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외신은 이번 전쟁을 단편적인 트럼프 개인의 ‘판단 실수’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50년 넘게 에너지·경제·역사 등 문명을 심층적으로 연구해온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사진)의 해석은 달랐다. 그는 이번 전쟁을 ‘미국 패권 4.0의 출발점’으로 규정했다. 셰일 혁명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의 장기적인 패권 유지를 위해 설계된 ‘거시적 전략’과 당면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미시적 전술’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는 시각이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언행에 집중하면 본질을 놓친다”며 “미국 지도층이 구상하고 있는 전략 범위 내에서 트럼프의 전술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전쟁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장기 패권 구상의 일부”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이란전쟁서 미국의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핵심은 국제유가를 장기적으로 ‘중고(中高)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석유 생산원가는 지역별로 크게 다르다. 중동은 배럴당 10~20달러, 러시아는 20~40달러, 미국은 40~60달러 수준이다. 즉 유가가 낮아질수록 미국이 가장 먼저 경쟁에서 탈락하는 구조다.
반대로 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미국 셰일 산업이 살아남고, 에너지 수출을 통해 달러를 회수할 수 있다. 결국 유가 수준 자체가 미국 패권의 수익 구조가 된다.
미국이 지향하는 장기 목표는 배럴당 약 80~90달러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수준이면 미국 소비자 경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미국 에너지 산업이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다. 미국의 단기 목표는 이란전쟁으로 인한 단기 유가 급등, 인플레이션, 지지율 하락 등의 정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전쟁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미국 패권 4.0’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전 세계가 전기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아직은 석유가 핵심 에너지원이다. 결국 석유를 장악한 국가가 패권을 쥔다.
석유에 관한 한 미국은 ‘남미는 제압’하고, ‘러시아는 포용’하며, ‘중동은 통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핵심은 중동산 원유다. 생산원가가 배럴당 10~20달러로 가장 낮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유지되면 원가가 높은 미국 셰일 산업은 경쟁력을 잃는다.
이란 전쟁이 어느 쪽에 유리하게 진행되든, 호르무즈 해협을 누가 통제하든, 결국 모든 전쟁 비용은 중동산 원유 가격에 얹히게 될 것이다. 결과는 하나다. 장기적으로 중동산 유가의 상승이다. 이를 통해 미국 셰일 산업과 페트로 달러 체제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미국 패권 4.0의 본질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나.
▷충분히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과 사실상 단절됐다. 선택지는 동진뿐이다. 하지만 러시아·중국과의 관계는 구조적으로 불안하다. 연해주 문제 등 잠재적 갈등이 존재한다. 중국이 동해로 진출하면 북극항로가 위협에 노출된다는 점도 러시아에게 심각한 부담이다.
결국 러시아는 중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보여준 트럼프와 푸틴 간의 브로맨스는 사실 세계경영을 위한 복합적인 전략적 유대이며 이란 전쟁에서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미국·이란 전쟁이 중국 견제와도 연결되나.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역사적으로 패권국과 도전국이 공존한 사례는 없다. 미국은 제조업 경쟁에서는 중국을 이기기 어렵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석유다.
중국은 전기차·배터리 등을 앞세워 ‘전기국가’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과도기다. 석유화학·항공·해운 등 핵심 산업이 여전히 석유에 의존하고 있고,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다.
유가가 오르면 곧바로 제조원가가 상승한다. 원가 상승은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이는 수출 경쟁력에 직접적인 타격이 된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석유 가격을 통해 중국 제조업을 압박하는 전략이다.
단기적으로 중국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전략은 석유 금수 조치이다. 과거 미국은 석유 금수(ABCD 라인)로 일본제국을 파멸로 몰아갔고, 지금 미국은 세계 석유에 대한 장악력을 차근차근 높여가며 중국을 포위해나가고 있다.
―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은.
▷에너지와 외교를 동시에 봐야 한다.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선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기본 축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한국 태양광발전은 효율이 낮다는 것이다. 한국은 태양광 발전 시간이 하루 평균 3~4시간 수준으로 미국·중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동일한 설비를 깔아도 발전 효율이 절반 수준이다. 구조적으로 원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약점을 보완할 대안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SMR(소형모듈원전)이다. SMR은 원자로를 소형화해 표면적 대비 부피를 줄인 구조로,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사고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낮고, 분산형 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SMR 상용화까지는 10여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 ‘에너지 공백’을 메워줄 현실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이를 보완해줄 에너지가 러시아산 천연가스다.
예컨대, 밀과 고기 등을 수입하여 식생활을 다변화하는 것이 생산 효율 측면에서 비교 열위에 있는 우리 쌀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과 같은 원리이다. 수입한 밀과 고기로 ‘식량 주권’을 지키듯, SMR과 러시아 석유로 ‘에너지 주권’을 지켜 나가야 한다.
- 결국 우리도 러시아와 협력해야 하는가.
▷그렇다. 에너지, 산업기술, 안보 등 전천후 협력이 불가피하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가스·우라늄을 보유하고 있고, 한국은 없다. 반대로 한국은 제조업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러시아는 없다. 양국은 구조적으로 상호보완 관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북한 방문 직전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공급하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한국과 관계 개선을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북한에 파병 등 군사 협력을 요청하러 가는 마당에 한국을 향해 이런 메시지를 던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전쟁 이후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한국은 러시아와 협력해 에너지 공급을 안정화하고, 동시에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양국이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외교 전략도 이에 맞춰 재정립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러시아와 협력하는 ‘한·미·러의 합종’이라는 새로운 협력축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 축이 형성되면, 산업 부문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과 일본에 대해 한국이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에너지 공급망을 선점한 국가가 산업 경쟁력까지 좌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He is··· △1951년 부산 △1974년 서울대 공과대 △1983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콜로라도대 경제학 석·박사 △1987년 서울대 자원공학과 교수 △2003년 대통령 정보과학기술 보좌관 △2005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 직명대사 △2017년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현재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
역시나 한국 지식인은 바로 본질을 궤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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