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외교부의 성명을 제가 꼼꼼히 읽어보니까 그 단어에 발끈했습니다. 사실 일본이나 여타 국가들도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태도에 대해서 언급은 했습니다. 그러나 외무성 차원이지 대통령 최고지도자가 나와서 이 문제를 직설적으로 얘기한 데 대해서 이스라엘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컨뎀데이션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규탄받아 마땅하다라는. 이스라엘 외교부로서는 최고의 단어를 썼고.
◇앵커> 그게 수위가 높은 단어입니까?
그렇습니다. 외교적으로는 거의 파국 일보직전의 단어라고.
과거 제가 역사를 조금만 얘기하면 73년에 4추 중동전쟁 위기 때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 10월에 전쟁나서 겨울방학이 한 달 이상 당겨졌습니다. 에너지가 없어서.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친이스라엘 정책에서 친사우디, 친중동 국가 정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서울의 대사관을 철수해서 14년 동안 서울에 이스라엘 대사관이 없었습니다. 92년에 들어서야 대사관이 다시 복귀를 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사태로 인해서 또 이스라엘에 있는 우리 교민, 또 이스라엘에 많은 업체들이 진출해 있는데 대통령의 계산이 굉장히 복합적이기는 하지만 전쟁 중에 어떤 당사자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되지 않느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최호중 전 외무부 장관은 1973년 10월 1차 ‘오일 쇼크’(석유 파동) 발생 당시 외무부 통상국장이었다. 이집트·시리아 군대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제4차 중동 전쟁이 터지고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아랍 산유국들이 일치단결하며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최 국장에게 “한국 정부가 석유 수급을 위해 아랍 지지 선언을 하기로 했으니 이 점을 주한 이스라엘 대사에게 잘 설명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졌다. 훗날 회고록에서 최 전 장관은 “내 전화를 받은 이스라엘 대사는 ‘그게 정말이냐’ 하고 물은 뒤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1973년 오일 쇼크를 계기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명확한 입장을 정했다. ‘한국이 살려면 무조건 석유가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정부는 1973년 12월 이른바 ‘아랍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무력에 의한 타국 영토 획득은 불가하다’는 전제 아래 이스라엘을 겨냥해 “1967년 당시 점령한 영토에서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제3차 중동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빼앗은 골란 고원, 서안·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등을 모두 반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또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주장은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8년 이스라엘은 서울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고 주일본 대사관으로 하여금 한국을 겸임하게 했다. 겉으로는 “이스라엘이 1964년 서울에 대사관을 차렸는데도 한국은 상응하는 조치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실은 이스라엘보다 아랍 산유국들을 우선시하는 한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불만 표시였을 것이다.
대 재 명
2찍이라면 이재명을 박정희의 환생이라고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해가 안 되네
환생이라 생각하는 사람 꽤 되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