페미니즘에는 체제에 유용한 측면이 있음을 본다. 여성들이 기업과 기술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체제는 여성과 그들의 가족을 체제에 더 잘 통합시킬 수 있다. 여성들의 재능은 기업과 기술 문제에서 체제에게 도움이 된다. 가정폭력과 강간을 중단하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요구는 체제의 필요에도 부합한다. 다른 형태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가정폭력과 강간 역시 체제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편집자가 현대 가사노동의 사소함과 무의미함과 현대 가정주부들이 겪는 사회적 소외가 많은 여성에게 심각한 좌절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많은 여성들의 좌절감이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으며, 그러므로 여성이 기업과 기술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좌절감을 분출할 창구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이 편집자가 개인적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 상태를 더 편안하게 느끼는 마초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비교적 온건한 형태의 페미니즘이 체제에 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뉴스잡지가 온건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태도를 지녀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광고주들과 기타 권력자들의 눈 밖에 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주류 언론은 대체로 온건 페미니즘에 우호적이고, 레디컬 페미니즘에 엇갈리는 태도를 취하고, 극단적 페미니즘에는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체제를 위협하는 저항 운동은 부정적인 선전의 대상이 되고, 체제에게 유용하다고 여겨지는 저항 운동은 언론의 신중한 지지를 받게 된다. 언론의 선전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한 예비 반항아들은 체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저항”하게 된다.
대학 지식인들도 체제의 속임수를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지식인들은 자신이 독창적인 사상가라고 자처하지만, 그들은 개별적인 예외를 제외하면,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과잉 사회화되고, 가장 순응적이며, 가장 길들여지고, 가장 철딱서니 없고, 의존적이고, 줏대없는 집단이다. 그 결과 그들의 반항 충동은 유별나게 강하다. 그러나 그들은 독립적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반란은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체제의 속임수에 중독된다. 그들은 체제의 기본 가치에 결코 도전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신이 저항하고 있다는 환상을 즐길 수 있다.
대학 지식인들은 젊은이들의 스승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반항적 충동을 인종주의, 식민주의, 여성 문제 등 표준적이고 정형화된 목표로 유도함으로써 체제가 젊은이들을 속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언론을 통해, 또는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 대학생들이 저항하는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해 알게 되고, 대학생들을 모방한다. 그러므로 헤어스타일, 의상, 기타 유행이 모방을 통해 확산되는 것처럼 또래의 모방을 통해 확산되는 정형화된 저항 방식이 있는 청소년 문화가 발생한다.
4. 속임수는 완벽하지 않다
물론 체제의 속임수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활동가” 공동체가 채택한 모든 입장들이 체제의 필요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체제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어려움 중 일부는 체제가 사용해야하는 두 가지 다른 유형의 선전, 즉 통합 선전과 선동 선전의 충돌과 관련이 있다. 6
통합 선전은 현대 사회에서 사회화의 주요 메커니즘이다. 통합 선전은 사람들에게 체제의 안전하고 유용한 도구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 신념, 가치, 습관을 심어주기 위해 고안되었다. 통합 선전은 사람들에게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감정적 충동을 영구적으로 억압하거나 승화시키도록 가르친다. 특정 현안에 대한 태도보다는 장기적인 태도와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뿌리 깊은 가치에 중점을 둔다.
선동 선전 은 특정 상황에서 특정 태도나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에게 위험한 감정적 충동을 억제하라고 가르치는 대신, 잘 정의된 목적에 맞게 특정 감정을 자극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체제는 질서정연하고, 유순하며, 협조적이고, 수동적이며, 의존적인 인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물리력 사용을 독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비폭력적인 인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통합 선전은 폭력에 대한 공포, 두려움, 혐오감을 가르쳐야 하며, 그래야 우리가 매우 화가 났을 때에도 폭력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폭력"이란 인간에 대한 물리적 공격을 의미한다. 보다 일반적으로 통합 선전은 비공격성, 상호의존성, 협력을 강조하는 부드럽고 포근한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반면에 특정 상황에서는 체제 자체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잔인하고 공격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유용하거나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가장 확실한 사례는 전쟁이다. 체제는 전시에는 선동 선전에 의존한다. 군사 행동에 대한 대중의 승인을 얻기 위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실제적 혹은 추정적 적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통합 선전과 선동 선전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다. 마음 속 깊이 포근한 가치관과 폭력에 대한 혐오를 체화한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피비린내 나는 군사 작전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체제의 속임수는 어느 정도 역효과를 낸다. 통합 선전의 가르침을 따라 줄곧 “저항”해왔던 활동가들은 전시 중에도 계속 저항한다. 그들은 전쟁이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통합 선전의 포근한 가치관과 어긋나는 “인종주의적”, “식민주의적”, “제국주의적” 전쟁이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한다.
