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기 돌리는 외국인 호텔만 환해… 낮엔 주민 몰려와 ‘전기 구걸’
전날 아바나의 관문인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모든 에스컬레이터는 멈춰 있었다.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도 수시로 멈춰 섰다. 실내 필수 구역을 제외한 공항 불은 꺼져 있었다. 한국 외교부로부터 “쿠바 내 전력 상황이 심각하고 통신망이 열악하니 가족과 지인에게 행선지를 사전에 통보하라”는 권고 메시지가 들어왔다. 아바나 시내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 관리인은 ‘비상용’이라며 라이터와 촛불, 휴대용 조명 기구를 건넸다.
전기 없는 쿠바인들은 휴대전화 플래시, 휴대용 조명기구, 촛불 등에 의지해 밤을 보내고 있었다. 몇몇 주민들은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거리에 둘러앉아 숫자가 적힌 타일을 맞추는 ‘도미노 게임’을 했다. 식당 종업원들은 “아직 얼려놓은 얼음은 녹지 않았다. 맥주는 차갑다”며 호객을 했다. 실제 많은 식당은 휴대용 조명 기구나 촛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서빙을 했다. 피자집은 화덕의 불빛을 조명 삼아 영업을 계속했다. 밴드는 어둠 속에서 쿠바 민요 ‘관타나메라’를 연주했다.
다음 날인 22일 햇빛이 아바나를 다시 비추자 저마다 에너지 확보 전쟁이 벌어졌다. 전기가 언제 다시 들어올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20~30% 수준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배터리를 보자 입안이 바싹 말랐다. 한 쿠바인은 기자에게 “오늘 밤도 버티려면 휴대전화 배터리가 필수”라며 미리 충전해 둔 자신의 보조 배터리에서 얼마간의 전력을 나눠줬다. 거리에서는 암시장에서 구했다는 작은 태양광 패널로 휴대전화를 연결해 충전하고 있는 쿠바인도 볼 수 있었다.
자체 발전기가 있는 일부 외국인 상대 식당에는 휴대전화와 조명 기구 배터리의 충전을 식당 관계자들에게 부탁하러 오는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조명 기구에 들어가는 대형 건전지를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수도 펌프가 멈춰서자 아이들은 상수도관에서 직접 생활에 쓸 물을 바가지로 퍼 올렸고, 미리 받아놓은 물을 대야에 받아 빨래를 하는 주민들도 보였다. 주민들은 “수도 아바나가 이 정도면 지방은 말할 것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걍 죽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