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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에 대한 사형 선고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물론 국왕 개인은 무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왕이 무죄이므로 혁명이 유죄란 말인가? 왕이 무죄라면, 혁명이 유죄가 된다. 왕이 죽지 않으면 혁명이 죽는다.

“누구도 무죄로 군림할 수 없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역사에 길이 남아 있을 정도다. ‘군림한다’는 것이 벌써 유죄라는 것, 그러니까 왕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유죄라는, 도저히 논박 불가능한 무서운 구절이었다.

루이 16세는 죽든지 군림하든지 둘 중 하나다. 군주들은 시민이 될 자격도 없다.

루소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생쥐스트는 왕의 처형 근거를 ‘사회계약론’에서 찾았다. 사회계약론에 의하면 법이란 사회계약의 결과다. 따라서 법은 사회계약에 동의한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왕은 사회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이, 법의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법의 밖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계약을 맺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효력이 발생하는 법 조항을 그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왕에게는 그 어떤 사회체제의 법도 적용할 수 없고, 다만 사회 전체가 적으로 간주해야 할 절대적 적일 뿐이다.

생쥐스트는 왕이 사회 전체와 같은 무게의 대칭 관계가 되는 것은 극도로 경계했다. 그래서 그는 “전제군주에 대항하는 인간의 권리는 개인적인 권리다”라는 말로 왕에 대한 개인적 적대 관계를 강조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왕에 대한 처리가 국민 전체의 이름으로 언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또 한편으로는 국민들 동의가 없더라도 아무나 루이 16세를 죽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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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랑하는 이가 바로 세상을 부수려는 자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만이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세상을 철두철미하게 부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