체제의 속임수는 동물의 처우에 관한 문제에서도 역효과를 낳는다. 불가피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 배운 부드러운 가치관과 폭력에 대한 혐오를 동물에게까지 확대 적용한다. 이들은 육류를 위해 동물을 도살하거나 닭을 작은 철창에 가둬 알을 낳는 기계로 만들거나 과학 실험에 동물을 사용하는 등 동물을 해치는 행위를 보고 경악한다.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는 체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채식은 잡식보다 자원 활용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7 채식이 널리 채택된다면 인구 증가로 인해 지구의 한정된 자원에 가해지는 부담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과학 실험에서 동물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는 활동가들의 주장은 당분간 살아있는 동물을 대체할 수 있는 연구 대상이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체제의 필요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의 속임수가 여기저기서 역효과를 낸다고 해서 그것이 전체적으로 반항적 충동을 체제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데 매우 효과적인 장치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설명한 속임수가 우리 사회에서 반항적 충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체제가 실제로 우리를 약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약하고 무기력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래서 자신을 피해자와 약자, 억압받는 자들과 강박적으로 동일시 한다. 이것이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신식민주의와 같은 피해자 의제가 활동가들의 주요 의제가 된 부분적 이유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ISAIF 문단 10~23을 참고하라.
5. 사례
나는 인류학 교과서를 한 권 갖고 있는데, 이 교과서에서 대학 지식인들이 자신의 유순함을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위장하여 체제의 속임수를 돕는 방법을 보여주는 몇 가지 좋은 사례들을 발견했다.
가장 귀여운 사례는 저자 윌리엄 하빌랜드(William A. Haviland)가 간성(間性,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징이 혼합된 성별)으로 태어난 론다 케이 윌리엄슨(Rhonda Kay Williamson)의 글을 “각색”해서 인용하는 부분이다. 8 윌리엄슨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간성을 포용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우대해 주었다고 말한다.9 그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태도를 자신의 부모의 태도와 대조하고, 자신의 부모의 태도를 유럽-미국인들의 태도와 동일시 한다. 윌리엄슨의 부모는 그녀를 잔인하게 학대했다. 그들은 그녀의 간성성을 경멸했다. 그들은 그녀가 “저주받았고 마귀에 씌었다”고 말했고, 그녀를 교회로 데려가 "마귀"를 쫓아내려고 했다. 심지어 손수건을 주며 "마귀를 기침으로 내뱉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현대의 유럽-미국인들의 태도와 동일시하는 것은 부당하다. 150년 전의 유럽-미국인들의 태도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미국인 교육자, 심리학자, 주류 성직자들은 간성인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경악할 것이다. 언론은 이런 행동을 결코 우호적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평균적인 중산층 미국인들은 간성인을 인디언들 만큼 포용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윌리엄슨이 학대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윌리엄슨의 부모가 체제의 가치와 맞지 않는 태도와 신념을 가진 일탈자이자 광신도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윌리엄슨은 현대 유럽-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행세를 하면서, 실제로는 현대 미국의 지배적 가치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일탈적 소수자들과 문화적 낙오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하빌랜드는 문화인류학을 현대 서구 사회의 편견에 도전하는 우상파괴자로 묘사한다. 10 이 묘사는 현실과 멀어도 한참 멀어서, 이토록 한심하지 않았다면 웃겼을 것이다. 현대 미국의 주류 인류학계는 체제의 가치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다. 오늘날 인류학자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치에 도전하는 척할 때, 일반적으로 그들은 과거의 가치, 즉 체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문화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일탈자와 낙오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 낡고 오래된 가치에만 도전한다. 하빌랜드가 윌리엄슨의 글을 인용한 부분은 이 모습을 잘 보여주며, 하빌랜드의 책 전체가 이런 식으로 편향되어 있다.
하빌랜드는 독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교훈을 주는 민속지학적(ethnographic) 사실들을 강조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민속지학적 사실들은 축소하거나 아예 생략한다. 그래서 그는 윌리엄슨의 글을 인용하여 인디언들이 간성인을 포용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예를 들어 많은 인디언 부족들이 똑같이 간통을 저질렀어도 남자는 봐주면서 여자는 코를 잘라냈다는 사실, 11 크로우족 인디언 전사는 낯선 사람에게 공격을 당했을 경우 즉시 가해자를 죽여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부족의 수치로 여겨졌다는 사실, 12 미국 동부 인디언들이 상습적으로 사람을 고문했다는 사실 13은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사실들은 폭력성, 남성성, 성차별을 상징하기 때문에 현존 체제의 가치와 일치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므로 검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빌랜드가 인류학자들이 서구 사회의 편견에 도전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으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의 대학 지식인들의 자기기만 능력은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서, 그 정도는 손쉽게 해낼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간통한 사람의 코를 잘라내거나, 여성을 학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간성인을 혐오하거나, 인종, 종교, 성 지향성 등등등의 이유로 사람을 차별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는, 좋게 봐줘도, 개선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체제의 교활한 속임수는 혁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반항적 충동을 온건한 개혁에 쓰이도록 유인하는데에 있다.
미주
- Ellul, Technological Society, p. 427.
- 제시 헬름스(Jesse Helms)는 반동적인 미국 정치인으로, 자유주의자들에게 악당으로 취급받았다.
