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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패배감에 젖어 기개를 잃고, 정신과 사기 모두 처참하게 무너진 나라였다. 마치 돈 키호테처럼 과거의 영광에만 안주하며 이전의 제국적 화려함을 반추하는 데 몰입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을 비롯해 괌, 캐롤라인, 마리아나, 팔라우 등 마지막 남은 해외 영토를 모두 잃으며 제국의 종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에게는 아무리 고집스러워도 '슬픈 몰골의 기사'를 닮은 불굴의 이상주의적 영혼이 있었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스페인 민족주의가 싹텄다. 이 글에서는 스페인 파시즘의 가장 진정한 형태라고 믿어지는 'JONS주의(Jonsism)'를 다루고자 한다.



스페인 민족주의의 시초는 바르셀로나에서 라몬 살레스가 이끄는 '스페인 애국 연맹'이다. 살레스는 1919년 후안 라구이아 리테라스와 함께 '자유 노동조합(Sindicatos Libres)'을 세우기도 했다. 많은 역사가가 이들을 스페인 파시즘의 원형으로 보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은 샤를 모라스의 영향을 받은 카를로스주의 전통주의에 더 가깝다. 따라서 이들 집단에 '원형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스페인 애국 연맹과 자유 노동조합은 주로 카를로스주의자, 가톨릭 전통주의자, 왕당파, 그리고 쿠바 전쟁 참전 용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 조직들은 당시 카탈루냐 독립 운동에 맞서 행동대 역할을 수행했다. 이른바 '피스톨레리스모(권총 무법주의)'의 주역으로서, 왕당파 부르주아지의 자금을 받아 무정부주의 노동조합인 CNT에 대항하는 해결사 노릇을 했다. 이들은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 시절 크게 성장해 1929년에는 당원이 20만 명에 육박했다. 이처럼 반동적인 성격의 조직들을 파시즘의 범주에서 제외해야만, 비로소 JONS의 국가생디칼리즘이라는 현상을 제대로 짚어볼 수 있다.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는 1905년 사모라의 평범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체신부 공무원이 된 그는 일하면서도 마드리드에서 철학, 문학, 물리, 수학을 공부하며 천재성을 발휘했다. 하이데거 철학을 전공한 그는 니체, 키에르케고르, 칸트, 헤겔에 정통했으며, 스승인 오르테가 이 가셋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1920년대 마드리드의 지적 분위기 속에서 그는 철학과 문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글을 발표하며 지식인으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오르테가 이 가셋이 이끄는 『라 레비스타 데 옥시덴테』에 헤겔과 버트런드 러셀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31년 3월 14일, 말라파르테의 저서에서 이름을 딴 주간지 『국가의 정복』이 창간되었다. 레데스마를 따르는 젊은 지식인들이 주축이 된 이 잡지는 다음과 같은 강령을 내걸었다.
1. 모든 권력은 국가에 귀속된다.
2. 국가 밖의 자유란 없으며, 오직 국가 안에서의 정치적 자유만이 존재한다.
3. 인간의 가치는 국가 내에서의 시민적 공존 능력으로 결정된다.
4.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실천적 극복은 시대적 명령이다.
5. 위계적 가치, 민족적 이념, 경제적 효율성을 바탕으로 공산주의에 맞선다.
6. 스페인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
7. 스페인 문화의 제국적 확산을 꾀한다.
8. 대학은 과학과 기술의 본질을 담는 이념적 기틀이 되어야 한다.
9. 대중 문화 교육을 강화한다.
10. 정치적 자치를 주장하는 지역주의 분파를 근절하되, 자치체 중심의 지역 발전은 장려한다.
11. 경제와 행정의 기초 단위인 자치체에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한다.
12. 경제를 생디칼(조합) 중심으로 구조화한다.
13. 노동의 가치를 높인다.
14.  지주 계급의 토지를 몰수하여 국유화한 뒤, 자치체와 농민 조합에 분배한다.
15. 사회 정의와 규율을 확립한다.
16. 위선적인 국제 평화주의를 배격하고, 강대국으로서 스페인의 위상을 회복한다.
17. 구체제의 정치 집단에 맞서 새로운 국가를 세울 때까지 직접 행동과 혁명을 멈추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레데스마가 이 잡지를 운영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왕당파 인맥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보조금을 타내려 잡지의 성격을 의도적으로 왕당파 친화적인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1931년 10월, 레데스마의 『국가의 정복』 그룹과 오네시모 레돈도가 이끄는 '카스티야 히스패닉 행동 부대(JCAH)'가 합치면서 JONS가 결성되었다. 레돈도는 가톨릭 생디칼리스트이자 농민 조합의 리더였으며, 강한 민족주의 성향의 『리베르타드』를 운영하던 인물이었다. 여기에 이탈리아 파시즘의 행동대 방식을 본뜬 '라 트라사' 회원들까지 가세하며 세를 불렸다.



