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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와 이라크의 바트주의 정권이 제대로 관료체계를 정착시키지 못했고, 사실상 후세인이나 아사드 같은 절대적 독재자의 권위에 의존하는 체제였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음. 군사적 무능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연패 등과 같은 다른 문제들도 많았는데, 지금 보면 이건 정권의 능력 문제라기보다는 이라크와 시리아가 모두 20세기 초중반에야 성립한 국가였다는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한 것이었음.

 이라크를 예로 들면, 1918년 전까지 메소포타미아 주민들에게는 ”이라크 국민“이라는 개념이 없었음. 수천년 동안 외래 왕조에게 지배되어 왔기 때문에 그런 게 있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고, 종파와 씨족으로 극심히 분열된 상태였기 때문에 ‘aa부족의 구성원’ , ’술탄의 신민‘, ’bb파의 성도‘ 같은 전근대적 정체성 말고는 그 어떤 정체성도 있을 수 없었음. 

 그런 상황에서 바트주의 정권은 현대적 관료국가 건설보다는 우선 세속주의와 아랍민족주의 같은 이념을 통해 그 관료국가가 작동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데 집중했던 거라고 볼 수 있음. 이미 수백년 동안 통합된 정체성이 구축되었고 관료제의 기틀도 다져진 상태였던 러시아-소련과 달리, 중동에서는 일단 관료와 그 관료들이 감독하는 국민들이 ‘~국 국민’이라는 의식을 가지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는 말임. 그 단계에서는 오히려 아사드나 후세인 같은 1인이 모든 권력을 틀어쥐는 시스템이 더 적합했을 수 있고, 실제로 적어도 이들의 권위가 여러 사건들로 인해 무너지기 전까지는 국내의 종파주의를 억누르고 전국민이 ‘시리아인‘이나 ’이라크인‘ 같은 근대적 정체성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바트당의 지배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거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함. 이라크가 이란-이라크 전쟁 같은 총력전을 실시하고, 총동원 체제를 굴릴 수 있었던 것도 기존의 씨족이나 종교를 초월하는 근대적이며 통합적인 정체성이 확립돼 가능했던 거 아님. 전쟁 때 많은 시아파 신도들이 이라크 국민이라는 정체성 하에 시아파 신정과 맞서 싸운 것도 사실이고.

결론적으로, 이라크와 시리아의 바트당 정권은 외래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들의 묶음을 하나의 목표를 시행할 수 있는 근대국가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봄. 물론 이들이 후세인 같은 절대권력자의 개인적 권위에 의존하는 형식의 체제에서 체계화된 관료제로 이행하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지만, 관료국가로의 이행도 일단 선행하는 단계를 밟아야만 가능한 일이었음.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바트당 정부가 무능하기만 했다는 평가는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