- 현대 산업선진국들 또는 단순히 근대화를 추구하는 국가들의 대중매체를 가장 피상적으로 검토하더라도 인종, 종교, 성별, 성 지향 등을 향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실을 보여주는 수천 가지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서로 다른 세 나라에서 나온 세 가지 사례만 인용할 것이다.
- 미국: “공공장소애서의 애정표현(Public Displays of Affection),” U.S. News & World Report, Sept. 9, 2002, pp. 42–43. 이 기사는 선전이 기능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 기사는 동성결합에 관해 표면적으로는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공적인 동성애 허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양보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 커플을 동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편이 바람직하고, 장기적으로는 불가피하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문제의 동성 커플의 사진이다.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커플이 선정되어 매력적으로 촬영되었다. 선전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기사가 동성애 포용을 옹호하는 선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U.S. News & World Report는 중도우파 성향의 잡지라는 점을 명심하라.
- 러시아: “푸틴이 불관용을 비난하다(Putin Denounces Intolerance),” The Denver Post, July 26, 2002, p. 16A. “모스크바 — 목요일에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은 인종적, 종교적 차별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우리가 민족적 또는 종교적 차별이라는 이 쇼비니즘적 세균을 내버려두면 국가를 망치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 텔레비전은 이 부분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등등.
- 멕시코: “Persiste racismo contra indígenas” (“원주민을 향한 인종차별은 여전히다”), El Sol de México, Jan. 11, 2002, p. 1/B. 사진 설명: “우리나라 원주민들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차별당하고 있다….” 이 기사는 차별에 맞서기 위한 멕시코 성직자들의 노력에 대해 보도하면서, 성직자들이 전통적으로 열등한 지위에서 원주민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원주민 문화를 "정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El Sol de México는 중도우파 성향의 신문이다.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누구나 이런 사례들을 수천 개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체제 자체가 차별과 희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는 너무나 명백하고 방대해서, 이러한 악과 맞서 싸우는 것이 체제를 상대로 저항하는 것이라는 급진주의자들의 믿음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이는 전문 선전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념과 충돌하는 정보를 차단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NEB (1997), Vol. 26, “Propaganda,” p. 176 참고.
- 미국: “공공장소애서의 애정표현(Public Displays of Affection),” U.S. News & World Report, Sept. 9, 2002, pp. 42–43. 이 기사는 선전이 기능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 기사는 동성결합에 관해 표면적으로는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공적인 동성애 허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양보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 커플을 동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편이 바람직하고, 장기적으로는 불가피하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문제의 동성 커플의 사진이다.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커플이 선정되어 매력적으로 촬영되었다. 선전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기사가 동성애 포용을 옹호하는 선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U.S. News & World Report는 중도우파 성향의 잡지라는 점을 명심하라.
- 이 구획에서는 나는 무엇이 체제가 아닌지에 대해 말했지만, 무엇이 체제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내 친구가 이 부분에서 독자들이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에, 이 글의 목적상 체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밝히겠다. 나는 체제를 잘 균형 잡힌 한 문장으로 정의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체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길고 어색하고 불필요한 사족으로 글의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고 해서 독자들이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체제의 교활한 속임수는” 2002년에 집필되었다. 2016년 현재 체제의 속임수 e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올바름은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측면에 깊숙이 자리 잡았고, 특히 좌익 대통령이 8년 동안 집권한 이후에는 “사회 변혁을 주도하는 급진주의자들”은 더 이상 체제 자체와 구별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지금은 체제 자체가 미국 사회에 사회 변혁을 강요하는 행위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 결과, 변혁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체제 자체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게 되었다. 이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열정적인 지지를 받게된 부분적 이유이며, 아마도 주된 이유일 것이다.
- Ellul, Propaganda. 자끄 엘륄의 『선전』(역자 주: 하태환 역, 도서출판 대장간, 2012)은 “통합 선전”과 “선동 선전” 개념에 대해 논하고 있다.
- (2016년 추가) 사실 채식이 잡식보다 자원 활용 측면에서 더 효율적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 Haviland, pp. 132–36.
- 나는 이 진술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나바호족의 태도는 그러했다. Reichard, p. 141 참고. Reichard의 책은 미국의 인류학계가 정치화되기 훨씬 전인 1950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이 정보가 편향되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 Haviland, p. 12.
- 이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Debo, p. 225; Marquis, p. 97; Vestal, p. 6; NEB (1997), Vol. 13, “American Peoples, Native,” p. 380; Kroeber, p. 13 참고.
- O. Russell, p. 147.
- 미국 동부 인디언들이 고문을 행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Wissler, pp. 131, 140, 145, 165, 282; Campbell, p. 135; NEB (1997), Vol. 13, “American Peoples, Native,” p. 385; Axtell, passim, e.g., pp. 48, 86 참고. Dick, p. 258은 미국 북동부 인디언들이 고문을 행했음을 확인하지만, 남동부 인디언들은 고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Dick은 Wissler, pp. 145, 165와 충돌한다. (남동부 부족인 체로키족과 나체즈족은 포로들을 고문했다.)
https://antitechkorea.com/essays/141
전국 웨딩박람회 일정/혜택 총정리
✅
https://tnnyurl.com/wed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