 JONS주의자들은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부르주아 계급과 마르크스주의를 꼽았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결정론이 조국의 형이상학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독특한 점은 무정부주의 조합인 CNT의 에너지를 민족주의와 결합하려 했다는 것이다. 레데스마는 CNT의 노동 운동이야말로 스페인인의 기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출구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들은 일반적인 '제3의 위치' 운동들과 달리 노동자들의 파업과 혁명적 선언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레데스마가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한 이유는 노동자 권익 때문이 아니라 그 바탕에 깔린 유물론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는 볼셰비키 혁명이 보여준 국가적 추진력과 민족적 성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레데스마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 곧 민중을 구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는 좌우파의 구분을 넘어 스페인 내부의 잠재력을 하나로 모으려 했다.



 라미로 레데스마가 찬양했던 인물 중에는 공산주의자 호아킨 마우린도 있었다. 레데스마는 마우린이 주장한 "민족주의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서만 불붙을 수 있다"는 관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마우린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잇는 이베리아 연합을 주장했는데, 이는 JONS가 지향했던 범이베리아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은 프랑스와 영국 같은 자본주의 국가보다는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과 연대하여 새로운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고 믿었다.
레데스마의 민족주의는 단순히 국경 안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복고주의가 아니라, 이베리아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유럽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새로운 제국적 기획이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강한 유럽 회의주의는 개신교 중심의 유럽 문명에 대항해 가톨릭과 돈키호테적 정신을 수호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국가생디칼리즘의 순수한 이상은 팔랑헤에 의해 오염되었다. 팔랑헤는 JONS의 이념을 가져갔지만, 실제로는 노동 기반이 없는 부르주아적이고 반동적인 집단에 불과했다.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는 무솔리니의 조언을 듣고서야 뒤늦게 노동계와 손을 잡으려 했지만,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실패했다. 팔랑헤의 진화 과정은 영국의 오즈월드 모슬리 사례와 비슷하게 변질된 것이다. 이러한 배신을 가장 통렬하게 비판한 이는 JONS주의자 산티아고 몬테로 디아스였다. 그는 1934년 레데스마에게 보낸 편지에서 팔랑헤와의 합병이 가져올 비극을 예견했다.


 "친애하는 레데스마 동지, JONS는 이탈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믿어왔던 것과 달리, 작금의 통합은 명백한 이탈이네. 팔랑헤는 근본적으로 우익적 본질을 가진 집단이며, 우리의 혁명 정신을 이해할 능력이 없네. 나는 그들과 함께할 수 없기에 새로운 규율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갈 것이네. 만약 자네가 언젠가 다시 JONS의 독립된 기치를 든다면, 그때는 주저 없이 자네 곁으로 돌아가겠네. 하지만 그 전까지 나는 침묵을 지키며 나의 에너지를 갈무리할 것이네."

출처: The Fascio News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